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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노동자가 던진 돌멩이

인권이만난사람 [2020.08] 인공지능이 사장님,
배달 노동자가 던진 돌멩이

글 성상영 기자 / 사진 라이더유니온 제공

 

배달기사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배달 업종은 플랫폼 노동의 대표적 사례다. 수년 전 배달주문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의 출현으로 음식 배달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배달 앱은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 있다는 편리함을 무기로 안방을 공략했다. 덩달아 음식점과 배달 노동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조직된 노동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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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라이더유니온입니다

전국 규모로 배달 노동자의 정확한 숫자를 파악한 자료는 없다. 라이더유니온에 따르면 배달을 업으로 삼는 노동자는 13만여 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지난해 10월 보고서는 전체 배달 노동자의 수를 4만 3,000명에서 5만 2,000명으로, 이 중 배달 대행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 플랫폼 배달 노동자의 수를 2만 명에서 3만 명 정도로 추정했다.
플랫폼을 통해 음식이 소비자의 가정으로 배달되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친다. 우선 소비자가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가게로 접수된다. 음식점은 배달 대행업체에 배달 서비스를 요청하고, 이른바 ‘콜’이라고 불리는 주문 건이 배달 플랫폼에 노출된다. 배달 노동자는 앱을 통해 콜을 잡고, 가게에서 음식을 받아 가정으로 배달한다. 물론 음식점에서 직접 고용한 배달 노동자도 있다.
신속배달은 배달 노동자의 철칙으로 여겨진다. 음식이 식지 않게, 면이 불지 않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려야 한다. 하지만 음식이 일찍 도착할수록 배달 노동자의 위험은 커진다. 최근에는 배달 노동자의 안전 문제가 불거졌다. 2018년 서울시 오토바이 사고 사망자 3명 중 1명이 배달 노동자라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배달 시장이 급성장한 만큼 사고도 늘어나는 추세다.
라이더유니온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안고 지난해 5월 1일 노동절에 설립됐다. 출범에 앞서 100여 명의 배달노동자는 서울 강남 일대에서 오토바이 행진을 벌였다. 라이더유니온이 꺼낸 화두는 ‘안전 배달료’다. 이를 통해 배달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배달 오토바이의 사고율이 높다는 인식이 오래전부터 있었고, 사고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라이더유니온은 ‘안전 배달료’를 요구합니다. 안전운행이 가능한 수준의 배달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달 단가가 건당 3,000원인데, 10년 동안 동결됐습니다. 그동안 최저임금은 200% 올랐고, 물가도 그만큼 올랐는데 배달료만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속도 경쟁으로 갔고, 당연히 안전을 위협받게 됐습니다.”

 

알고리즘 직장상사

배달 시장에서 플랫폼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이전에는 없던 문제가 생겨났다. 배달 노동자를 고용한 진짜 사장이 누구냐는 점이다. 배달 노동자는 배달 대행업체와 사업자 대 사업자 관계로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노동자의 권리보다는 책임과 준수사항이 강조된 불공정 계약인 사례가 적지 않다. 기본적인 근태까지도 대행업체의 관리·감독을 받곤 했으나, 라이더유니온은 이를 꾸준히 개선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알고리즘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알고리즘은 플랫폼이 작동하는 규칙이다. 기존에는 경험이 많은 배달 노동자가 직관에 따라 콜(주문)을 잡지만 일부 플랫폼 업체가 도입한 인공지능(AI) 배차는 배달노동자가 어떤 음식점에서 의뢰한 콜을 받아 어느 가정으로 음식을 가져다줄지를 알고리즘이 결정한다. AI 배차가 도입되면서 배달 노동자의 콜 선택권이 많이 줄었다. 어떤 콜을 잡느냐에 따라 배달 노동자의 수입이 달라지기 때문에 AI 배차의 확대는 민감한 문제다. 그러나 배달 노동자는 알고리즘을 알 수 없다. 라이더유니온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불과한 AI가 배달 노동자를 통제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추측이지만, 플랫폼 회사들이 신규 라이더(배달 노동자)를 모집하고 일정한 경력이 있는 라이더는 내보내는 방향으로 알고리즘을 수정하는 듯합니다. AI 배차로 콜을 먼저 넣어주는 식입니다. 라이더들은 경험을 쌓으며 요령이 생기고 AI 배차보다 더 빠르게 배달하는 방법을 터득하는데, AI 배차가 우선시되면서 경력 라이더들이 일할 동기가 사라지는 게 사실입니다.”
업체에 따라서는 AI가 배달 노동자를 평가한다. 콜 수락률과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 소비자의 불만 사항 접수 여부 등이 기준이다. 평점이 낮은 노동자에게는 콜이 적게 뜨게끔 알고리즘이 작동한다. 왜 배달 요청에 응하지 못했는지, 어떤 사정으로 배달 시간이 오래 걸렸는지, 악의적인 불만 접수는 아니었는지 배달 노동자가 일일이 소명하기 어렵다.
“평점이 안 좋은 사람은 배차가 안 보이게 하면서 실질적인 계약 해지 단계로 들어갑니다. 기술적 통제이자 은폐된 통제입니다. 알고리즘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 다고 봅니다. 또 업체가 임의로 알고리즘을 조작해서 우선순위를 배정해서는 안 됩니다.”

 

배달이 보여준 플랫폼 노동의 앞날

플랫폼은 그 자체로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결하는 매개다. 플랫폼의 출현으로 소비자는 더 다양한 음식을 편리하게 주문할 수 있게 됐고, 음식점 주인은 매출이 늘어날 기회를 얻었다. 배달 노동 역시 플랫폼을 통해 비교적 안정된 수입원을 확보함으로써 하나의 일자리로 자리를 잡았다. 20·30대뿐 아니라 40·50대가 배달 시장으로 진입하는 현상도 이러한 흐름을 나타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노동자와 사용자의 고리는 플랫폼으로 인해 끊어졌다. 플랫폼 개발자와 알고리즘에 종속되는 프리랜서가 있을 뿐이다. 개발자들은 플랫폼으로 인한 노동의 변화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법 체계가 플랫폼 노동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된다. 정부가 플랫폼 배달 노동자에 대해 산업재해보험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는 몇 달 사이의 일이다. 플랫폼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설립 2년 차에 접어든 라이더유니온은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할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무엇보다 더 많은 배달 노동자가 라이더유니온과 함께하도록 조합원 수를 늘리는 게 주된 목표다. 라이더유니온은 플랫폼이 보편화하는 사회에 인간의 노동이 무엇인지 화두를 던진다.
“근로조건 같은 눈에 보이는 실태뿐 아니라 알고리즘을 통한 기술적 통제에 주목하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이슈가 있으니까 그나마 관심이라도 받는데, 이슈가 사라지면 관심조차 받기 어렵습니다. 우선 조직적 토대를 갖추면서 공제회나 협동조합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사업을 준비할 계획입니다.”

 

 

성상영 기자는 경제·노동 분야에서 취재를 하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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