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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일

밀레니얼이 말하는 인권 [2020.08] 윤리적 소비로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일

글 권대영 대표 (마르코로호) / 사진 마르코로호 제공

 

“내 눈엔 다 예쁜데.” 마르코로호와 가장 오래 함께하신 매듭지은이 달달둥근달 할머니께 어린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어달라고 부탁해서 받은 문장이다. 이렇듯 할머니의 눈에는 우리가 다 예뻐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할머니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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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인이 소외되지 않도록

마르코로호는 할머니를 위한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적 자립을 돕고, 할머니가 만든 수공예 액세서리와 생활소품을 판매한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시작은 한 줄의 기사였다. ‘대한민국, 노인빈곤율, 자살률 OECD 1위’. 기사에서 인식한 문제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상황이 아주 달랐다. 할머니들은 기대수명은 더 긴 데 비해 사회생활의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아 경제적으로도 더 힘들고 쉽게 소외되고 계셨다. 이런 할머니들께 ‘행복한 일자리’를 제공해드려야겠다고 고민한 결과가 마르코로호라는 브랜드였다. 사부작사부작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시는데 익숙하셨던 할머니들께 매듭 액세서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감이었다.
‘매듭지은이’ 할머니로 마르코로호에 처음 들어오면 골치 아픈 일을 만난다. 바로 매듭지은이 별명을 짓고, 매듭지은이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매듭지은이’란 일종의 생산자 인증 제도인데, 고객과 할머니들의 정서적 유대감을 위해 만들었다. 매듭지은이 제도는 어느새 마르코로호의 시그니처가 됐다. 우리가 온라인 게임의 닉네임을 정할 때 고뇌하듯이 할머니들도 깊은 고민을 하시는데, 재밌게도 별명은 ‘꽃’이나 ‘반려동물 이름’, ‘오랜 별명’이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할머니는 손수 만든 제품과 함께 매듭지은이의 이름과 그림을 직접 그려 보낸다. 제품과 함께 할머니의 손글씨를 받은 고객은 그 따뜻함에 감동하고, 다시 응원을 보내준다.
할머니와 함께하면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통 우리는 할머니들을 복지와 시혜의 대상으로 보고, 도움을 줘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공고해지고 당연해지면 할머니들께 기회와 무대를 열어주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마르코로호와 함께하는 매듭지은이 할머니들은 누구보다도 진취적이고 활동적이며 의욕적이다. 정말 재치가 넘치는 분도 계신다. 당신들은 절대 복지와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당당한 사회구성원이다.

 

할머니를 위한, 할머니에 의한 활동

마르코로호는 함께하는 할머니들의 행복을 위해 여러가지 재미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매듭 활동을 통한 치매 예방 교육, 문화생활을 누려보지 못한 할머니들을 위한 함께하는 문화생활, 화창한 날에 나갔던 소풍, 매년 수익금을 기부하고 할머니들과 나눴던 행복감. 매듭지은이분들과의 하루하루는 치열했지만 마음이 풍족한 시간이었고, 그렇게 4년이 흘렀다. 4년의 시간 동안 얻은 결론은 ‘정체되지 말자’였다.
마르코로호는 노인 일자리 제공과 복지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 매출액의 일부분은 사회의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한다. ‘선택기부’라는 독특한 방식의 기부를 통해서다.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면서 다섯 가지 기부 영역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마르코로호가 각 영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기관을 찾아 기부하는 것이다. 수공예 액세서리의 판매금액으로는 독거노인, 장애아동, 결식 학생, 아프리카 아동, 유기동물을 위해 기부하고, 생활소품의 판매금액으로는 독거노인 식사 및 간식지원과 주거환경지원을 하고 있다.
선택기부를 시작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할머니들의 자존감 회복과 사회 효능감을 위해서다. 할머니들이 재밌게 일한 것만으로도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면 정말 많이 뿌듯해 하신다. 두 번째, 마르코로호는 할머니와 고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브랜드인 만큼 우리의 핵심 가치 추구로 얻어지는 부수적인 가치인 기부는 고객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었다. 고객은 더 자발적으로 사회 문제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선택 기부는 할머니들이 마음이 가는 영역, 고객이 원하는 영역을 조사해 다시 정리하고 있다. 올 하반기 이후에 선택기부의 영역과 방식을 더욱 적극적으로 개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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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일자리와 일상을 드립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할머니들께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곤 한다. 하루는 은행을 다녀오신 매듭지은이 할머니께서 옷의 냄새를 맡으며 “사람들이 나를 피하던데 나한테 냄새나?”하고 물어보셨다. 나이가 들어가면 우리의 몸에서는 자연스럽게 냄새가 난다. 직접 표현하진 않지만 할머니들도 그걸 느끼고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박혀있던 ‘할머니’에 대한 편협한 생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많은 할머니들이 사회가 보내는 부정적인 시선들에 상처받고 작아진다. 찬란한 젊은 날을 보내셨을 분들이 자꾸만 뒤로 숨고 있다. 당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상처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마르코로호는 지금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일자리를 드리는 것만으로는 할머니들께 행복한 일상을 선물할 수 없었다. 많은 할머니가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충족하지 못해서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고 계신다. 행복한 일상을 선물하는 것도 좋지만 일상을 회복하는 일도 시급해 보였다. 그렇게 고객들의 일상을 채우는 생활소품의 수익금은 일상을 잃어버린 할머니들의 일상을 회복하는 데 쓰게 됐다.
많은 할머니들이 갖고 계신 능력과 가능성은 ‘사회적 약자’라는 딱지 뒤에 가려지고 있다. 충분히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할머니들이 조연으로 엑스트라로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마르코로호의 ‘할머니 주인공 되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할머니들은 원데이 클래스 선생님, 온라인 취미 클래스의 크리에이터, 매듭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데뷔하면서 당신의 능력을 젊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뽐내고 계신다. SNS 채널을 통해 할머니의 유쾌한 일상과 새로운 도전을 소개하며 대중과 소통한다. “남사시러워”라고 하시던 할머니들은 어느새 모델이 되고 크리에이터가 되어 고객들의 사랑을 받는다.
마르코로호는 아직 우왕좌왕하고 있다. 할머니들의 삶과 젊은 직원들의 삶이 40년 이상 차이가 있는 만큼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서운하기도 하고 서로 답답해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맛있는 것을 먹다 보면 할머니들이 생각나고, 요즘처럼 코로나로 만나기 힘든 때는 애틋해진다. 띄어쓰기 하나 없는 무뚝뚝한 할머니의 문자에서 사랑을 느낀다.
그래서 더 잘 해내고 싶다. 더 힘내서 더 많은 할머니를 만나고,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더 많은 활동을 함께하면서, 그렇게 조금씩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싶다. “내 눈엔 다 예쁜데”라는 달달둥근달 할머니의 말씀처럼 우리를 예쁘게 바라보는 할머니의 시선을 다시 돌려드리고 싶다. 아, 오늘은 우리 할머니께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권대영 대표는 마르코로호를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알브이핀에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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