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 > 여기 사람 있어요 > 입주민 갑질에 시달리는 경비 노동자
그들은 왜 목숨을 걸고
아파트를 지켜야 하나요?

여기 사람 있어요 [2020.08] 입주민 갑질에 시달리는 경비 노동자
그들은 왜 목숨을 걸고
아파트를 지켜야 하나요?

글 김보섭 (편집실)

 

최근 아파트 경비 노동자를 향한 입주민들의 ‘갑질’ 논란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입주민들의 갑질 금지를 촉구하는 의견이 끊이지 않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네 아버지라 여기는 짠한 시선이 아닌 노동자로서 바라보고 그들의 노동인권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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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시달리는 경비 노동자들

어느 날 인터넷에 ‘경비원 휴게실’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올라왔다. 지난 4월 한 입주민의 지속적인 폭행에 시달리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던 경비원 최 씨가 실제로 사용하던 휴게실이었다. 사진 속 공간에는 전기 포트와 전자레인지 같은 가전제품과 근무할 때 입는 경비복, 그리고 화장실 변기가 함께 있었다.
경비원에 대한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 2019년 11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비 노동자 3,388명 가운데 24.4%가 입주민으로부터 비인격적 대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경비 노동자 네 명 중 한 명꼴로 ‘갑질’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뜻이다. 2018년에는 경기도 오산의 한 아파트에서 한 입주민이 인터폰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비 노동자를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2014년에는 입주민의 횡포와 모욕으로 인해 경비 노동자가 분신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2019년 국정감사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공공임대주택 관리 직원이 입주민에게 폭언 및 폭행 피해를 입은 사례가 2,923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비 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형태도 이러한 갑질 이슈에 일조하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용역회사에서 경비 노동자를 고용하는 경우는 65.2%이며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직접 고용하는 경우는 9.4%에 그쳤다. 근로계약 또한 3개월 등 단기로 설정돼 있어 입주민과의 갈등이 발생할 경우 곧장 해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비인격적 대우를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갑질은 디테일에서 비롯된다

최 씨가 사용하던 휴게실 사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경비 노동자의 고용환경도 큰 문제다. 2019년 「전국 아파트 경비 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경비초소를 휴게공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40.2%에 달했다. 따로 휴게공간이 있어도 지하에 있는 경우가 61%였다.
감시업무를 주 업무로 하는 경비 노동자는 일반 근로자에 비해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상대적으로 적은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분류되고 있다. 감시·단속적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예외 대상이기 때문에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 대한 조항의 적용에서도 배제된다. 문제는 실제 경비 노동자가 주로 하는 업무가 감시업무보다는 청소, 재활용 분리수거, 주차관리 등 관리업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비 노동자의 권리 조항을 강화하는 것은 경비 노동자의 해고 원인이 될 수 있다. 감시업무와 관리업무를 구분해서 경비원과 관리원을 따로 고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17년 9월 개정된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6항에는 ‘입주자 등,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주체 등은 경비원 등 근로자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고 근로자의 처우개선과 인권존중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근로자에게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를 어겼을 때의 처벌 규정이나 부당한 해고를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부당한 지시’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경비노동에 대한 최저임금은 2015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경비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만 임금 상승은 입주민의 관리비 인상으로 직결돼 다시 경비 노동자의 고용불안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낳았다. 현재 경비 노동자의 노동권 문제는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하나가 문제가 되는, 잔뜩 엉킨 실타래 같다. 이를 풀 수 있는 첫 번째 열쇠는 경비 노동자를 정당한 임금을 받는 근로자로 대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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