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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생각하기 [2020.09] 코로나, 기후위기, 그리고 인권

글 조효제 교수 (성공회대학교)

 

코로나 사태는 니파(1999), 사스(2002), 돼지독감(2009), 메르스(2012) 등 신종 감염병의 최신 버전이면서, 기후변화와 깊이 연결된 현상이다.
이런 감염병은 왜 발생하는가? 가장 단순하게는 박쥐, 천산갑 같은 야생동물을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면서 동물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긴 것이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깊은 원인이 있다.

 

코로나, 기후위기, 그리고 인권

 

팬데믹을 초래하는 원인, 기후변화

생태계가 다양한 생명사슬로 연결되어 있을 때엔 병원균이 소수의 생물 종에 집중되지 않는 ‘희석효과’ 덕분에 전염병이 퍼질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생물다양성이 줄어 생태계가 단순해질수록 병원체 확산효과는 커진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산업형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가축이 매개 역할을 하여 아생동물과 인간 사이에 바이러스를 전파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공장식 축산의 배후에는 자본주의적 거대 농축산업이 있다. 산림벌채, 광산개발, 댐 건설, 도로 개통 등으로 야생동물이 살 수 있는 서식처는 더욱 침범당하고 있다. 인구 증가와 도시 증가는 ‘질병의 승수요인 (disease multiplier)’이 됐다. 지구화로 이주, 여행, 운송이 급증하여 바이러스 이동이 용이해졌다. 요컨대 코로나 사태는 자연적, 사회적, 경제적 요인이 수렴된 결과다.
감염병이 기후변화와는 어떻게 연결될까? 기후변화는 신종 감염병의 유일한 독립변수는 아니지만 팬데믹 발생의 맥락을 바꾼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기후변화로 사람이 병원균에 감염될 민감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신종 감염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난 반세기와 기후변화가 악화되어 온 시기가 일치한다.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기후변화와 그로 인해 사라질 생물다양성, 그 두 문제에 코로나19도 연결되어 있다”며 “인간이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자연 속에서 잘 살던 그 아이들이 우리한테 바이러스를 털어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꾸 만들어서” 감염병이 나타나게끔 되었다고 설명했다. 환경학자 윤순진 교수와 감염내과 전문의 이재갑 교수는 인수공통감염병과 기후변화 모두 환경파괴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UNEP와 국제축산연구소(ILRI) 는 《다음에 닥칠 팬데믹 예방하기》라는 보고서에서 “팬데믹을 초래하는 원인은 기후변화, 그리고 생물다양성의 상실을 초래하는 원인과 흔히 동일하다”고 확언했다.

 

 

“코로나와 기후변화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거대한 인과관계의 그물망 내에서 함께 발생했음을, 이제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가르쳐 준 교훈

 

코로나가 가르쳐 준 교훈

그렇다면 우리가 바이러스 사태에서 얻을 수 있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교훈은 무엇일까? 우선, 극한기상이변은 기후변화의 하나의 얼굴에 불과하며 기후변화는 천의 얼굴을 한 현상이라는 점이다. 기후위기는 각종 질병, 정신질환, 자살, 범죄, 전쟁, 작황, 아동 발달 등 거의 모든 영역의 인간사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친다. 그중 하나가 코로나였다. 그런 면에서 감염병 위기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기후위기의 전체 양상에 눈뜰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코로나와 기후변화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거대한 인과관계의 그 물망 내에서 함께 발생했음을, 이제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이를 논리적으로 연장하면 ‘인재’의 근본원인을 따져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바로 여기서 인권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환경파괴, 막개발, 화석연료 기업의 생태살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궁극적으로 탄소 자본주의 등 사회적 고통 유발자를 인권 가해자로 지목해야 하는 것이다. 더 중요하게는 이러한 인권유린을 방지하고 시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당장의 코로나 대책도 필요하지만 근본적 개입이 장기적으로 훨씬 더 중요하다.
코로나는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재난의 악영향이 ‘차별적’으로 나타남을 보여 줬다. 사회적 약자에게 코로나는 직격탄이 됐고 기존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촉발제가 됐다. 코로나 사태는 재난의 사회적 차원에 대해 눈을 떠야 함을 각인시켰고, 이 점은 기후위기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기후위기가 복합적이고 연계적인 방식으로 인간 사회에 영향을 준다면, 그것에 대한 대응 역시 복합적이고 연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흔히 온실가스 감축을 기후대응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한다. 물론 온실가스 ‘배출 순제로’, 더 나아가 ‘배출 제로’는 기후대책의 최우선 과제다. 그러나 인류가 직면한 거대한 인과의 그물망, 즉 환경파괴, 생물다양성 감소, 6차 대멸종, 육식과 식량안보를 포함한 먹거리 문제, 정치사회 시스템의 불안 리스크 증가 등을 함께 조망해야만 한다. 탄소배출만 따로 떼어내 에너지 전환만 이야기하면 자칫 나무만 보고 숲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인권운동, 기후위기에 접근해야

증거가 이렇게 확실한데도 불구하고 왜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이다지도 무관심한가? 바이러스 사태를 다루는 방식과 기후위기를 다루는 방식은 왜 이렇게 다를까?
가장 큰 이유는 간접적이고 느릿느릿한 기후변화의 ‘맥락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만일 기후변화가 코로나19처럼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단기간에 큰 피해를 줬다면 전 세계는 오래전에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달성했을 것이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전환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이해당사자들이 많아 온실가스의 대폭 감축을 시도하지 못했다는 변명도 있다. 코로나 사태처럼 즉각적인 위기 상황에는 국민과 언론이 정부의 책임을 확실히 따진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정치 책무성의 다이내믹이 곧바로 작동한다. 그러나 기후변화 영역에서는 정치인들이 장기적 계획을 세울 인센티브가 적다. 공적 의제에 있어서 ‘문제 해결식 접근’은 흔히 볼 수 있지만 문제의 근본원인 을 따지는 ‘비판적 접근’을 취하는 경우는 드물다.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은 독립변수와 종속변수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직선적 인과모델의 ‘상자 바깥’으로 나와, 문제 전체를 조망하는 접근을 부담스러워한다.
앞으로 인권운동이 코로나와 기후위기에 대해 접근하려면 기존의 인권담론을 넘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첫째, 직접적인 가해와 피해를 중심으로 인권문제를 보던 통상적 시각을 넓혀 구조적 인과관계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당장 화석연료 기업의 활동과 정부의 무책임한 기후정책이 ‘인권유린 범죄’의 관점에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둘째, 적어도 기후위기에 관한 한, 환경운동, 인권운동, 여성운동, 장애인운동, 차별철폐운동, 교육운동 등 부문 간 운동 사이에 존재하는 칸막이를 허물어야 한다. 기후는 범분야적 성격을 가졌으므로 해법도 범분야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셋째, 정의의 원칙을 공간적으로는 전 세계로, 시간적으로는 미래세대로 넓혀서 적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와 함께 언젠가 반드시 등장할 ‘기후 과거사 청산운동’을 지금부터 준비하고, 현재세대의 기후범죄 행위를 철저히 기록해 두어야 한다.
넷째, 기후환경을 인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녹색 인권교육’이 나타나야 한다. 학습자들이 인권에 대해 품고 있던 고정관념을 넘어 세계와 사회에 고통을 주는 생태적 억압구조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동식물과 자연 등 비인간 생명체에 법인격을 부여하여 인권의 범위를 인간 바깥으로 넓힐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새로운 인권 요구가 언제나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뚫고 현실화되었던 인권 발전역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조효제 교수는 성공회대학교에서 인권사회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인권의 최전선』(2020), 『인권의 지평』(2016) 등의 책을 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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