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 > [특집] 마주듣기 > 사람과 자연의 공존 우리가 만드는 생태인권마을

[특집] 마주듣기 [2020.09] 사람과 자연의 공존 우리가 만드는 생태인권마을

글 김혜정 (편집실) 사진 봉재석

 

‘수완동의 보물’ 풍영정천은 전남 장성군 진원면에서 발원해 광주 하남공단을 지나고, 수완마을을 굽이 흘러 영산강으로 합류한다. 우뚝 솟은 아파트를 양옆에 두고 흐르는 풍영정천은 주민들에게는 좋은 휴식처를, 동식물에는 좋은 삶 터를 제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풍영정천에 사는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풍영정천의 생태를 회복시키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풍영정천사랑모임 임미숙 사무국장

풍영정천사랑모임 임미숙 사무국장

 

 

 

풍영정천에 떠오른 물고기들

지난 2016년 5월 16일부터 5일 동안 풍영정천에 떠오른 죽은 물고기들. 광산구는 물고기 집단 폐사 사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수질 오염 여부와 죽은 물고기를 부검했다. 검사 결과 수중 용존산소(DO)는 9㎎/ℓ 이상으로 정상이었고 페놀이나 카드뮴 등의 중금속과 농약 성분도 없었다.
광산구는 갈수기인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월산양수장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시기가 끝나 풍영정천 바닥에 쌓인 퇴적물이 부패하면서 수질을 악화시켰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물고기 떼죽음이 “수질과는 무관하다”며 “풍영정천 수량 부족과 물고기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이후 8월 30일, 풍영정천 물고기들이 또다시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풍영정천에는 하얀거품이 흘렀다. 광주시는 하남산업단지 내 세제 제조업체가 오염물질을 방출한 사실을 확인, 업체 측에 중단을 요구했다. 광주시민센터 산하의 ‘풍영정천사랑모임(이하 풍사모)’ 회원들은 풍영정천 오염 원인을 찾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바로 가까이에 하천이 있어서 너무 좋았는데 관리를 하지 않으면 냄새가 나고, 폐수에 의해 물고기들이 죽으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했습니다. 단순히 청소를 몇 번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어요.”
풍사모의 제안으로 민관합동 풍영정천 환경모니터링단이 결성됐다. 이들은 2017년 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풍영정천을 살폈다. 수질을 검사하고, 요주 구간을 살펴보며 방지책을 토론했다. 그리고 2017년 11월, 풍영정천 하남교 아래 ‘IoT(사물인터넷) 활용 수질감시시스템’을 개통했다. 그렇게 풍사모는 풍영정천의 생태를 지키는 파수꾼이 됐다.
“휴대전화에 앱을 깔면 폐수가 흘러들어왔을 때 알람이 와요. 보통 산단에서 폐수를 버리는 건 새벽이나 주말, 비 오는 날인데, 앱은 언제든지 문제가 생기면 알람이 오니까 즉각 대처할 수 있죠. CCTV도 4대가 있고요.”

 

우리가 사는 마을, 우리 손으로

 

우리가 사는 마을, 우리 손으로

하남교 아래 세워진 수질감시시스템은 깨끗한 풍영정천을 만들기 위한 주민들의 그간 노력이 결집한 것이었다. 광주시민센터는 광산구생생도시아카데미 공모사업에 ‘풍영정천 수질개선안’을 제안했고, 선정돼 사업비를 받았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리빙랩’ 방식이었다. 풍사모 소속 주민들은 산단을 돌아다니며 수질감시시스템에 관해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학교와 다른 마을 공동체를 돌아다니며 참여도를 높였다.
“앱을 통해 수치를 확인할 수 있으니 학생들도 그렇고 어른들도 그렇고 조금 더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더라고요. 공단 분들도 경각심을 느끼는 것 같아요. 주민들이 계속 지켜보고 있는 걸 아니까요.”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퍼지면서 집 근처 풍영정천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서너배 늘었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도 더욱 관심을 두게 됐다. 풍영정천에서 냄새가 나거나 어느 배수구에서 물이 넘치면 풍사모로 제보 전화가 오기도 한다. 그렇게 수완마을은 주민들이 함께 가꿔나가는 ‘생태인권’ 마을이 됐다.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분들이 처음에는 많지 않았어요. 우선 ‘마을’이라는 곳에 생각을 집중하는 데 시간이 걸렸죠. 지금은 ‘마을공동체’, ‘지역공동체’라는 단어를 많이 쓰지만 마을 활동을 시작하던 2003년 즈음만 해도 주민들에게 ‘마을’이란 보통 주부들이 있는 곳, 아빠들에겐 직장에 갔다가 오는 쉼터 정도였어요.”
지난 2009년 풍사모가 결성된 이후 주민들은 풍영정천의 자연을 그리는 생태세밀화 프로그램, 풍영정천의 발원지 탐방, 풍영정천 생태 모니터링 등 남녀노소 쉽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풍영정천을 알아갔다. 이러한 활동성과를 모아 생태 지도와 생태가이드북을 제작했으며, 각 초등학교를 찾아 교육했다. 2015년과 2017년에는 풍영정천생태 해설가 양성교육도 진행하면서 활동 반경을 점차 넓혀갔다.

 

풍영정천 생태마을지도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인권마을 선언문

 

꼭꼭 약속해

 

내 친구 풍영정천은 말이죠
봄 햇살 먹고 자란 개망초가 좋대요
여름이면 어른 물고기들 씩씩하게 키우고
가을엔 꺽다리 갈대밭 속에서 숨바꼭질 한대요

내 친구 풍영정천은 말이죠
하얀 눈이 와도 쉬지 않고 흘러요
노랑 발 쇠백로 잘 있나 돌아보고
흰뺨검둥오리 맘껏 놀다가라 하지요

아름다운 풍영정천을 아끼고 사랑할 거야
하천이 건강하면 마을도 건강하니까
꼭꼭 약속해
깨끗한 물 흐르게 곁에서 지켜줄 거야

풍영정천 생태마을지도

 

자연과 공생하는 생태인권마을

4년 전 풍사모는 수완마을에 ‘생태인권마을’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풍영정천 활동을 조금 더 특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구성원들도 ‘생태인권’이라는 단어에 조심스러웠다. ‘인권’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붙일것인가에 대해 많이 공부했고 특히 ‘환경권’에 대해 고민했다.
“인간은 자연과 함께 공존하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갈 수가 없더라고요. 환경이 변화하면 인간도 절대 혼자 살 수는 없겠죠. 수완지구는 풍영정천이라는 소중한 보물이 있으니 그것부터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후변화’의 시대가 ‘기후위기’의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 처음에는 ‘생태인권’이라는 단어를 낯설게만 느꼈던 지역주민들도 이상 고온이나 기록적 폭우 등 기후변화를 직접 체감하고 주변 생태를 대하는 태도를 달리하고 있다. 최근엔 범정부 차원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광산구에서도 기후위기대응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관련 조례 제정에 적극적이다. 임미숙 처장은 광산구 기후위기 대응 특별위원회에 입법자와 지역주민들 중간에 서서 주민들이 힘을 합쳐서 해볼 수 있는 활동에 대해 고민한다.
“기후변화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풀어야 할 숙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불평불만을 하면서 정부가 완벽한 대책을 내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변화의 방식을 채택해서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작은 실천은 큰 변화를 일으킨다. 스웨덴의 한 소녀가 홀로 시작한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가 전 세계로 퍼진 것처럼, 내 삶의 공간을 지키기 위한 작은 행동이 모이면 어느덧 지구의 온도가 낮아지고, 인간과 동식물이 건강하게 공생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풍영정천을 지키는 수완마을 파수꾼들과 환경을 위해 ‘나’부터 노력하는 모든 이들의 행보를 응원한다.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