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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이 말하는 인권 [2020.10] 일회용품에 대한 불편한 시선

글 이주은 공동대표 (알맹상점) / 사진 알맹상점 제공

 

지난 2018년, 쓰레기 대란으로 집 앞에 쓰레기들이 쌓이자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배달음식은 일상이며 일회용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자원들이 아깝다. 망원시장에 플라스틱 비닐을 줄이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모였다. ‘알맹@망원시장’으로 활동하는 알짜들이다.

 

 

쓰레기를 줄이는 자발적 모임, 알맹

 

 

쓰레기를 줄이는 자발적 모임, 알맹

비닐은 1959년 스웨덴 공학자 스텐 구스타프 툴린이 개발했다. 당시 많이 사용되던 종이봉투의 원료인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비닐봉지는 아이러니하게도 70년 만에 엄청난 자연 재앙을 남겼다. 하지만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비닐이 완벽하게 분해가 된 것을 본 사람은 없으며, 미세 플라스틱으로 남아 동식물, 그리고 인간에게 돌아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 됐다.
비닐에 대한 규제는 지난 2018년 발의됐다. 큰 대형 상점은 비닐규제에 해당이 되지만, 소규모 상점이 모여 있는 시장에서는 아직도 무분별하게 검은색 비닐봉지를 사용하고 있다.
시장에서 장을 보게 되면 장바구니를 들고 가더라도 기본적으로 3~4장의 검정 비닐봉지가 장바구니 안에 들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고객을 생각한 과잉 친절은 개별포장으로 다가왔다. 장바구니가 없어도 물건을 살 수 있도록 묶음 포장이 되어있고 식자재가 비닐로 모두 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겠다는 규제가 무색하다. 개인의 노력으로 이를 줄일 수 있을까? 생산설비에서 줄이지 않는 쓰레기를 어떻게 소비자들이 줄일 수 있단 말인가?
조금 자리 잡히는가 했던 일회용품의 규제는 ‘코로나 19’로 인해 풀려버렸다. 서울시에서 일시적으로 풀린 규제는 전국으로 퍼졌고 사람들의 인식은 플라스틱과 같은 일회용품을 더욱 안전하고 깨끗한 것으로 인식하게 됐다. 다른 나라는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의 생산, 사용을 줄이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거꾸로 가는 시계처럼 안타까울 뿐이었다. ‘알맹’ 활동은 무분별한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불편한 시선에서부터 시작됐다.

 

 

 

쓰레기를 줄이는 작은 시작

알맹@망원시장 알짜들의 활동은 장바구니와 종이봉투를 기부받아 무료 대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알짜들은 2주에 한 번씩 기부받은 깨끗한 에코백과 종이봉투를 모아 상인들에게 드리며 비닐 줄이는 것에 동참해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 반응은 냉정했다. 에코백, 종이봉투를 보관할 장소의 여유가 없으며 사용할 시간도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2년 정도 활동한 결과 알맹 활동을 환대해주는 상인분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함께하는 상인들이 많아질수록 감사하다.
플라스틱 봉투 줄이기 캠페인을 하며 알짜들은 망원시장 상인회 건물 안에 있는 카페 한쪽에서 제로웨이스트 물건과 세제를 소분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빈 용기만 들고 오면 세제를 원하는 만큼 담아가는 방식이다.
세제는 더러운 것을 씻는 것이 목적이므로 소분할 때 비교적 오염도가 적다. 또 내가 원하는 만큼 소량만 구매하기 때문에 대용량을 사서 유통기한이 지난 뒤 버리는 것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세제를 소분해 담아갈 수 있는 곳들이 많아진다면 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해외에는 공산품을 소분해 갈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상점이 많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없을까? 이런 생각으로 알짜들의 공간을 마련했고, 이는 ‘알맹상점’으로 이어졌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

처음에는 다른 가게의 공간 한편에서 팝업스토어 형태로 시작됐다. 무인 가게를 기본으로 운영진 3명이 2주에 한 번씩 지킴이 역할을 하며 재고파악을 하고, 비어있는 물건을 채워 넣었다.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멀리 포항에서, 창원에서 알맹이를 담아가는 ‘알맹러’분들이 찾아주셨다. 생각보다 많은 응원 속에서 알짜들은 알맹상점 정식 오픈을 준비했다.
여러 규제와 막혀있는 법 제도를 익히고 화장품을 소분할 수 있는 국가 자격증을 준비하는 등 할 일이 끝도 없었다. 화장품을 소분할 수 있는 법이 제도화되면서 올해 처음 시행한 시험에 통과도 해야 했다. 노심초사했던 시험은 다행히 대표 중 한 사람이 붙었고 그렇게한국 최초로 각종 세제와 화장품을 소분해 갈 수 있는 ‘리필 스테이션’이 무사히 문을 열었다.
불필요한 쓰레기 없이 납품을 받기 위해서 하루에 업체 두세 곳과 미팅하며 조율해갔다. 일회성으로 보내지는 쓰레기를 어떻게 하면 함께 줄일 수 있는지 말이다. 그 방법 중 하다가 B급 상품이다. 알맹상점에서는 업체에 반품되거나 검수 과정을 거쳐 스크래치가 난 상품들, 하지만 사용하는 데 지장이 없는 B급 상품을 보다 저렴하게 판매한다.

 

 

 

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용기를 들고 불편함을 추구해야 할까? 버려지는 자원을 한두 번이라도 더 쓸 수 있고,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대안적인 모습이라 생각된다. 세제와 화장품류 용기들은 보관 시 자외선을 막고, 예쁘게 만들기 위해 유색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더욱 견고하고 단단하게 하도록 합성 플라스틱을 쓴다. 이렇게 생산된 용기는 재활용 업계에서는 가장 질 나쁜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을 새롭게 생산하는 값이 재활용 값보다 저렴하므로 재활용 업자들은 이런 품목을 취급할 이유가 없어진다. 취급하려는 곳들이 줄어듦에 따라 이러한 용기는 일반쓰레기로 배출된다.
표시사항과 달리 실질적으로는 재활용이 잘 되지 않는 셈이다.
지난해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제품 포장재를 재활용 용이성에 따라 최우수, 우수, 보통, 어려움 등 4단계로 등급화해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주기 시작했다. 국내 여러 기업이 고유의 페트병 색깔을 바꾼 이유도 이와 같다. 투명한 페트병일수록 질 좋은 플라스틱으로 등급이 매겨지며 깨끗하게 씻어 말려 버려진다면 비교적 재활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다음에는 쓰레기랑 만나요

으레 사람들은 기후위기와 멸종위기 동식물 등에 대한 이야기를 기사로만 보았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맹상점을 방문한 ‘알맹러’들은 대안 물건을 보고, 쓰레기에 대한 퀴즈를 풀며 쓰레기에 대한 감수성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우리는 알맹상점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다음번에는 쓰레기 들고 오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알맹상점 커뮤니티 회수센터에서는 작은 플라스틱, PP, PE, 깨끗하게 씻은 우유 팩, 테트라 팩, 실리콘, 커피 가루, 운동화끈, 브리타 정수 필터 등을 수거한다. 우유 팩, 테트라팩은 재생용 휴지로 만들고, 플라스틱 재질은 알록달록한 치약짜개로, 커피가루는 커피 화분과 연필, 실리콘은 스테인리스 반찬 통 만드는 곳에서 모아 재활용한다. 운동화 끈은 반달주머니 끈이 된다. 브리타 정수필터는 재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판매함과 동시에 업체 측에 수거 시스템 도입 촉구를 요청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지난 6월 15일 오픈 이후 7월 14일까지 알맹상점이 순환시킨 자원은 총 49.282㎏이다. 지난 7월 15일부터 한 달 동안 모은 자원은 총 107.622㎏다. 쓰레기가 되는 자원을 개인이 조금 신경 쓰고 올바르게 배출한다면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독일은 오는 2021년 7월부터 플라스틱 일회용품의 판매를 금지한다. 케냐에서는 지난 2017년부터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법적인 규제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알맹’ 활동은 지속해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알맹상점의 목표는 개인이 쓰레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높이고 새로운 소비문화를 만들어내는 것.
여러 지역에서 쓰레기를 줄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속할 수 있도록, 알맹이만 가지고 갈 수 있는 상점들이 더 전파되도록 다양한 커뮤니티를 조성해 나갈 수 있길 바란다.

 

이주은 공동대표는 알맹상점에서 막내를 맡고 있으며 상점의 전반적인 재고, 물건구매 그리고 잡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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