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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문제였나

어떤 날 인권 [2021.01] 막을 수 있었던 16개월 입양아 사망…
무엇이 문제였나

글 오세진 (서울신문 기자)

 

막을 수 있었던 16개월 입양아 사망…

무엇이 문제였나

 

 막을 수 있었던 16개월 입양아 사망…  무엇이 문제였나


지난 1월 13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은 이른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양천구청 공무원들이 거리두기를 지켜 줄 것과 50인 이상이 모이는 모임은 금지라는 사실을 안내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였다.

이날은 사망 당시 생후 16개월 된 입양 아동 정인이를 학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부모의 첫 재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법원 앞에 모인 사람들은 ‘우리가 정인이 엄마·아빠다’라는 글자가 적힌 피켓과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받은 양모에게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취지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4만 1389건. 국내 아동보호 전문 기관이 2019년 한 해동안 접수한 아동 학대 신고 건수다. 직전 해인 2018년 접수된 신고 건수(3만 6417건)보다 13.7% 증가한 수치다. 4만 1389건의 아동 학대 신고 중 아동 학대로 최종 판정된 사건 수만 3만 45건으로, 전체의 72.6%를 차지한다.

아동 학대 정의와 금지 대상이 되는 아동 학대 행위유형, 학대 피해 아동을 발견·보호·치료하고 아동 학대 예방 기능을 수행하는 전문 기관(아동보호 전문 기관)의 설치 근거와 아동 학대 신고 의무·절차 등을 아동복지법에 명시하여 지금의 아동보호 체계의 뿌리를 심기 시작한 때가 2000년이다. 2014년에는 아동 학대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아동학대처벌법(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새로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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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동 학대 문제는 근절되지 않았고, 최근 5년 (2014~2019년)만 봐도 아동 학대 신고 건수는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6월만 하더라도 충남에서 보호자의 학대로 아홉 살 피해 아동이 여행용 가방에 갇혀 끝내 사망한 사건, 그리고 경남에서 수년동안 지속된 보호자의 학대를 견디지 못한 아홉살 피해 아동이 4층 높이의 집 베란다에서 추락 위험을 무릅쓰고 옆집으로 탈출한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사건들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생후 16개월 된 입양 아동이 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사건(이하 ‘이 사건’)을 목격했다.

지난해 10월 13일 양천구의 한 병원에서 이 사건피해 아동이 복부 손상으로 사망했다. 당시 피해아동의 몸은 멍투성이였다. 이 병원 관계자는 아동 학대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이 사건 부모가 피해 아동을 오랜 기간 상습적으로 학대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 사건 피해 아동이 학대를 받은 것으로 의심된다는 신고가 아동보호 전문 기관에 지난해 5월과 6월, 경찰에 지난해 9월 이렇게 세 차례나 접수됐지만 피해 아동이 끝내 학대 가정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관련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은 지난해 5월 1차 아동 학대 의심 신고를 접수한 날 조사에 나섰고, 이 사건 부모가 피해 아동을 ‘방임’(아동의 보호·양육·치료 등을 소홀히 함)했다고 판단했다. 이후 지속적인 사후 관리를 위해 사례 관리 담당자를 배정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해당 아보전의 판단과 대응은 미흡했다. 아보전은 2·3차 아동 학대 의심 신고건에 대해 ‘아동 학대 혐의 없음’으로 판단했다. 특히 피해 아동이 사망하기 한 달 전인 지난해 9월은 피해 아동을 진료한 한 소아청소년과 원장이 피해 아동의 영양 부족 상태를 보고 아동 학대를 의심해 112에 신고한 시기이다. 당시 피해 아동은 혼자 걷지 못할 정도로 영양 상태가 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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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아동의 부모는 아보전의 조사에서 “(이 사건 피해 아동) 입 안에 염증이 생겨서 (피해 아동이) 이유식이랑 물을 섭취하기 어려웠고, 이로 인한 체중 감소일 뿐”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하지만 소아과 원장은 “아동의 입 안 상처가 심각해서 음식물 섭취가 어려울 수는 있지만, 음식물 섭취가 어렵다고 해서 몸무게가 1kg 가까이 빠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보전은 부모와 함께 피해 아동을 다른 소아과에 데려가 진료를 보게 했고, 이 소아과 의사는 단순 구내염으로 진단했다. 이후 아보전은 피해 아동의 입 안 질병이 부모의 학대로 인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 않았고 ‘아동 학대 혐의 없음’으로 판단한 것이다. 아동학대가 아니라는 취지의 부모 진술과 아동 학대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소아과 의사 소견만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사건 피해 아동의 입양을 주관한 입양 기관인 홀트 아동복지회(이하 ‘홀트’)의 대응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홀트는 피해 아동의 입양 확정일인 지난해 2월부터 피해 아동 사망 전까지 8개월 동안 가정 방문과 전화 상담을 여러 차례 진행했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 사건 부모에 대한 예비 입양 부모 교육, 상담 및 가정 조사 등의 양친가정조사를 했다고 밝혔다. 입양기관은 양친이 될 사람의 혼인 생활 및 그 밖의 가족 상황과 현재 수입 및 재산 상태, 알코올 등 약물 중독 여부와 그 밖의 건강 상태, 인격·품격 및 종교관뿐만 아니라 ‘입양에 대한 태도와 입양 동기’를 조사한다.

하지만 이 사건 양모의 변호인은 “양모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때 (이 사건 피해 아동에게) 체벌을 가했고, 첫째딸(친딸)에게도 체벌을 가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점에서 홀트는 양모의 학대 가능성을 검토해야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공소장에 “피고인들 (이 사건 양부모를 가리킴)은 입양을 통한 가정의 구성과 부모의 책임 및 자녀의 양육에 대한 사려 깊은 고민 없이 친딸의 성장 과정에서 친딸에게 정서적 유대 관계를 길러 주기 위해 터울이 적은 여아를 입양하기로 하고 입양 절차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입양 절차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고 자녀를 필요로 하는 양부모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점이 문제라고 말한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예비 입양부모 교육은 입양 결정을 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비 입양 부모로 하여금 입양이 꼭 필요한 일인지 재고하도록 하는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서 “자녀에게 형제자매를 만들어주려는 것이 입양의 일차적 동기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홀트는 이 사건 양부모에 대한 적격 심사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최종적으로 (가정법원) 판사의 허가 판결로 입양이 완료된다.”고 설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면피’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검찰의 수사 결과와 이 사건 양모의 변호인 설명, 그리고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홀트는 이 사건 부모의 입양에 대한 태도 및 입양 동기에 대한 조사를 충실히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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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경찰의 대응이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해 5월과 6월 이 사건 피해 아동과 관련한 아동 학대의심 신고를 접수한 아보전의 수사 의뢰를 받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각각 ‘내사 종결’과 ‘불기소 의견송치’ 처분을 했다. 경찰은 부모 조사와 홀트 및 아보전의 의견, 의사 소견 등을 토대로 아동학대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3차 의심 신고 접수 때는 부모가 피해아동과의 분리 조치에 대해 격한 반응을 보이고 피해아동 신체에서 학대 정황이 발견되지 않아 아보전에서 사례 관례를 하는 것으로 협의했다고 했다. 경찰은 이 사건 피해 아동 사망일로부터 일주일뒤인 지난해 10월 20일이 돼서야 이들 보호자를 아동 학대혐의로 처음 조사했다.

결국 이 사건 피해 아동의 사망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으나 피해 아동의 안전을 보장하고 입양 후 적응여부를 살필 책임이 있는 각 기관들의 사후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대응은 소극적이었다.

이 사건 발생 직후인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은 2회 이상 신고되는 아동 학대 사례에 대해 피해 아동을 학대 행위자에게서 분리하겠다고 밝혔지만 신고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충남 아동 학대 사건의 경우에도 피해 아동이 사망하기 한 달 전에 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지만 관할 아동보호 전문 기관은 피해 아동을 긴급하게 가정과 분리해야 할 정황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가해자들을 포함하여 아동 학대 범죄 행위자들이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동 학대행위자들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나 처벌에만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가해자 처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재발 방지책 마련이다. 아동 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깊은 고민 없이 반복되는 땜질식 처방은 아동복지현장에 혼란만 초래할 뿐 소용이 없다. 각 기관들이 협업해 아동 학대 신고 현장에서 아동의 상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을때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살펴 아동이 안전한 양육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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