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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생각하기 [2021.03] 코로나19가 드러낸 정신질환자의 삶

글 하경희 교수(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코로나19가 드러낸 정신질환자의 삶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대규모 전염병으로 의료체계가 붕괴되고, 방역으로 일상이 무너졌으며, 그로 인한 경제적 침체는 전 인류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는 모두에게 똑같지 않았다. 어쩌면 이전부터 존재했던 각 사회의 취약한 고리들을 무섭게 파고들어 그 문제점을 드러냈는지도 모른다. 한국은 비교적 성공적인 방역대처로 전 세계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한 나라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우리나라에서도 어두운 그늘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한국에서의 코로나19 첫 사망자는 청도대남병원에 장기 입원해 있던 정신질환자였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처해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한국에서 정신보건법이 제정된 지 25년이 지났다. 정신보건법의 제정은 정신건강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시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와 인권보장, 그리고 지역사회 기반의 지원체계를 구축한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 간 한국에서의 정신질환자의 삶이 과연 나아졌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이미 서구에서는 70~80년대 정신병상을 최소화하고 지역사회 지원체계를 구축했던 반면, 한국은 여전히 정신병상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비자의 입원율이 32.1%, 6개월 이상 장기입원환자 비율도 23.5%로 나타나고 있다. 그에 비해 지역사회기반 서비스의 경우 정신재활시설이 단 1개 소도 없는 지역이 전체 시군구 중 45.8%에 달한다. 그나마도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탈원화를 전격적으로 추진했던 이탈리아의 경우 1978년 개혁입법을 기점으로 모든 정신병원을 폐쇄하고, 모든 환자의 입원연장을 금지하며, 신규 입원 기간을 7일 이내로 제한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 탈원화와 지역사회정신건강이라는 전 세계적인 흐름에 한국은 여전히 역행하고 있다. 청도대남병원에서의 첫 사망자는 무연고자로 20년 이상 장기입원해 있었고, 42kg에 불과한 몸무게로 사망해서야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탈원화에 대한 정책이 구체화된 적이 없다. 여전히 병원과 정신요양시설에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국가조차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정신질환자의 삶

 

물론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로 나온다고 해도 그 삶은 결코 녹록지 않다. 실제로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고용률은 비장애인의 1/4, 전체 장애인의 1/2 수준이며, 수급가구 비율이 타 장애 유형의 3배 이상이고, 주거 또한 자가 소유 비율 및 주거환경에서 더 열악하다. 이에 정신장애인이 인식하는 삶의 만족도나 차별받고 있다는 인식도 타 장애유형에 비해 심각하다. 이는 정신질환자를 치료와 관리의 대상으로만 볼 뿐 지역사회에 참여하여 자립적으로 살아가야할 주체로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복지서비스에 대한 규정이 신설되었지만, 시행규칙은 아직까지 마련되지 못했다. 장애인 복지체계에서는 장애인복지법 제15조를 비롯하여 정신장애인을 배제하며 이중차별하고 있어 실제적인 지원에 한계가 있다. 결국 정신건강 체계에서도, 장애인복지 체계에서도 정신질환자의 자립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이는 고스란히 당사자와 가족의 책임일 뿐이다. 어쩌면 정신질환자의 장기입원은 사회와 가족에게는 가장 효율적이지만, 결국 당사자의 희생만을 전제로 하는 결론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배제당한 소수자지만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매우 부정적이다.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상실한 자, 사회를 위협하는 예비범죄자, 혹은 무능력자로 치부된다. 정신질환은 정신적 결함이 있는 특정한 사람들만의 문제이고, 오히려 이들로부터 사회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2016년 실시된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며, 전 국민의 4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은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조현병 증상을 경험하는 경우도 약 1.8%로 나타났다. 결코 우리와 다른 특정 소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 주관적인 건강상태 꼴찌, 행복순위 뒤에서 3위, 청소년 행복지수 22개국 중 20위로 나타났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건강하기 매우 어려운 환경임을 보여준다.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입시경쟁 속에서, 폭력과 따돌림으로, 경제적인 위기로, 그리고 패자부활이 힘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발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정신질환자를 우리와 다른, 정신적 결함이 있는 특정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편견과 무관심, 그리고 배제가 정신건강에 대한 도움을 꺼리게 만듦으로써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6년 실태조사에서 정신질환이 있었던 대상자 중 22.2%만이 정신건강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정신질환이 있지만 사회적 시선이 무서워 혹은 도움을 받아야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해 중요한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정신질환을 더 이상 나와 다른 특정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아야 한다. 신체적인 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인식하고, 누구나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지원체계를 구축하며, 그 과정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보장될 수 있는 인권기반의 접근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정신질환자 당사자의 블로그에서 본 글이다.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죽음의 원인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신병이 있으니까 왜 죽음을 시도했는지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내 이름 석자보다 나를 더 대표하는 타이틀이 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죠”.

 

정신질환자가 된다는 것은 한 개인의 고유성과 삶의 역사가 삭제되고, 사회적 편견과 전문가의 개입 속에 가둬지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와 존엄성이 정신질환자에게는 예외가 되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의 인권도 장담할 수 없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 그 곳에 방치된 정신질환자가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던진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정신질환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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