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 > [특집] 깊이읽기 >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과 이웃으로 사는 방법

[특집] 깊이읽기 [2021.03]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과 이웃으로 사는 방법

글 백종우 교수(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사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진료 중인 분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이웃에 혼자 사는 사람이 밤새 혼잣말을 하다가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일이 반복되는데 문도 열어주지 않아 만날 수도 없고 매일 밤 잠을 설치며 불안에 떨고있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다 죽여버린다는 소리까지 들려 경찰에도 연락해보았지만 해결책은 없었다고 한다.

 

이웃의 조현병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락해보라고 했지만 가족도 연락을 끊어 방법이 없다고 한다. 최근에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산업화, 핵가족화와 함께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조현병 환자를 돌보던 부모는 나이들고 아프다. 지금 이제 우리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들과 함께 살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0년 대한민국과 조현병

 

조현병은 세계적으로 인구 중 1%에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대게 20대에 발병하여 평생에 걸쳐 영향을 줄 수 있는 질환이다. 흔히 망상과 환청과 같은 환각과 함께 대인관계가 감소하는 등의 음성증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때 진단된다. 조현병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도파민 등 뇌신경 전달물질 이상과 관련된 뇌질환으로, 치료를 위해서는 도파민을 조절하는 약물치료와 함께 회복을 위한 정신치료, 재활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 정신약물의 개발과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서구에서는 1970~80년대 미국, 이탈리아, 영국 등 많은 나라에서 탈수용화 운동이 민관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면서 장기입원을 줄이고 좋은 치료환경을 이용하며 지역사회에서 찾아가는 서비스를 늘리는 정신보건개혁이 이미 이루어진 바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 2018년부터 경북경관사망사건, 고 임세원 교수 사망사고, 진주방화사건 등 조현병 관련한 심각한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조현병 포비아’라는 신조어가 회자되기도 하였다. 억울한 죽음에 대한 분노는 이해할 수 있는 면도 있지만 조현병 환자와 가족을 더 힘들고 숨게 만들어 모두가 더 위험해지는 악순환만 초래할 수 있다.

 

실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그동안 조현병 환자를 돌보았던 가족들은 어려움의 1순위로 복지서비스 부족보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꼽을 정도이다. 사실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보다 높지 않다. 국내에서도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보고된다. 조현병과 관련된 최근 사망사건의 공통점은 예외 없이 이전에 조현병 진단을 받은 바 있으나 치료가 사고 당시 중단되어 지역사회에 방치된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진주방화사건의 피의자 안인득의 경우도 이웃이 7번 경찰에 신고했으나 경찰만 찾아오면 고개를 숙이니 경찰은 조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어머니는 입원 중이었고 형이 나서서 입원을 시키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직계가족인 보호의무자를 데려오라는 답변만 반복된 상황에서 비극이 발생하였다.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일반인에 비해 위함하다'란 인식 조사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입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시행한 대국민정신건강지식 및 태도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10명 중 6명(60.0%)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일반인에 비해 위험하다’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독일의 경우 정신질환자들이 공격적이고 난폭한 행동을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약 25%로 조사되었어 상대적으로 낮았다. 같은 질환인데 나라에 따라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독일은 판사가 비자의 입원을 결정하는 나라이다. 신체를 구속하는 결정이므로 가족이나 전문가가 아닌 법원이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신건강전문가팀의 지원과 함께 판사가 본인의 의사를 충분히 듣고 판단하는 것이 인권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웃이 아프다면 이 시스템을 통해 정신건강평가를 통해 조기발견이 가능하고 그래서 방치되는 사람과 사고가 감소된다면, 사람들의 인식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정신보건법이 시행되었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환자가 비인가 요양원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당시로는 진보였다. 그러나 위험의 외주화는 단지 산업현장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공립병원이 비자의 입원을 담당해 온 서구와 달리 국내에서는 95%가 민간정신병원에 맡겨져 왔다.(국공립정신의료기관 18개 소, 민간정신의료기관 1,431개 소. 2017년 기준) 이마저 의료급여정액제 등 의료보험에 비해 낮은 보상으로 장기입원이 새로운 문제가 되었고 이들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지 못했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조현병 환자를 지역사회에서 치료하고 지원할 시스템은 부족하다. 거기에 편견이 만든 장벽까지 더해져 아픈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로 내몰리면 그 피해는 국민이 보게 된다.

 

산업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는 정신건강치료와 지원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1위를 차지하는 변화된 인구구조에서 더이상 환자와 가족만의 힘으로 중증정신건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8년 노부모를 누가 봉양하냐는 질문에 88%가 자식이라고 답했다. 그 비율은 2018년 30% 이하로 감소하였다. 반면 사회 등이라는 대답이 50%를 넘게 되었다. 치매국가책임제가 대선공약으로 추진된 배경이다. 이후 발달장애 국가책임제가 논의되었다. 이제는 중증정신질환의 국가책임제를 통해 인권과 안전 그리고 치료를 동시에 가져나갈 제도와 정책이 요구된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차별과 편견 없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

 

2018년 12월 31일 발생한 고 임세원 교수의 비극은 이틀 후 유가족의 호소로 변화의 시작이 되었다. 끔찍한 사고로 조현병에 대한 편견과 격리에 대한 사회적 주장이 비등해질 상황에서 유족은 ‘안전한 진료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치료환경’을 고인의 유지로 밝힌 바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 이러한 호소는 많은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임세원법이라는 이름으로 외래치료지원제와 치료비 지원, 정신응급센터 등의 변화가 있었지만 결국 중증정신질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와 같은 수준으로 좋은 치료환경과 지역사회 케어가 핵심이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1위를 차지하는 변화된 인구구조에서 더이상 당사자와 가족에게만 중증정신건강의 문제의 책임을 떠넘겨서는 이 문제의 해결이 요원하다. 시대에 맞는 방향으로 보호의무자 입원을 폐지하고 정신건강심판원 등 국가기관이 인권을 존중하고 필수적인 입원이나 진료의 절차적 정당성부터 확보해야 한다. 좋은 치료환경을 제공하여 스스로 조기에 치료받게 하는 것 그리고 지역사회에 다양한 커뮤니티케어를 도입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건강에서 지자체의 책임성이 개선되야 한다. 방치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조현병 환자는 그 누구보다 우리의 선량한 이웃이다.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