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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21.03] 정신장애인, 미디어의 만만한 먹잇감

글 김양균 의학기자(前 쿠키뉴스 몬스터랩)

 

정신장애인, 미디어의 만만한 먹잇감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신장애인 차별 편견 해소를 위한 실태조사’를 통해 대중매체가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 형성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정신질환-폭력의 연관성을 강조함으로써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이를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미디어가 그리는 정신장애인의 모습은 대개 비슷하다. 지능이 낮고 덜 떨어진 바보로 희화화되거나 사이코 범죄자나 살인마 등과 같이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용의자로 묘사되는데 모두 자극적인 탓에 쉽게 소비된다. 정신장애인처럼 만만하고도 잘 팔리는 소재는 없다. 굳이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말을 빌지 않더라도 이런 부정적 메시지가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는 자명하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사람을 거치면서 더 굴절되고 왜곡되어 간다.

 

2010년 사회복지연구를 보면 정신장애에 대한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대중은 많은 경우 질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 등의 지식을 매체를 통해 전달받고 있으며, 특히 우울증과 조현병과 같은 정신과 질환은 TV 뉴스 속 사건·사고나 드라마를 통해 정보를 얻고 있었다. 정신장애인에 대해 가장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묘사를 스스럼없이 하는 미디어는 바로 언론이다. 대표적인 것이 정신과 질환을 가진 범죄 용의자의 사건을 전하는 언론보도이다. 가뜩이나 발병 사실을 숨겨야 하고 쉬쉬해야 하는 정신장애인에게 미디어가 뿜어낸 뉴스는 생채기를 낸다.

 

“공포의 새벽 12살 여자어린이도 사망 피의자 조현병 앓아”, “일주일 만에 또 조현병 살인 10대가 위층 할머니 흉기 공격”, “부산서 조현병 앓는 50대, 친누나 무참히 살해”, “길거리서 행인 폭행 조현병 환자 경찰, 강제 입원조치”, “물소리 거슬린다 흉기로 이웃 찌른 40대 조현병 환자 영장”….

 

정신건강 및 정신질환에 대한 지상파 TV뉴스 보도 행태를 보면, 실제로 뉴스 속 정신장애인에 대한 묘사는 절반에 가까운 부분이 흥밋거리에 치우쳐 있다. 정신질환이 원인이 된 범죄, 자살, 가정파괴 등 사회적 부작용이나 부정적 결과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자극적인 뉴스는 더 빨리,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정신장애인들은 관리하고 통제해야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언론보도의 폐해를 막기 위해 정신장애 시민사회단체 중심의 정신장애인 언론보도 준칙 제정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나 정작 언론 스스로는 사안의 중대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눈치이며 보도준칙에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왜 내 기사에 감놔라 배 놔라 하느냐는 불쾌감과 기사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국민들, 즉 ‘정신장애인’까지 고려하면서 뉴스를 만들어야 하느냐는 오만. 혹자는 반문한다. 언론보도가 정신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만들었다는 증거가 있느냐.

 

실제로 여론은 나빠지고 있었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의 2018년 대국민 정신건강지식 및 태도조사를 보면, 응답자 10명 가운데 6명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위험한 편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60.5%).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에만 정신장애인 1,601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루 4명꼴로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 정신장애인의 자살률은 타 장애인 자살률보다 3배 가량 높고 전체 자살률보다 8.1배 높다.

 

정신장애인의 고립사나 자살,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차별 개선을 촉구하는 뉴스 제작에 한국의 언론은 과연 얼마나 신경을 썼으며, 반면 현저히 많은 수의 부정적 뉴스가 끊임없이 생산되는 현상은 도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국민의 알권리라는 대의명분 뒤에 숨어 쏟아내는 편향되고 자극적인 언론보도의 책임을 왜 지지 않으려 하는가. 그 알권리를 보장한다는 대상인 국민 속에는 정신장애인이 포함되지 않는가.

 

언론보도에서 정신질환과 정신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많은 이유는 뉴스의 더 많은 노출을 위해서라고 확신한다. 비록 이로 인해 정책 개선 등의 긍정적인 작용이 있더라도 인격을 무시하고 편견을 조장하는 보도는 문제가 상당하다. 결과가 좋으면 과연 다 좋은 것인가. 그렇다면 치료를 위해 사지를 결박해 독방과 같은 보호실에 개처럼 가두어 놓거나 폭행을 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면 용인되어야 하는가. 이는 전체주의적 사고의 발로와 다름 아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오랜 뉴스의 법칙은 대한민국 언론계에서 이상하게 뒤틀려 적용되고 있다.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방화를 의심한다. 용의선상에 거론된 인물에 대한 조사 과정 중에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정신병력 여부이다. 용의자로 확인할 증거가 수집돼 특정되면 수사 브리핑에서 그간의 수사 결과가 발표된다. 그때 브리핑에 참석한 누군가 묻는다.

 


2018년도 대국민 정신건강지식 및 태도조사

 

“피의자에게 정신질환이 있나요?”

 

자, 이제부터 경쟁이다. 가장 중요한 덕목은 어떻게 제목을 붙이느냐이다. 언론 데스크는 제목에 조현병, 정신병력 여부를 굳이 집어넣으면 방화 범죄는 곧 정신질환자 범죄로 뒤바뀌어 버린다. 이렇게 ‘제목장사’를 통해 포털사이트 메인에 기사가 걸리고 수백,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려 조회수가 치솟으면 결과적으로 뉴스사이트 안에 붙은 온라인 광고 액이 늘어난다.

 

그러므로 자극적인 보도는 곧 돈과 직결된다. 더 많이 보는 기사는 더 돈이 된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 표현과 편견을 조장하려는 악의적 의도보다 더 잘 팔리는 기사를 만들고 싶은 매체의 얄팍한 욕망은 정신장애인 모두에 대한 증오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셈이다.

 

“지역에 정신장애인이 살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니 할 말 다한 거죠. 사회적 약자가 가해자로 둔갑하고, 일부 복지 사각지대에서 자기 관리를 못하는 이들의 문제를 전체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조현병만 해도 이 병은 너무 흔한 질환이고 누구나 걸릴 수 있어요.”

 

한 정신장애인이 체념하듯 내게 들려준 말이었다. ‘배제’란 대개 이런 방식으로 이뤄진다. 미디어가 흡사 ‘2등 국민’인 것 마냥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그들은 정신장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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