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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21.08] 연예인, ‘저들도 사람이다’를 잊지 않는 것

글 이승한(TV칼럼니스트)

 

연예인도 사람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어디까지 사생활을 오픈하고 어디는 닫을지를 결정하는 건 온전히 당사자의 권리이며, 타인이 멋대로 그것을 침범할 권리는 없다. 명백한 범죄나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도덕한 사안이라면 모를까, 연예인의 사생활을 물어뜯고 씹기 좋은 가십으로 가공해 유통시키는 일은 근절되어야 한다. 이 논의가 시작되었던 아주 오래전에도 그랬고, 수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러하다.

 

연예인, ‘저들도 사람이다’를 잊지 않는 것

 

인스타그램의 시대에 ‘사생활 보호’를 이야기해야 하는 난감함

 

2021년 상반기는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연예인들의 사생활 이야기가 연예 뉴스를 도배했다. 연초에는 코미디언 박수홍이 오랜 세월 자신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던 친형이 거액의 돈을 횡령했다고 주장하며, 연일 박수홍과 친형 간의 서로 다른 주장과 반박이 뉴스를 수놓았다. 100억대의 돈을 가족에게 횡령당했다는 박수홍의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안쓰러운 마음을 표했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클럽을 드나들고 유흥을 즐기는 박수홍의 사생활 또한 그리 깨끗하지 않다며 내밀한 사생활을 폭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형제 간의 다툼이 다소 잠잠해질 무렵엔 ‘배우 한예슬의 애인이 사실 호스트바 출신 제비였으며, 한예슬 또한 과거에 LA에서 룸싸롱 호스트로 일했다’고 주장한 연예부 기자 출신의 유튜버 김용호와 이를 반박하는 한예슬과의 공방이 이어졌다.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물증은 공개하지 않고 계속 “누가 한예슬을 룸싸롱에서 봤다”는 제보가 온다는 식의 언급을 이어간 김용호와, 그 발언을 받아 적어 기사를 발행한 연예부 기자들은 남의 사생활을 이야기하면서 초여름을 바쁘게 보냈다.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TMI에 대한 불쾌함만큼이나 밀려드는 건, 끊임없이 사생활이 발가벗겨지고 때로는 왜곡되는 경험을 하는 연예인들에 대한 안쓰러움이었다.

 

‘연예인의 사생활은 어디까지 보호받아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는 건 곤혹스러운 일이다. 뚜렷한 합의도 내지 못한 채 오래되기만 한 그 질문은, 어느덧 너무 낡은 질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케케묵은 질문을 다시 꺼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떤 연예인들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며 그 대가로 협찬을 받고 광고비를 버는 동안, 어떤 연예인들은 사생활이 까발려져 난도질 당하는 일에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최근 수년간 공황장애나 양극성 정서장애 등의 정신적 고통을 공개적으로 호소하는 연예인의 수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이며, 그중 일부는 불행히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미 사생활 노출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수익모델이자 커뮤니케이션 양식으로 자리 잡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룰이 어디까지인지는 점검하고 합의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기본적인 인권과 생명의 문제이니 말이다.

 

 

연예인은 정말 사생활을 노출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연예인의 사생활 노출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연예인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 부와 명예를 쌓는 사람들이기에 어느 정도는 대중의 관심과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등가교환이라는 이야기인데, 얼핏 들으면 그럴싸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연예인이 애초에 왜 그와 같은 사랑을 받게 되었는가를 무시하는 이야기다. 연예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주목받기 위해 꾸준히 재능을 갈고 닦으며, 그렇게 갈고 닦은 재능을 선보여 대중을 즐겁게 해준 결과로 사랑을 받는다. ‘등가교환’은 이미 그 단계에서 마무리된 것이다. 설령 운이 좋아 재능에 비해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게 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나머지를 사생활 노출로 치러야 한다는 법은 없다.

 

혹자는 연예인은 수많은 팬들과 대중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이니, 그 말과 행동에 대한 세간의 비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에 공개되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언행을 비평하는 것과,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 혼자 조용히 영위하고 있는 사생활을 까발려 비평하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 ‘사생활’이 가수 승리나 정준영의 집단성폭행 및 불법촬영처럼 명백한 범죄행위이고, 그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증거가 있으며, 사회적 인식 변화를 위해 공론화가 필요하다면, 추적해서 밝히는 것도 공익에 부합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안이 아닌 이상 굳이 타인의 사생활을 추적해 알려야 할 이유는 없다. 파파라치 저널리즘으로 일가를 이룬 <디스패치>가 매년 1월 1일마다 유명인사의 열애설을 보도하는 것이, 말초적인 호기심 충족 말고 어떤 ‘공익’에 부합하는가.

 

 

상품이기도 하면서 사람이기도 한 이들의 인권

 

연예인의 사생활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논쟁적인 논의는 ‘연예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상품’이라는 주장이다. 연예인은 자신의 재능을 통해 대중을 매료시켜 스타덤에 오르지만, 일단 스타덤에 오른 이후에는 이미지 연출 등을 통해 스타의 아우라를 과시함으로써 더 이상 어떤 작품활동을 이어가지 않는다 해도 자신의 지위를 지키는 일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연예인이 판매하는 상품은 자신의 재능의 결과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미지)인 셈이 되는데, 그런 경우 사생활 또한 판매의 대상이 되는 일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관심은 연예인이 이미 판매 중인 상품(자기 자신의 이미지)이 약속한 대로인지 검증하는 일이니, 여느 물건을 구매한 뒤 불량이 없는지 살펴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스타 산업이 기본적으로 정교하게 통제된 이미지로 구축한 ‘판타지’를 판매하는 산업이라는 것을 간과한 이야기다. 스타 산업 안에서 연예인은 진짜 자기 자신을 매대에 올려놓고 파는 게 아니라, 트렌드에 맞춘 기획과 콘셉트로 구성된 판타지를 판매한다. 즉 스타 이미지가 판타지로서 제대로 기능한다면 그것으로 상품에 대한 검증은 끝난 셈이다.

 

지금이라도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 가장 기초적인 인권, 헌법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를 다 같이 곱씹어 보아야 할 때다. 우리의 헌법은 분명 ‘모든 국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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