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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1.11] [함께한 20년] 20년, 세계적인 모범을 만들어 온 발자취

글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20년, 세계적인 모범을 만들어 온 발자취

 

인권위 안팎에서 일하다 보면, 종종 이런 얘기를 듣곤 한다. “인권위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어?” 그도 그럴 것이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인권활동가나 인권연구자들의 인권위에 대한 관심은 유별나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인권위는 매우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특별함의 이유를 찾자면, 인권위가 설립된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인권 문제는 늘 있었지만 ‘인권’이 학술적으로나 운동의 관점에서 독자적인 의제로 떠오른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다.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 참가했던 인권운동가들은 인권이 한국 사회운동의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고, 국가의 인권 문제를 전담하는 독자적인 국가기구인 ‘국가인권기구’(national human rights institutions)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정치권의 화답도 있었다. 1997년 김대중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국가인권기구 설립을 약속했고, 취임 후 국정과제로 선택하면서 본격적인 국가인권기구 설립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본격적인 난관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999년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가 발족하여 국가인권기구 설립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인권기구를 법무부 법인으로 두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던 법무부와 싸워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국가인권기구 설립의 필요성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연구자들은 국가인권기구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논문들을 쏟아냈고, 수많은 토론회가 열렸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권연구자를 자처하는 집단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렇게 근거를 만들고 설득도 하고 압박도 해봤지만 새로운 국가기구를 설립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2000년 12월 인권활동가들은 명동성당 앞에서 역사적인 노숙 단식농성을 시작했고, 국회와 민주당사를 오가며 입법 투쟁을 벌였다. 그 외에도 여기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처절한 투쟁이 곳곳에서 있었다. 그 과정을 모두 거친 후에야, 2001년 4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법이 통과될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 여러 국가기구가 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설립된 국가기구가 또 있을까? 작은 부서도 아니고, 임시 기구도 아니고, 독립적인 위상을 가진 정규 국가기구가 말이다. 이렇게 인권위 설립의 역사는 특별했고, 이 국가기구의 역사에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인권위의 존재는 당연히 특별할 수밖에 없다.

 

2001년 12월 인권위 출범 이후에도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그 독립적 위상만큼은 흔들림없이 유지되었다. 그러던 중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인권위는 큰 시련을 겪게되었다. 이명박 후보는 당선되자마자 인권위를 대통령 산하의 직속기구로 두려고 했다. 청와대의 영향권 안에 두겠다는 의도가 명백했다. 인권위의 생명처럼 여겨졌던 ‘독립성’이 훼손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에 맞서 인권활동가들은 2008년 겨울 또 한 번 명동성당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직속기구화는 막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인권위 조직을 21% 축소했고 노조활동을 해오던 직원을 해고했다. 여기에 항의하여 1인 시위에 나선 직원들은 징계를 받게 되었다. 인권위 내외부에서 이에 맞서는 투쟁이 시작되었다. 인권위에 대한 상시적이고 체계적인 감시 활동의 필요성을 느낀 인권단체들이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을 설립한 것도 이 즈음이다. 어떤 국가기구의 소속 변경이나 조직 축소, 위원 임명, 직원 해고에 맞서서 시민사회가 이렇게 싸운 적은 아마 없었을 것 같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장은 말할 것도 없고,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한 명 임명할때마다 난리가 난다. 시민사회는 인권위원은 인권에 대한 감수성과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며, 그 눈높이에 맞지 않는 위원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임명을 반대했다. 특정 인물에 반대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09년에는 <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준비모임>과 <국가인권위원회 독립성 수호 교수 모임>에서 ‘국가인권위원장 자격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실질적인 성과도 있었다. 2012년에는 국가인권위원장 인사청문회가 도입되었고, 2015년에는 인권위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선출·지명의 원칙과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에게 “가이드라인을 반영한 내부 규정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2018년에는 최초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후보추천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위원장이 임명되었다.

 

20년, 세계적인 모범을 만들어 온 발자취

 

인권위 20년의 역사는 이렇게 인권위를 만들고, 인권위를 지키고, 인권위를 감시하고 비판했던 사람들과 함께 한 역사였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인권위를 어찌 다른 국가기구와 똑같이 여길 수 있겠는가. 인권위에 대한 시민사회의 유별난 관심과 애정은 바로 이러한 역사의 산물인 것이다.

 

물론, 때로는 이러한 애정과 관심이 인권위를 부담스럽게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20년을 함께 해온 인권위에 대한 기대 수준은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그 높은 잣대를 들이대고,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있다. 인권위에 대해서 그렇게 매섭게 비판하곤 하지만, 인권위가 위기에 빠지거나 고립되었을 때는 주저 없이 인권위를 지키는 투쟁에 함께 한다. 그것이 그들이 인권위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인권위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더 나아가 ‘우리가 만든 조직’, ‘나의 조직’으로 생각해왔기에 벌어진 일들이다. 20년을 지나는 동안 인권위 조직의 구성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설립 초기부터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 했던 분들도 있지만, 설립 초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인권위가 위기에 빠졌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는 지금 인권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일들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인권위도 그 많은 국가 조직 중 하나일 뿐인데, 오로지 인권위에서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무슨 배경이 있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20년 동안 인권위와 시민사회가 어떤 관계를 맺고 함께 해 왔는지 역사를 되돌아봐야만 한다.

 

그런데 인권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외부자로서는 인권위에 대한 관심이 일방적인 짝사랑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권위를 사랑하는 여러 인권활동가들이나 연구자들은 우리는 인권위를 늘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데, 인권위는 우리를 그냥 외부 관계자 정도로 대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곤 한다. 어느 부처에나 있는 외부 관계자 집단이 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공생하는 그런 외부 관계자들 말이다. 그런데 인권위 밖에서 애정을 갖고 인권위를 대하는 사람들은 그런 평범한 외부자가 아니다. 기대만큼 해주지 못할 때는 매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지만, 위기에 빠졌을 때는 자기 일인 것처럼 나서서 옹호했던 이들이다. 단순한 제3자나 관찰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인권위의 반응은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좀 더 가깝게 소통하고 싶지만, 공식적인 회의 석상에서 건조한 얘기들을 주고 받는 것 이상으로 교감을 나눌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는다. 언제든 ‘인권위의 미래’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지만, 정작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는 언제라도 시간 내서 밤새도록 함께 얘기하고 싶은데 말이다.

 

사실 인권위는 매우 독특한 위상과 기능의 국가기구다. 다른 기관들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하는데 정작 강제집행 권한은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 국제인권규범이라는 애매한 위상의 기준을 국내에 적용해야 하는 임무를 갖고 있기도 하다.

 

국가관료조직이지만 한쪽 발은 시민사회에 걸쳐 놓아야 한다는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위상을 요구받기도 하다. 적극적으로 일을 벌이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소극적으로 일해도 크게 티 나지 않는 조직이기도 하다. 이러한 애매한 위상을 악용하면 세상 편한 조직이 될 수도 있지만, 인권위 설립 취지에 걸맞은 일을 적극적으로 벌이다 보면 일의 난이도와 범위가 무한대로 늘어난다. 이 난관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시민사회와 함께, 인권위를 둘러싼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뿐이다. 오늘날 인권위가 겪고있는 문제들 중 인권위 스스로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인권위 밖에 있는 든든한 우군들과 함께한다면 얼마든지 해결해나갈 수 있는 일들이다.

 

20년, 세계적인 모범을 만들어 온 발자취

 

마지막으로, 인권위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인권위의 역사가 만들어낸 이 모든 상황을 적극적으로 즐겼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외부의 관심과 애정에 부담을 느낄 것이 아니라, 이렇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과 애정을 받는 국가기구가 있을까?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위상, 권한, 조직 규모, 그리고 위원 인선 절차 등에 있어서 이미 세계적인 모범이다. 초기에는 해외 국가인권기구의 사례들이 모범이 될 수 있었지만, 한국의 인권위에게는 참조할만한 해외 사례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한국 인권위가 가는 길이 곧 세계적인 모범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인권위 내부의 역량과 인권위 밖에서 인권위를 지켜온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이 어우러져 일궈낸 성과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우리는 이렇게 인권위 20년을 함께 일구어 왔다. 인권위를 만들고 지키고 발전시켜온 역사에 자부심을 느낀다. 인권위 안팎에서 함께 했던 모든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또 다른 20년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보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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