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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2021.11] 그때 그 시절, 언론 속 인권위

국민의 관심 속에서 인권위가 출범을 하고, 국민과 대면하여 진정접수를 받던 순간. 지금은 역사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희망찬 미래의 순간이었다. ‘모두를 향한’ 인권위의 그 발걸음을 조명한 신문기사 내용을 공유한다.

 

그때 그 시절, 언론 속 인권위

 

 

[국가인권委 출범― 의미·과제]
사람 답게 사는 세상 만든다
국민일보, 2001.11.26.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또는 구금·보호시설의 업무수행과 관련해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대우를 받은 사람은 26일부터 서울 수송동 이마빌딩 501호에 자리잡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으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

 

인권침해나 차별대우를 받은 모든 사람은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낼 수 있으나 원칙적으로는 진정하는 날부터 1년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어야 한다. 그러나 사건 발생 후 1년 이상 지났더라도 공소시효나 소멸시효가 남아있는 경우에는 진정할 수 있어 사실상 제한없이 진정할 수 있는 셈이지만 피해자가 명확해야 한다. 물론 인권침해나 차별행위를 당한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이 같은 행위를 목격한 제3자도 진정할 수 있다.

 

인권위원회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인권의 사각지대였던 교도소 등 구금시설에서의 부당행위와 성차별을 포함한 각종 차별행위를 근절시켜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인권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인권위원회가 존재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의 경우 인권침해 행위는 물론 차별행위까지도 구제가 가능해 운영여하에 따라서는 인권보호에 관한 한 그 어느 나라보다 완벽한 제도를 구비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약자 및 소수보호=인권위의 출범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사회적 차별을 숙명처럼 받아들인 장애인,성적소수자, 아동, 노약자 등에게 의지할 곳이 생겼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법의 사각지대에서 국가나 국민들로부터 정당하게 대우를 받지 못하고 헌법에 보장된 인간으로서의 기본권마저 유린당한 채 살아온 이들에게 쉼터가 생겼다는 것이다. 권리회복 구제절차가 복잡하고 돈이 많이 드는 법정투쟁 대신 앞으로는 인권위를 찾아가거나 전화 등을 통해 억울한 사정을 진정하면 의외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국가공권력 견제 및 감시=인권위는 국회의 입법 및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재판을 제외한 국가기관과 지자체 또는 구금·보호시설의 인권침해 행위를 시정하기 위해 해당기관에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출석을 요구해 진술을 들을 수 있어 자연스럽게 부당한 공권을 견제하는 기능을 갖게 한다. 이 같은 기능은 인권침해의 사전적 예방기능으로 볼 수 있으며 운영여하에 따라서는 인권위가 헌법재판소 못 지 않은 위상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금시설을 갖고 있는 법무부와 국방부 및 890여 곳에 이르는 어린이, 장애인, 노인복지 및 외국인 보호시설을 관리하는 복지부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인권위가 방문조사권을 발동, 성역에 가까웠던 군 구금시설을 찾을 경우 획기적인 인권상황의 변화가 예상된다.

 

◇인권위 과제=가장 큰 문제는 법무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여성부, 복지부, 국방부 등의 업무와 중복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칫 운영과정에서 이들 기관과 기관간 충돌이 발생할 소지가 없지 않다. 인권위가 출범하면서도 완벽한 기구를 갖추지 못한 것은 사실 행정부에서 협조하지 않는 측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기관끼리 업무를 합리적으로 분담해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인권위 설치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온 법무부가 인권위는 보충적 제도일 뿐 기존 국가기관을 대체하거나 경합하는 기구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 일부 인권단체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수사중이거나 종결된 사건에 대한 인권위의 조사권을 배제한 것은 이 단체의 실질적인 힘을 뺀 것이라는 주장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인권위의 출범은 이유 없이 차별 받고 고통받는 우리 사회의 소수를 위한 기구가 탄생했다는 자체 만으로도 의의가 적지 않다. 비록 완벽한 기구는 갖추지 못했지만 인권국가로 향하는 작은 발걸음을 뗐다는 데서 존재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인권관계자들은 지난 4월 30일 인권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까지 3년에 걸친 인권단체의 노력의 결실인 이 기구의 출범을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 그 시절, 언론 속 인권위

 

[국가인권위 진정접수 첫날]
연합뉴스, 2001.11.26.

 

진정접수 첫날인 26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5층에 위치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접수처에는 자신들의 인권침해 및 차별사연을 조사해 달라는 진정인들의 애타는 마음이 배어 나왔다. 일부 진정인들은 공식 접수개시 시각인 오전 9시가 되기도 훨씬 전부터 접수처 앞에서 기다리며 자신과 가족들의 억울함을 맨 먼저 접수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으며 어떤 진정인은 ‘2번’이 적힌 대기표를 받고는 실망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 차별당하는 제자의 아픔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만은 없었습니다”진정접수를 위해 이날 오전 6시 30분께 국가인권위에 도착한 김용익(49) 서울의대 교수는 진정서를 맨 먼저 접수한 뒤 김창국 인권위원장에게 상담을 받으며 감회 어린 표정이었다. 김 교수는 이날 자신의 대학 제자인 이희원(39) 씨를 대신해 진정서를 접수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91년부터 충북 제천의 보건소에서 근무해 오다가 지난 7월 공석이 된 소장직에 지망했으나 제천시 측이 ‘장애인은 보건소장으로 곤란하다’며 이 씨를 배제하고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혔다. 98년과 99년에 각각 제천시장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표창을 받은 이 씨로서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제천시 측의 부당함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지난달 사표를 제출해 현재는 춘천 소년원의 원무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 제자를 대신해 이날 진정서를 접수한 김 교수는 자신도 한쪽 다리를 저는 소아마비 장애인으로서 “능력이 있는데도 장애인이라고 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 유명한 성우인 양지운(53) 씨도 이날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 현재 구속 수감돼 있는 아들을 대신해 이날 국가인권위를 찾아 진정서를 냈다. 여호와의 증인 양심적병역거부자 수형자 가족일동을 대표해 진정접수에 나선 양 씨는 “집총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자의 경우, 초·재범 및 기타 타범죄의 유형별세분사항에 관계없이 무조건 27개월 이상을 복역해야 석방된다는 법무부의 가석방기준은 심각한 인권유린”이라고 주장했다. 양 씨는 또 “27개월이라는 가석방 기준은 현행 복무기간 26개월보다 1개월이나 많은 것으로 교도소 생활을 군복무 기간보다 먼저 출소하는 일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며 교도소 생활을 군복무와 동일시하는 불합리한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접수처에는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는데 이들은 성남 외국인노동자, 중국동포의 집에서 온 외국인, 중국동포 노동자들과 목사들. 이들을 대신해 진정서를 접수한 김해성 목사는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임금 및 퇴직금도 못 받고 무19차별 구타를 당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분노를 전달하기 위해 진정서를 접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크레파스나 물감회사가 상품에 ‘살색’이라는 표시를 함으로써 한국인들에게 어릴 때부터 한국인의 피부색만이 살색이고 다른 피부색은 살색이 아니라는 차별의식과 선입견을 심어주고 있다”며 “크레파스 제조업체 사장을 상대로 차별 여부에 대해 조사해 주길 바란다”며 진정서를 접수했다.

 

중국동포들은 중국동포 220만 명, 구 소련지역 50만 명, 그리고 무국적 재일동포 15만 명 등 300여 만 명에 달하는 동포를 재외동포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는 현행 재외동포법이 인권을 침해하며 차별을 전제로 하고 있는 법률이라며 인권위에 조사를 요청했다.

 

- 지난 74년 4월 박정희 정권에 맞서 싸웠던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자로 지목돼 다수가 사형당한 소위 ‘인혁당 사건’ 진상규명대책위 소속 가족들도 인권위를 방문했다. 이들은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8명의 젊은이가 진실조차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며 20년이 넘도록 밝혀지지 않는 인권침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진정서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 민주노총도 지난 9월말 구속된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현 정권하에서 구속된 노동자들과 관련, 국가기관의 신체자유·집회자유·평등권 침해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기 위해 진정서를 접수했다. 민주노총은 세계 60개국 노동단체, NGO 지도자 725명을 비롯, 각계각층 대표 338명과 시민 7만 7천 여명의 서명을 담은 서명용지를 인권위원회에 전달했다.

 

그때 그 시절, 언론 속 인권위

 

[인권위 청송감호소서 첫 현장조사 실시]
동아일보, 2001.12.03.

 

국가인권위원회 유현(兪炫) 운영위원과 유재명(劉載命) 조사관 등 2명이 3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 청송 제1보호감호소를 방문해 출범 이후 첫 현장조사를 벌였다.

 

이날 오후 3시 20분경 보호감호소에 도착한 유 조사관 등은 김영용(金泳龍) 소장으로부터 10분간 시설 현황을 설명들은 뒤 오후 6시까지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감호소측은 공정한 조사를 위해 직원을 배석시키지 않았다. 진정인은 현재 이 감호소에 수감중인 류모 씨(49). 그는 1998년 5월 함께 수감된 재소자들로부터 구타를 당해 갈비뼈가 부러지고 신경이 손상되는 부상을 입었는 데도 교도소 측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 조사관 등은 감호소 안에 별도로 마련된 방에서 진정인 류씨와 류씨가 신청한 증인 2명, 공중보건의 등과 개별면담을 가졌다. 감호소 측은 “재소자들이 다쳤을 때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는 없다”며 “류 씨도 당시 안동시내 병원에서 세 차례 통원치료와 10여 차례 X선 검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조사관들은 감호소 측에 류씨의 진료기록부와 행동기록부 등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현장조사를 마친 유 위원은 “류 씨의 진정내용은 자료를 정밀 검토해봐야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몇 시간 동안의 조사로 진상을 완전히 밝히기는 어렵지만 현장조사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본다” 고발했다.

 

인권위 조사관들은 4일 대구교도소를 방문해 안모 씨의 진정사건을 현장조사하고 5일엔 울산구치소를 찾아 지난달 16일 음주운전에 따른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장 유치 처분을 받고 수감됐다가 이틀 만에 숨진 구모 씨(41) 사망사건에 대해 조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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