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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장 인권위’

인터뷰-동행 [2021.11] [20주년 특집 대담] 새 역사를 만들어갈 우리들의 이야기
‘내 직장 인권위’

 

인권위 20주년을 맞아 조사관 선·후배가 더 높은 비상을 위해 마주앉았다. 오직 인권위이기에 가능한 의미 있는 하루하루를 되돌아본 두 사람은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체성 자문이야말로 조사관의 성장비결”이라고 말했다. 멈추지 않고 ‘더 바른’ 길을 찾아나서는 조사관들 덕분에 인권위의 성장판이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 조사관 최은숙, 군인권조사과조사관 유소연

 

조사관 되길 참 잘했다!

 

최은숙 20주년이라니, 세월이 흐른 만큼 인권위가 일하는 방식도 늙어간다는 걱정이 들 때가 있어요. 나 또한 한몫한 사람이 아닐까 서늘해지기도 하고요. 후배님도 인권위의 노화가 느껴진 적이 있나요?

 

유소연 아주 소소한 에피소드가 떠오르는데요. 조사하면서 아이패드를 사용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선배님들로부터 ‘90년대생은 다르네!’라는 말을 듣곤 해요. 사실 종이로 된 사건 철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태블릿PC가 훨씬 간편하고 종이 낭비도 없거든요. 전원위나 상임위 때도 위원님들이 제본 보고서 대신 전자문서화한 보고서를 보신다면 더 효율적일 것 같아요. ‘초창기 위원회 분위기와 지금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는데요. 선배님은 어떤 점에서 그런 변화를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최은숙 초창기엔 구성원들이 다양한 만큼 혼란도 많았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인권위 조직이 너무 자유롭고 위계가 없다며 ‘이게 시민단체지, 공무원 조직이냐?’라는 불만을 가졌던 반면, 어떤 사람은 ‘너무 공무원답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죠. 문제의식이 다양한 만큼 활발한 토론이 가능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 생각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구나!’라는 자각도 생겼죠. 20년이 지나면서 혼란과 갈등은 줄었지만, 갈수록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 없이 하는 업무가 늘어간다는 느낌도 들어요. 20주년을 계기로 다들 인권위 조직문화를 새로운 눈으로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유소연 ‘조사관이 되길 잘했다’, ‘내 일터가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게 했던 인권위 결정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최은숙 노무현 정부 시절 이라크 파병이 결정됐을 때, 인권위가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의견 표명을 했어요. 여론은 좋지 않았죠. 대통령과 국회의 고도의 정치적 결정에 대해 국가기관인 인권위가 어떻게 반대하냐는 논리였어요. 하지만 인권위가 권력기관의 눈치를 살피고 정치적 고려를 한다면 말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인권은 정치적 고려의 뒷순위로 밀려날 게 뻔하니까요. 결과적으로 파병 결정이 철회되진 못했지만, 인권기구의 독립성을 잘 드러낸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후배님에게는 어떤 결정이 자부심을 안겨줬나요?

 

유소연 정말 오래전 결정례인데, 살색 크레파스에 관련된 진정이었어요. 뉴스에서 살색이라는 단어가 인종차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인권’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제겐 굉장한 문화충격이었는데, 훗날 그게 인권위에서 낸 결정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자부심을 느꼈어요.

 

 

군인권조사과조사관 유소연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조사하되,
일단 캐비닛에 사건 철을 집어넣었으면
사건을 잊는 훈련이 필요해요. 그래야 다음날 또
힘내서 사건 철을 꺼내 들 수 있으니까요.

 

조사관의 ‘워라밸’

 

유소연 지금은 베테랑 조사관이신 선배님에게도 신규조사관 시절이 있었겠죠?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이 순간을 죽을 때까지 기억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는지 궁금해요.

 

최은숙 2002년에 서울지검에서 불법체포된 피의자가 고문 끝에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어요. 세상을 떠들썩하게했던 그 사건을 조사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서울지검 특별조사실에서, 검찰청에서도 찾지 못했던 방망이를 침대 밑에서 찾아내기도 했었죠.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인권침해 피해자 가족을 면담하기 위해 파주에 갔던 날이에요. 피해자의 노모와 어린아이가 살던 집이었는데, 방이 너무 어둡고 낡은 물건들로 가득했어요.

 

여섯 살이나 됐을까 싶은 아이가 방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 천진한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그 아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끔씩 궁금했어요. 인권위가 조사를 통해 고문 사실을 밝혀내긴 했지만, 죽음에 이른 피해자와 가족의 삶은 돌이킬 수 없잖아요. 조사관 업무의 한계랄까, 쓸쓸함이랄까, 많은 생각이 들었고,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순간으로 남았어요. 인권위 20주년이 된 올해, 그 아이도 이십 대 청년이 되었겠네요.

 

유소연 조사 업무를 하다 보면 퇴근 후에도 사건에 대한 고민이 이어져, 일과 생활이 완전히 분리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배님만의 ‘워라밸’ 비법은 무엇인가요?

 

최은숙 분명 캐비닛에 사건 철을 넣고 퇴근했는데, 사건이 계속 딱 붙어 따라다니죠. 밥 먹다가도, 샤워할 때도, TV 보다가도 문득 생각나고, 심지어 꿈을 꾸기도 하고요. 조사관들은 무슨 말인지 다 알 텐데요.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조사하되, 일단 캐비닛에 사건 철을 집어넣었으면 사건을 잊는 훈련이 필요해요. 그래야 다음날 또 힘내서 사건 철을 꺼내 들 수 있으니까요. 20년째 일해온 저도 잘 안 되는 미션인 만큼, 지속적인 자각과 노력이 필요하답니다. 또,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동료 조사관들과 쟁점을 토론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상의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해법이 도출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말하고 보니 왠지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노동자의 워라밸, 이거 정말 가능한 걸까요?(웃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 조사관 최은숙, 군인권조사과조사관 유소연

 

인권위 조사관은 ○○하는 사람이다

 

유소연 ‘생각하는’ 사람! 가치 판단을 하는 일이다 보니, 계속해서 자문하고 되짚어보게 되더라고요. 끝없이 고민하는 과정이 바로 조사라고 생각해요.

 

최은숙 ‘듣는’ 사람. 조사하려면 상대방에게 계속 물어야 하잖아요.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그랬냐는 질문을 계속해야 하죠. 그런데 대부분의 진정인들은 대답을 잘 못 해요. 두서없고, 때로는 횡설수설하며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하지만, 그 속에 진짜 하고 싶은 말이 꼭 있으니 조사관은 잘 들어야 합니다. 저는 ‘인권’을 업무로 한다는 것 자체가 공무원으로서 엄청난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인권 업무를 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요.

 

유소연 경력도 적은 제가 대담에 참여한다는 게 적잖이 부담스러웠는데,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행착오도 많겠지만, 앞으로 더욱 잘 듣고 많이 고민하며 옳은 결정을 끌어내는 조사관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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