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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가 말한다 [2021.12] ⑤ 인종차별,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글 문은현(국가인권위원회 국제인권과장)

 

시대에 큰 획을 긋겠다며 출발했을 텐데 글쎄… 스무 살쯤 되어 생각하니 모든 게 모호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도 몇몇 의제에 있어서는 우리 사회에 굵직굵직한 질문을 던졌고 어떤 사안에 있어서 작은 변화나마 도모하지 않았나 하는 평가가 과도한 자기도취는 아닐 듯합니다. 딱 그런 기준에 따라 5개의 결정을 꼽아 격월간지에 곱씹는 지면을 마련해보았습니다. 20년, 9000여 결정 중 다섯 꼭지라니. 타이밍, 분야의 안배, 무엇보다 청탁의 용이성으로 선정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새로이 발생하여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고, 이로 인해 세계는 다시 대유행의 공포와 긴장 속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는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고, 중국 및 아시아계 사람들에 대한 혐오는 서구 사회에서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

 

이러한 인종 혐오의 현상들이 발생하는 것은 감염병 위기가 닥칠 경우 대다수 군중들은 희생양을 찾게 되고, 정형화를 거쳐 형성된 고정관념은 쉽게 타인에 대한 혐오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20년 2월 28일 UN 인권 최고대표 미첼 바첼레트는 ‘코로나 확산사태로 인해 인종차별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유엔 제네바사무소에서 열린 인권이사회에서 ‘코로나 19로 인해 중국인을 비롯해 동아시아인들에 대한 충격적인 편견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코로나19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만 강제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하는 지방자치단체들도 있었고, 지난 9월에는 외국인보호소에서 난민신청 중인 모로코 국적의 한 남성이 불법적으로 독방에 구금된 채 일명 ‘새우 꺾기’고문을 당하였다. 수갑을 사용해 등 뒤로 손목을 포박한 다음, 배를 바닥에 댄 채로 등 뒤로 손목 포박과 발목 포박을 연결해 사지를 새우등처럼 굽혀놓은 채 홀로 누워 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외국인보호소는 조사과정에서 피해 외국인에 대한 보호 장비 사용은 문제행동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불가피한 점 등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인권위와 법무부가 인권침해 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주문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3월에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 등’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주민 10명 중 7명이 한국 사회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68.4%가 한국사회에 인종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했고, 인종, 민족, 피부색, 출신국가, 언어 등 차별 사유별로 차별 경험 정도를 물었을 때 ‘한국어 능력’(62.3%), ‘한국인이 아니어서’(59.7%), ‘출신국가’(56.8%)가 주된 차별 사유(중복응답가능)였다. 이주민들이 겪은 차별 경험은 다양했다. ‘언어적 비하’(56.1%), ‘사생활을 지나치게 물어 본다’(46.9%), ‘다른 사람이 기분 나쁜 시선으로 쳐다본다’(43.1%) 순으로 차별 경험을 답했다. ‘채용 거부’(28.9%)와 ‘일터에서의 불이익’(37.4%)을 답한 이들도 있었다. 이러한 인종차별적 행태들에 대해 과연 법적으로는 제한하기 어려운 것인가?

 

국내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형사 처벌한 사례는 지난 2009년 9월에 처음 등장한다. 서울의 S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던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 교수는 2007년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S대학 아시아비정부기구(NGO)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대학 민주주의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근무했었다.

 

2009년 7월 10일 서울에서 한국인 여성 동료 한모 씨와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버스 뒤편에 앉아 있던 양복 차림의 박모 씨가 후세인 교수를 향해 “더러운놈... 냄새가 난다”며 소리쳤다. “너 어디서 왔느냐, 아랍놈이냐”면서 영어 욕설을 섞어가며 계속 시비를 걸었다. 이를 듣던 동료 한 씨가 항의하자 이번에는 욕설이 한 씨를 향했다. “새까만 자식이랑 사귀니 기분 좋으냐”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한 씨와 후세인 교수는 버스 기사에게 도움을 청했고 운전기사는 관할경찰서 앞에 이들을 내려놓았다. 경찰서에서 후세인 교수는 박씨가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며 정식 고소를 했고,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였고, 검찰은 박 씨를 형법상 모욕 혐의로 약식 기소하였다. 일부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행위를 규제하는 법규가 따로 없어 박 씨에게는 일반 형법인 모욕죄가 적용되었다. 결국 외국인이 수치심을 느낄만한 인종차별적 발언도 형사 처벌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건이 되었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종차별적 발언을 규제하여야 하고, 이에 따른 인종차별금지법도 만들어야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결국 국회의원 발의로 인종차별금지법이 추진되었지만 반대에 밀려 지금까지도 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인종차별적 발언이 단순히 개인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인종 범죄 수준에서 접근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인종차별과 관련한 법제화를 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S대학 연구교수였던 ‘보노짓 후세인’씨는 그가 가진 체류신분상으로 보면 당연히 한국사회의 인종차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신분인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볼 때 그는 체류신분이 합법적이어도 한국인들의 인식 속에는 늘 이주노동자와 관련해서 미등록체류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이미 내재화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중교통 시설인 버스 안에서 그는 인도인으로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노동자와 외모 상으로 비슷하였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버스 안에서 다짜고짜 폭언을 한 한국인 박 씨는 그가 이주노동자로 보인다는 이유로 폭언을 서슴없이 하였다는 것이 문제이다. 더불어 국가인권위원회에 위 사건과 관련하여 진정 접수된 내용을 보면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은 피해여성에게 “웬만하면 합의하라”고 권유하는가 하면 ‘보노짓 후세인’씨에게는 “어떻게 1982년생이 연구교수가 됐느냐. 정확히 뭘 하는 사람이냐”라며 반말로 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인권위는 해당 경찰서에 담당 경찰관에게 인종차별적 인식을 개선하도록 인권교육을 실시하라는 권고를 하였다. 인권위는 박 씨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까지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각인되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1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답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는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19를 거대한 재앙으로 보지만, 이러한 재앙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인종주의에 대해 성찰의 계기를 삼아야한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사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이웃처럼 즐겁게 사는데 있어 아무 문제가 없는 사회이다. 코로나19를 통하여 국제사회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전염병에 대한 방역 수준이 세계 최고 선진국에 해당한다고 하며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우리 사회는 통제 불능의 혐오주의와 갈등이 만연한 사회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상호 이해와 배려가 늘어나고 갈등이 최소화되는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도 우리는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나은 관계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코로나19가 지나간 후에도 다문화사회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갈등을 서로가 인식하며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갈등을 최소화하려고 우리 모두가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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