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 > 인터뷰-동행 > [유해정이 만난 사람들] “산업재해의 실상을 제대로 알게 해주는
것도 우리의 몫이죠. 결국,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있어야만
나라가 바뀌는 거잖아요.”

인터뷰-동행 [2022.01] [유해정이 만난 사람들] “산업재해의 실상을 제대로 알게 해주는
것도 우리의 몫이죠. 결국,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있어야만
나라가 바뀌는 거잖아요.”

 

‘유해정이 만난 사람들’은 유해정 활동가가 평등하고 존엄한 세상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만나 우리 시대 인권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연재 코너다. [편집자 주]

 

김용균재단 이사장 김미숙

 

노동자들과 산업재해 피해자 유족과 연대하고 협력해, 산업현장 안전규제를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시행(2020. 1. 16.)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2022. 1. 27.)을 끌어내는 데 힘을 보탠 故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유해정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언론 인터뷰에 대한 답변을 직접 적으셨던 이사장님의 모습이 기억에 여전히 선명합니다. 사고가 직후라 경황이 없으셨을 텐데요.

 

김미숙 자식을 잃으면서 이 사회에 몰랐던 면을 확 받아들이게 된거잖아요? 충격이 엄청나게 컸어요. 충격은 분노가 되었고, 그 분노가 모두 제 의지대로 하게 만들었죠. 아들이 험악한 일을 공기업에서 하고 있을 거라고 상상했겠어요? 기계 점거 때, 당연히 기계를 멈추고 할 거라 생각했어요.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대학교 이후부터는 스스로 일하면서 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무책임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 돌아가는 것을 보면요.

 

 

유해정 김용균님 사고 이후 산업재해 피해자들이 이름을 드러내고 싸우게 되었어요. 이사장님은 어떻게 자식의 이름을 드러낼 생각을 하셨나요?

 

김미숙 TV를 보았는데, 아들의 이름과 제 모습이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더라고요. ‘범죄자도 아닌 우리가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나?’ 생각에 ‘당당하게 나서야 하겠다’ 결심이 섰어요. 용균이와 제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나라가 부끄러워할 일이죠. 공기업이 이 모양인데, 사기업들은 얼마나 열악하게 많이 죽겠어요? 나라 자체가 엉망이라는 생각이 컸고, 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가 살고 싶지 않았어요. 뻔히 보이는 부당한 현실을 놔두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가면 세상은 또 전처럼 돌아가겠죠. 부당하게 죽고있는 노동자들,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나라에 외치고 싶었어요. 국민 모두의 권익을 위해서죠. 자식 잃은 제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너무 나라가 부당하게 가니까 이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거죠.

 

 

유해정이 만난 사람들

 

유해정 장례를 치르시고 쉬실 만도 하셨을 텐데, 바로 김용균재단을 만드셨어요. 만드셨을 때 바람이 좀 있으셨을 것 같아요.

 

김미숙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 마지막 회의 때, 제가 김용균재단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을 했어요. 나는 평범한 아줌마고 아무것도 없지만, 대책위가 도와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어요. 만장일치로 동의하셨고, 저를 대표로 추대하셨어요. 진상규명을 위한 고소와 고발을 하면서 재판이 계속 있는데, 힘을 받으려면 제가 현장을 지켜보고 관여해야 할 것 같았어요.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면서 대한민국 산업재해 현장을 두 달 동안 지켜봤잖아요? 너무 뻔하게 보이는 이 부당한 현실을 보고서도 전처럼 회사 일에 전념하면서 살고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전과 같이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용균이는 비정규직으로 아주 열악한 곳에 들어갔어요. 그곳에서 위험한 부분에 대해 28번의 시정 요구를 했지만 원천은 한 가지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이 상황이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요. 김용균재단을 통해 이 나라에서 부당하게 죽고, 삶이 피폐해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뭔가라도 해봐야겠다 싶은 절실한 마음에 재단을 설립했어요.

 

 

유해정 2월 10일에 아드님 산업재해사고 1심 선고공판이 나죠? 사측에서는 자신들의 책임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김미숙 검사가 재판 때 항상 피의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물어요. ‘컨베이어벨트 사고가 나면 어떻게 구할 수 있냐?’ 그러면 피의자들은 말해요. 컨베이어벨트 협착사고가 나면, 컨베이어벨트를 멈추게 하는 안전줄(비상정지 장치)을 당겨야 하는데, 당겨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살릴 수 없다고 답해요. 어이가 없는 것이 그래도 혼자 일하는 것이 맞다는 거예요. 여기는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가 철제 안에 있어요. 그 안에서 점검작업을 하는데 사고가 나면 밖에서 줄을 당겨 기계를 멈추게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인력을 투입해 2인 1조로 일해야 하는데, 인력을 투입하면 돈이 드니까 줄을 당겨줄 사람을 쓸 수 없다는 거죠. 만약 피의자가 유리한 쪽으로 판결이 난다면 우리나라 재판은 상식 이하라고 생각해요. 잘 되면 좋겠지만 잘 되지 않으면, 그래도 반론을 제기할 거예요. 나라가 엉망으로 가고 있으니 잘못된 판결도 계속 싸울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해요.

 

 

유해정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2021년 1월 8일 만들어졌고,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1월 27일 시행이 됩니다.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김미숙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 「중대재해처벌법」 3년 유예하는 것도 너무 끔찍한데, 5인 미만 사업장이 빠져버린 법이죠. 어떻게 사람이 죽는데 빼버릴 수가 있나? 이렇게라도 통과시키는 게 맞나 하는 고민이 컸죠. 그런데 이번에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그다음은 너무 힘들 것 같았어요. 기회가 주어질 때, 그때를 잘 잡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일단 통과시켜보자 했죠.

 

 

유해정 「중대재해처벌법」의 또 다른 아쉬운 부분 중 하나가 인과관계 추정 조항[1]이 빠진 부분이잖아요?

 

김미숙 용균이 사고 이전의 사고사례를 보니, 개인 실수 또는 말단 관리자 책임 전가였어요. 원청 하청으로 되어 있다보니 원청은 하청에 책임을 넘기고요. 그러면 하청은 기계가 원청의 것이라 마음대로 건드릴 수 없다고 말하고요. 사건을 저희가 조사해서 하는데, 유족들이 다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 큰 트라우마잖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진실을 파헤쳐 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큰 고난의 길이죠. 회사가 모든 증거를 갖고 있잖아요? 증거를 요구해도 주지도 않고요. 사고 현장을 갔는데 물청소가 되어 있더라고요. 보통은 사고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을 거로 생각하죠. 그런데 자기들 마음대로 다 훼손하잖아요. 이 문제성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요. 검찰, 경찰, 고용노동부가 알아서 진상조사를 위해 이런 점들을 사전에 막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 있어야 유족이 아니더라도 나라에서 산업재해를 제대로 조사하고 방지할 수 있는 거죠.

 

유해정 1월 11일,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사고로 6명의 노동자의 삶이 무너졌습니다. 산업재해 사건을 바라보는 마음이 남다르실 듯 합니다.

 

김미숙 건설업에서의 사고를 보면 항상 공사 기간을 단축해 건물을 지으려다 보니 엉망이 돼서 사고가 나는 거예요. 안전 강화를 못하는 것도 자신들이 원하는 시간에 공사를 못 맞추게 되니까, 공사 기간이 늘어나면 돈이 더 드니까 그런 거죠. 법으로 공사 기간을 단축하지 못하게 한다면, 안전강화 문제도 해결할 것 같아요. 돈은 조금 덜 벌면 되지 않나요?

 

 

유해정이 만난 사람들

 

유해정 가족의 슬픔을 애도하기에도 벅찬 산재 피해자들이 싸워야만 조금씩 바뀌는 세상인데요, 사실 가족이 싸운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김미숙 아직도 슬퍼하냐고, 생활을 다시 찾아라 말을 들으면, 제가 되물어요. 당신 같으면 자식을 잊을 수 있냐 그런 아픔을 잊을 수 있냐 당신이 겪으면 그랬더니 절대 못 잊는다고요. 사람들은 자기도 이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 못해요. 사실 생각조차도 무서운 일이잖아요. 저들에게 산업재해의 실상을 제대로 알게 해주는 것도 우리의 몫이죠. 결국,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있어야만 나라가 바뀌는 거잖아요.

 

 

유해정 노동문제와 관련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김미숙 입시교육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고 봐요. 그냥 잘 풀고, 잘 외우는 교육. 학교에서 우리 인권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고요. 다들 삶보다는 돈을 요구하고 쫓아가고 있잖아요? 사회가 발전하면 못사는 사람들도 그만큼 혜택을 볼 것으로 생각했지만, 자본주의가 그런 게 아니잖아요? 많은 것을 생산하고 이익을 받지만, 상위 1%만 가져가는 구조죠. 비정규직으로 인해서 빈부 격차는 더 심화하고요. 그런 부분에서 교육이 경쟁 중심에서 인권, 권리, 자아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게 소중한 생명이고 절대로 자기 자신을 정말 가치가 크다고 생각하고 되게 높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약자의 자아를 너무 낮추고 있어요. 저도 비정규직 생활을 했고 살림도 넉넉하지 않았고, 배움도 짧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나는 엄청 소중한 존재입니다. 자기 자신을 많이 존중해주고 높였으면 좋겠어요.

 

[1]인과관계 추정 조항
사고 이전 5년간 안전조치의무 관련 법을 위반한 사실이 3회 이상 확인이 되거나, 증거를 인멸하거나 현장을 훼손하는 등 진상조사나 수사를 방해한 사실이 확인된 경우에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책임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조항

故 김용균씨는 비정규직 노동자 인권개선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피케팅에 참여한 건강한 목소리를 내줄 아는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1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작업하다 컨베이어벨트 협착사고로 스물넷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김용균재단은 故 김용균씨의 사고 진실규명과 비정규직 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유해정 활동가

유해정 활동가는 인권기록센터 ‘사이’ 활동가이자, 경상국립대 학술연구교수로 재직중입니다. 기록과 연구 모두 인권활동의 일환이라는 생각으로, 동그랗게 모여 앉는 세상을 위해 고통과 희망의 뿌리를 삶의 언어로 기록하고 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 《나는 숨지 않는다》 등을 함께 기획하고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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