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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22.02] 그래도 사람을 일터에 강제로 묶어둘 수는 없습니다

글 조영관(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고용허가제 합헌 결정(헌법재판소 2021. 12. 23. 2020헌마395)에 대한 소고(小考)

 

조영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법률·인권 문제를 지원하는 비영리법인 <이주민센터 친구>의 설립에 참여했고 2021년부터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차이와 다름이 존중받고, 차별과 혐오를 부끄러워 하는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주민 인권백서》(공저),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공저)을 썼습니다.

 

그래도 사람을 일터에 강제로 묶어둘 수는 없습니다

 

사업장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

 

헌법재판소가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외국인고용법’) 제25조 제1항이 외국인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아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2021. 12. 23.) 10년 전 있었던 헌법소원(헌법재판소 2011. 9. 29. 2007헌마1083 결정 등)의 결론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다수의견인 7명의 재판관(유남석, 이선애,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문형배, 이미선)은 “만약 외국인근로자가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면, 사용자로서는 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원활한 사업장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라고 하면서 “최근 불법체류자1)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외국인근로자의 효율적인 관리 차원에서 사업장의 잦은 변경을 억제할 필요”가 있으므로 “외국인근로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을 거절할 때 자유로운 사업장 변경 신청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수의견에 반대하여 소수의견을 밝힌 2명의 재판관(이석태, 김기영)은 “외국인근로자는 내국인근로자와 경쟁 관계라기보다는 내국인근로자를 대체하거나 보완하고 있는 관계이므로, 외국인근로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함으로써 내국인의 고용을 보호한다는 것은 합리성이 없다”면서, “내국인근로자가 스스로의 안전과 건강 등을 지키기 위해 직장을 이탈할 수 있는 것처럼 외국인 근로자도 열악한 환경의 사업장에서 이탈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 법규정은 외국인 노동자가 위험한 작업환경이나, 사용자의 부당한 업무지시 등을 이유로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는 등 외국인 노동자의 직장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기에는 현저히 부족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은 사업주에게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는 현행 「외국인고용법」의 입법 취지에 충실하여 사업주의 원활한 인력수급과 ‘외국인근로자의 효율적인 체류관리’가 중요하다고 보았다면, 소수의견은 인종과 국적을 떠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 노동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구체적인 노동 현실과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의 규범적 해석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양쪽 모두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를 고민하고 있으며, 어느 하나 소홀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이번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은 여러 측면에서 아쉽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래도 사람을 일터에 강제로 묶어둘 수는 없습니다

 

외국인력과 고용허가제

 

먼저 우리나라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현황을 간단히 살펴보자.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국내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의 숫자는 대략 200만 명이다(1,956,781명). 이 중 관광이나 일시 방문 등 3개월 미만 단기체류자의 숫자가 약 38만 명이므로, 결국 160만여 명의 외국인이 자국에서 국내로 생활기반을 옮겨와 다양한 체류자격으로 장기간 머물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단기체류자의 숫자는 급감하였지만, 장기체류 외국인의 숫자는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큰 변화가 없었다. 이는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이주하려는 장기체류 외국인의 수요가 꾸준하고,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생활 관계도 본국보다 국내에 더 밀접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1년 12월 기준 법무부가 추산하는 미등록체류자 숫자가 38만 명 정도이므로 전체적으로 약 200만 외국인이 국내에서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이 중 미성년자이거나, 취업활동을 하지 않은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취업활동을 포함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영어교사로, 누군가는 대학교수로, 누군가는 요리사로, 누군가는 식당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다양한 분야와 영역에서 노동하며 살아간다. 이중 약 16만 명 정도의 외국인이 「외국인고용법」에 따른 고용허가제(E-9, 비전문취업)로 체류하고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외국인 인구의 약 8% 수준이다. 처음 고용허가제가 도입되었을 때에는 전체 경제활동 외국인력에서 고용허가제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이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국내에 다양한 외국인력들이 폭넓게 유입되면서 지금은 그 비율이 낮아졌다. 고용허가제가 전형적인 외국인력 정책의 규범이라고 볼 수 없다.

 

이들은 대부분 영세한 제조업 공장에서 일한다. 누구나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상 업종과 규모, 내국인 노동자와의 비율, 국가별 도입인력의 규모 등을 정부에서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국인 노동자를 구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구하지 못한 사업장, 즉 한국 사람은 아무도 일하고 싶지 않은 열악한 사업장에서만 일할 수 있다.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일을 묵묵히 하고 있지만, 가장 많은 규제로 묶여 있다. 이번 사건처럼 억울한 일이 있어도 사업장을 자유롭게 바꿀 수도 없고, 퇴직금도 출국한 이후에 받을 수 있으며, 한국 사람과 똑같은 세금과 사회보험을 납부하지만 사회보장 제도는 충분히 누리기 어렵다. 그리고 아무리 한국에 오랫동안 청춘을 바쳐 일했어도 제도적으로 영주(永住)자격을 취득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차라리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이다. 그중에서 가장 문제라고 국내·외에서 꾸준히 지적된 것이 ‘사업장 변경 제한’ 문제였다.

 

 

그래도 사람을 일터에 강제로 묶어둘 수는 없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세 가지 질문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번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첫째, 비전문취업 체류자격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은 내국인 노동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원활한 사업장 운영에 도움이 된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하여 비전문취업(E-9) 체류자격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가 어떠한 이유로 사업장을 변경하더라도 결국 고용허가제 대상 사업장, 즉 고용허가제에 따른 조건을 모두 갖춘 사업장으로 내국인 노동자를 구하지 못한 곳으로 옮길 수 있다. 다른 노동시장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다. 소수의견이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를 허용한다고 하여 내국인의 고용시장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 게다가, 거시적으로 보면 ‘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원활한 사업장 운영’에도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고, 오히려 효용이 증가한다. 단기적으로는 A라는 사업장에서 B라는 사업장으로 인력이 이동하므로 인력과 사업 운영에 지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취지에 따라 외국인력이 필요하여 대기 중인 사업장으로 이동한 것으로 공급 총량이 줄어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단기적인 혼란을 극복하면 기존 노동력 수요공급의 미스매치(Mismatch)가 해소되어 노·사 모두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상태로 전환되고, 기존 인력이 이탈한 사업장도 결국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동기가 부여되어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지는 경우 사회 전체적으로 효용은 오히려 증가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 ‘불법체류자’의 증가는 고용허가제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우선, 미등록 이주민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모든 국가는 이주민을 자국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방식으로 선별하여 수용하고자 하지만 로봇이나 상품을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 이주하는 만큼 법 밖으로 밀려난 이주민의 존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한, ‘미등록이주민’의 범위와 개념이 불확정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법무부 출입국 통계월보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미등록 외국인의 숫자는 388,700명이다. 이 중 단기체류 목적으로 국내 입국했다가 체류기간을 도과하여 계속 체류하는 등 이유로 미등록이 된 외국인의 숫자가 262,251명으로 전체의 67%를 차지한다. 즉, 최근 ‘불법체류자’가 증가한 것은 고용허가제 대상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이동과 관련하여 생겨난 것이 아니라, 단기체류자 중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체류기간 도과자가 많아짐에 따른 것이다. 취업활동 자격이 있는 외국인(E라인)중에서 2021년 한 해 동안 미등록이 된 외국인 숫자가 13,782명인데 이 중 고용허가제(E-9) 대상자가 9,295명으로 67.4%를 차지하여 이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오히려 사업장 이동이 제한이 없는 다른 취업활동 비자에서는 이탈률이 낮고 이동을 제한하고 있는 고용허가제 대상에서 이례적으로 높게 조사되는 것으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있는 근거로 해석된다.

 

셋째, 사업장 변경의 허용은 고용허가제의 핵심이 아니다. 다수의견은 외국인 노동자의 자유로운 사업장 변경신청을 허용하는 것이 「외국인고용법」의 근간을 흔드는 핵심적인 요소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 이미 제한된 사유이지만 사업장 변경은 꾸준하게 허용되어왔고, 그 범위와 대상도 조금씩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자유로운 취업활동을 허용하는 이른바 ‘노동허가제’로의 전환이 아닌 이상 사업장 변경이 허용되더라도, 사업장 단위로 외국인력을 고용하고 관리하는 「외국인고용법」의 근간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 규정은 외국인력이 이탈하면 바로 경영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이른바 한계기업들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을 뿐인데, 국제인권기구를 포함한 외부의 비판과 현실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구체적인 인권침해 상황을 외면하면서까지 보호가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다.

 

물론, 단계적인 접근도 가능하다.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노동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사업장 변경 사유는 폐지하되, 사업장 변경 총횟수를 3~5회 정도로 제한하는 방법도 있다.이 경우에도 사업장 변경 횟수에 포함되지 않는 예외규정도 고려할 수 있다. 지금도 시행되고 있지만, 인력 공백의 최소화를 위해서 사업장을 변경하는 경우 변경기한을 단기간으로 제한할 수도 있다. 지금처럼 사람을 일터에 강제로 묶어 두는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있었다면 이런 다양한 대안이 좀 더 책임 있게 진행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사람을 일터에 강제로 묶어둘 수는 없습니다

 

갈등 해소를 위한 입법부의 역할 필요

 

안타깝지만, 이번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은 지난 10년 동안 지속해서 지적된 묵은 과제를 해소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일터를 그만둘 자유조차 허용되지 못해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출근을 하고, 또 누군가는 꼭 필요한 외국인 인력이 갑자기 떠난 뒤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노심초사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느 한쪽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회적인 갈등을 현명하게 조율하기 위한 입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1) 국가인권위원회는 2016년 「인종차별철폐협약」 제17·18·10차 정부 보고서에 대해서 ‘불법체류자’ 용어의 사용을 지양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수정할 것을 의견표명 한 바 있고, 2018년 12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공식적인 최종견해로 한국정부에 “유효한 허가 없이 당사국에 거주하는 이주민을 지칭하기 위해 정부 공식문서에서 사용되는 ‘불법체류자’와 같은 용어들이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차별을 악화시킨다”라고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1975년 유엔총회에서는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사를 결의(결의안 3449)하면서, 유엔 기구와 주요 기관들의 모든 공식문서에 ‘미등록 혹은 비정규 이주노동자’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 유럽의회총회 이사회에서는 2006년 ‘불법 이주노동자’ 대신에 더 중립적인 ‘비정규 이주노동자’라고 문서에 쓰기로 결의했다. AP통신을 비롯한 국제 언론에서도 ‘불법체류자’라는 단어를 인종차별적인 단어로 정의하고 사용하지 않기로 선언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법부에서는 여전히 공식문서인 판결문에 ‘불법체류자’라는 단어를 망설임 없이 사용하고 있으며 대부분 부정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사건 헌법재판소 결정문에도 결정요지를 포함하여 ‘불법체류’라는 단어가 8번 언급되었는데 통계자료를 인용하기 위해 사용한 부분을 제외하고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사법부가 정말로 어떠한 편견 없이 외국인의 권리를 법에 따라 판단하는 기관이라고 한다면 기관의 공식문서인 판결문에 더는 ‘불법체류자’라는 차별적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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