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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깊이읽기 [2022.07] 노인의 존엄은 자연스런 돌봄이 첫걸음이다

글 김유진(경북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노인의 존엄은 자연스런 돌봄이 첫걸음이다

 

노인돌봄 분야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와 같은 종사자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노인들을 돕는 일을 하는 중, 난감한 상황에 부닥칠 때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돌봄 필요가 높아 보이는 노인이 스스로가 자신은 괜찮다고 하는 경우와 관련한 상황이다. 누가 봐도 열악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있는 노인이 서비스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돌봄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데도 노인 본인은 잘 지낸다며 괜찮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식사는 하지 않고 술에 의존하는 노인, 반려동물 관리를 포함하여 주변 환경 정리가 전혀 되지 않아 폐 질환 등 만성질환이 악화하는 노인, 입원 치료가 필요한 것 같은데 치료를 거부하는 노인 등, 자신은 괜찮다며 내버려 두라는 노인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노인의 안전과 노인의 삶의 방식 또는 자율성 존중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보다 더욱 난감한 때가 있다. 바로 부모 돌봄에 무심하거나 방임 또는 학대가 의심되는 가족을 대할 때이다. 가족의 무관심과 방임 또는 노부모 돌봄을 타인에게 넘기는 것 같은 행태는 가구 형태를 불문하고 폭넓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노인돌봄 사업을 관리하는 사회복지사들은 함께 거주하는 노부모의 식사 챙기기와 주말의 병원 동행을 요구하는 가족을 만나기도 하고, 재개발 보상금을 더 많이 챙기기 위해 수도와 가스가 끊긴 곳에 노모를 내버려 둔 채 가끔 생수를 배달하는 가족을 목격하거나, 자녀들과의 재산 다툼으로 법정 소송 중인 노인의 우울과 공황장애가 더 심각해지는 것을 볼 때도 있다. 치매 검사를 위한 MRI 비용이 부담스러워 사회복지사의 전화를 회피하는 가족도 있다. 필자가 만난 한 사회복지사는 말했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노인의 상황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연락 자체를 불편해하는 가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말 이럴 때면 늘 감정 소진으로 딜레마에 빠지는데, 이런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노인의 존엄은 자연스런 돌봄이 첫걸음이다

 

노인돌봄, 책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위에서 살펴본 방임과 학대 같은 경우는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논외로 하고, ‘노년에 돌봄이 필요한 자를 누가 도와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자. 

 

여러 실태조사에 의하면, 우리 사회는 ‘노인 돌봄의 탈가족화’, ‘노인 돌봄의 사회화’가 매우 급속히 진행 중이다. 아직까진 많은 가족이 노인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부모 부양책임이 가족에게 있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2000년 71%였고, 2018년에는 27%라고 한다. 그리고 ‘부모 부양은 국가 등 사회에 있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2000년 20%에서 2018년 54%로 증가했다.

 

이와 같은 인식의 변화는 어디서 오는 걸까? 흔히 이야기하듯, 서구 문화의 영향,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에 따른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 때문일까? 국가 간 비교 자료를 보면, 꼭 그렇게 보기도 어려운 것 같다. 노인돌봄 의식에 관한 국가 간 비교를 위해 정윤태와 서재욱은 37개국의 자료를 분석1)하였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노인돌봄 의식 탈가족화 정도는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와 비슷한 수준이고, 가족책임 지지도는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보다 낮으며, 노인돌봄에 관한 세대별 인식의 차이는 매우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즉, 우리나라는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갖춘 북유럽 국가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선진국에 비해 노인돌봄의 책임이 가족보다는 사회에 있다고 보며, 그런 인식의 세대 간 차이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훨씬 크다는 것이다.

 

 

노인돌봄 서비스 제공의 실제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노인돌봄 서비스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사회복지사들의 생생한 현장 기록을 잠깐 살펴보자.

 

사례 1
“클라이언트는 80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근에 다니기에는 무리가 없었으나 대장암 등 건강 악화로 인해 혼자 생활하는데 무리 발생함. 고지대 위치한 무허가 주택에서 혼자 생활하심. 며느리에게 연락하여 챙기길 권유하였으나 ‘복지관에서 알아서 하세요. 저희도 이제 신경 쓰기가 힘드네요’ 의 말을 남기며 연락이 두절된 상황임.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안부확인, 생계지원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는 답변을 받음. 고독사 염려가 되어 요양병원 권유하였으나 클라이언트가 원치 않음. 생활지원사가 주 2회 방문하여 가사지원 등의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지만, 방문 이외의 시간에 한계 발생함. 이를 해결할 방안은 무엇인가?”

 

사례 2
“70세 남성 어르신. 최근 부엌 바닥에 의식은 있으나 쓰러진 채 생활지원사에게 발견됨. 약간의 취기가 보이며, 의사소통 불가능한 상황이었음. 전담 사회복지사가 바로 집으로 방문하였으며, 구급차로 대학병원에 이송시킴. 병원에서는 본 대상자가 보호자가 없어 자세한 진료 및 입원을 할 수 없다고 함. 본 기관에서 해당 동 주민센터를 통해 가족 중 형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유선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을 끊고 산 지 너무 오래되어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음. 위의 상황을 주민센터와 구청에 보고하고 문의하였지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음. 병원에서는 긴급의료비 지원 및 보호자에 관한 문의를 복지관으로만 하며, 주민센터와 구청에서는 정확한 답변과 도움을 주지 않아 수행기관은 난감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음. 복지관에서 어떻게, 어느 부분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음.”

 

 

노인의 존엄은 자연스런 돌봄이 첫걸음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취약 노인들

 

이런 사례를 우리나라 노인돌봄의 전반적인 현실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러 가지 차원에서 취약한 노인들의 삶과 이들을 위한 돌봄 지원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지역사회 자원이 부족하고, 가족은 외면하며, 공공의 협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돌봄서비스 제공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돌봄에 대하여 이중적인 태도를 가진 것 같다. 노인돌봄의 사회화를 강조하면서, 정작 돌봄의 책임은 다른 조직이나 구성원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돌봄의 본질과 내용에 대한 큰 고민 없이, 공공은 민간에게, 가족은 사회에게 전가하는 형태로 사회적 돌봄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노인돌봄뿐 아니라 거의 모든 공공 돌봄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고도의 압축적 경제근대화, 세계화 시기를 거쳐 핵가족화를 넘어 1인 가구가 대세가 되었다 사회 정책과 제도의 정비보다 의식의 변화가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가치와 윤리의식 부재, 표퓰리즘 남발 속에 세대 간 갈등, 연령 차별적 인식도 심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돌봄이 필요해진 시기의 노인은, 세대 간 인식의 격차가 크고 돌봄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노인돌봄의 사회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자신이 부모에게 했듯 자신은 부양받길 기대하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이 야속하지 않을까? 미로에 처하거나 공중에 붕 뜬 것 같지는 않을까? 생애주기상, 돌봄 욕구가 점점 커지는데, 유아기의 아이처럼 돌봄 욕구를 드러내기도 어렵지 않을까? 주변에서 돌봄 욕구 변화를 세심하게 알아채지는 못하면서,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을 때,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앞에서 본 것처럼, 돌봄 필요가 높아 보이는 노인이라면 그냥 괜찮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핑퐁 게임을 하듯 돌봄의 주체를 따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노인들이 마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노년기 돌봄 욕구를 자연스럽게 대하는 사회

 

돌봄의 주체가 누구냐의 문제 못지않게 ‘노인돌봄은 과연 무엇인가?’, ‘돌봄의 내용은 어디까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그리고 가족이든, 사회든, 노인 스스로가 돌봄 욕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도 괜찮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 초고령화 시대의 노인들이 존엄하게 나이 들어가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돌봄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

 

*본 원고의 내용은 필자의 칼럼과 논문 일부를 담고 있습니다.2)

 

김유진 경북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 노인인권포럼 회원, 한국노년학회 편집위원장으로 고령사회 노인인권 보호와 해결방안을 위해 연구활동하고 있으며, 『RE-AIM 틀을 활용하여 살펴본 고독사·자살 예방사업의 시행과정과 성과』(2022) 등의 논문을 집필하였습니다.

 

1) 정윤태, 서재욱(2016), 『노인 돌봄 의식의 국제비교 연구:ISSP(2012)의 37개국을 중심으로』. 한국노인복지연구, 71(3), 335~357.
2) 김유진(2022), 『노인돌봄을 누가 해야 하느냐보다 중요한 것』. 두레성서이야기, 82, 20~23.
김유진(2022),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전담사회복지사의 경험을 통해 살펴본 에이징 인 플레이스 지원 사례관리의 어려움과 딜레마』. 사회과학담론과정책, 15(1), 6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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