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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기 [2022.08] [기후위기 속의 인권] ④ 6차 대멸종에서 살아남기

글 강수돌(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인권」은 기후위기로 인해 소외당하거나 발생할 인권 침해의 오늘과 내일을 직시하고 경각심을 높이고자 ‘기후위기 속의 인권’ 연재를 기획하였다.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강수돌 교수가 선택한 대중영화를 통해 기후위기 사례를 알아보았다. 「인권」은 독자와 함께 2022년 기후위기와 인권위기를 넘어서는 변화와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④ 6차 대멸종에서 살아남기

 

2016년에 공개된 피셔 스티븐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비포 더 플러드(Before the Flood)>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적 재앙을 보여주는데, 그중에서도 홍수(물바다)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UN평화대사로 활약 중인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제작하고,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평화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기 좋은 상황(세상)을 의미한다고 할 때, 그의 출연은 지구온난화와 생태재앙이 없는 건강한 미래를 위한 평화적 활동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후, 수상 소감으로 온 세상을 향해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활동에 동참을 호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지난 백 년간 지구상 생물종의 멸종 속도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멸종 속도가 빨라진다면, 35억 년 지구 생명체의 역사에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즉, ‘6차 대멸종’이다! 5차 대멸종과 6차 대멸종 사이에는 적어도 6천 5백만 년(!)의 간극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원래 생물 대멸종이 발생하는 배경에는 소행성 충돌, 대규모 화산폭발, 급격한 기후변화 등 여러 가설이 있다. 상당수 과학자는 6차 대멸종이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기후변화 내지는 기후위기로 인해 초래될 것이라 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최근 기후위기의 원인이 자본주의 역사가 만든 결과라는 점이다. 6차 대멸종이 닥치기까지 걸린 6천 5백만 년의 긴 세월 중, 기후위기를 초래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0년 내외인 것이다. 현재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선진국)을 자랑하지만, 기후위기의 최대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는 한국을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흔히 선진국에 들었다 하면 자부심의 원천이 되지만,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의 관점에서 보면 선진국이란 수치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1500년경, 기후위기를 예견한 화가는?

 

‘비포 더 플러드(Before the Flood)’를 우리말로 옮기면, ‘대홍수가 닥치기 전에’으로 제목에서부터 생존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난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지구온난화와 인권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장면을 몇 가지 간추리면 이렇다.

 

첫째, 인간이 잘 살아보겠다고 추진한 경제개발이 화석연료의 대량 사용과 대규모 자연 파괴를 초래함으로써, 결국 보편 인권의 근본인 생존권 자체를 침해한다는 역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둘째, 글로벌 지구온난화와 생태적 재앙이라는 동일한 참사 속에서도 그 인권적 피해가 불균등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셋째, 지구온난화나 기후위기에 대한 해법 중 하나로 신기술 개발이 각광받는데, 이런 기술주의적 해법이 과연 보편적 인권을 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 점들에 관해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더욱 나은 삶을 위해 너도나도 앞다투어 추진한 경제개발과 경제성장이 과연 인권, 특히 가장 기본적인 인류의 생존을 보장하는가?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 하나는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 ‘쾌락의 정원’(1500년경 작)이 맨 처음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세 폭 제단화 형식의 이 그림은 왼편에는 지상 낙원을, 중앙에는 세속적 쾌락의 대잔치를, 맨 우측에는 지옥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흐름은 마치 근대 자본주의 경제발전이 기존의 조화롭던 자연을 망가뜨리면서 세속적 부를 추구한 나머지 종국에는 모두 지옥으로 추락할 것임을 예고하는 듯하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출범한 18세기보다 약 300년 앞서서, 자본주의의 싹만 보고도 수백 년 뒤에 자본주의로 비롯될 결과를 내다본 화가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그림을 가리키며 자기가 어릴 적 본 그림인데 이것이 갈수록 황폐화하는 지구를 상징하는 듯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 <레버넌트> 촬영 당시, 눈과 얼음이 덮인 장소를 찾기 위해 무려 5,000㎞를 이동해야 했다며, 갈수록 만년설을 찾기 어렵다고 증언한다. 과학자들이 기후변화 관측을 위해 5년 전에 얼음 속 깊이 묻어 놓았던 기후관측장비 호스는 이미 얼음 표면 위로 드러났다. 지구의 에어컨 역할을 하는 만년설과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는 것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의 전조다.

 

마이애미 비치로 유명한 미국 플로리다는 해수면이 높아져 물난리를 수시로 겪는다. 방글라데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상 폭우로 농사를 망치기 일쑤다. 2000년에 공항이 있던 섬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투발루의 경우처럼, 팔라우섬이나 키리바시섬도 물속으로 사라질 위기다. 참고로 기후위기 속에서 지역에 따라 홍수와 가뭄, 이상 한파와 이상 폭염, 폭풍과 산불이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수온이나 기온의 급격한 변화로 지구 생태계가 우리의 상식을 배반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이 모든 사례는 자본주의 경제성장이 지난 수백 년 동안 물질적 소비수준을 엄청나게 높인 반면,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 삶의 토대를 더 근본적으로 더 급속히 파괴하고 있음을 생생히 증명한다. 즉, ‘발전의 역설’ 이다.

 

둘째, 글로벌 차원에서 심화하는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한 생태적 참사와 인권 침해는 나라별, 지역별, 계층별로 불평등하게 나타난다.

 

자본주의 근대 사회가 보편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프랑스인권선언의 ‘만인 평등’이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의 현실 속에서 무참히 훼손되는 국면이다. 일례로 <비포 더 플러드(Before the Flood)>에서는 대홍수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피해가 선진국보다는 후진국에, 부자 동네보다는 서민층에 더 집중해서 발생함을 보여준다. 방글라데시의 농민 피해와 팔라우섬의 위기가 그러하다. 부자 나라보다는 가난한 나라들과 나아가 농민, 어민, 도시 빈민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들이 기후위기의 직접적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가장 억울한 측면은 선진국이나 중진국이 기후위기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했음에도 후진국이 그 피해를 많이 입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들이 후진국과 연대하고 지원하면서 함께 근본 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후진국 역시 피해의식에 젖어 선진국 못지않은 오류를 반복하고 말 것이다.

 

셋째,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를 기술적으로 극복하려는 새로운 시도들은 과연 인권을 보호하고 신장할 수 있을까?

 

물론 여전히 경제계와 산업계는 당장 땅이 물속에 잠기지 않고 공장이 홍수로 피해를 보지 않는다면 탄소중립과 탄소제로 같은 이야기에 코웃음만 칠 것이다. 나아가 설사 그런 피해를 직접 입더라도 근본적 문제를 인식하기보다는 (돈이 되는) 새 기술 상품을 도입, 온실가스 발생을 줄이거나 온실가스 자체를 포집해 다른 걸 만든다는 식으로 피해 가려 한다. 그렇게 되면 기껏해야 문제를 지연시킬 뿐이지 근본적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이것을 비윤리적인 돈세탁에 빗대어 무책임한 ‘환경세탁’이란 의미로 ‘그린워싱(Green Washing)’이라고 한다.

 

결국에는 인권 보호와 인권 신장은 어려워지고 오히려 문제 상황은 더 높은 단계로 악화하기 일쑤다. 1400년대 상업자본주의 이후, 자본주의 역사를 길게 600년 정도로 잡았을 때, 실제로도 그 기간 자본과 권력은 실업, 공황, 파산, 오염 등 온갖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늘 기술혁신만이 답이라 주창해왔다. 물론 기술혁신은 삶의 양과 질을 향상하고 경쟁력을 높인 면도 있으며, 지구 전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해 왔다. 그러나 기술혁신은 동시에 삶의 여백이나 친밀한 인간관계를 앗아 가는 경향이 있다. 인간을 ‘잉여’ 로 만드는 것은 치명타다. 게다가 기술혁신의 빈익빈 부익부도 있다. 비싼 기술은 돈이 없으면 못 구한다. 더 근본적으로, 기술혁신은 상품 단위당 포함된 인간노동력의 양을 줄임으로써 자본이 무한정 추구하는 가치(교환가치)와 잉여가치의 양을 축소하기에, 자본으로 하여금 갈수록 더 대규모로 생산을 확장하도록 강제한다.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의 자본주의 생활양식은 지구온난화 및 기후위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근본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전반적 생활양식을 ‘적정생산-적정생활-적정순환’의 새로운 방식으로 고치지 않은 채 단지 기술혁신이라는 기술주의적 접근법으로 현실을 외면하려 한다면, 결국에는 6차 대멸종을 막기는커녕 앞당기고 말 것이다.

 

 

 

기후위기로부터 지구를 구할 마지막 희망은?

 

<비포 더 플러드(Before the Flood)>에서도 현 인류는 당면한 문제해결에 있어 여전히 무능함을 드러낸다. 그 무능함은 크게 세 차원에서 드러난다.

 

첫째는 현실에 비해 인식이 무지한 것, 둘째는 우려에 비해 실천이 미진한 것, 셋째는 실천에 비해 효과가 미미한 것이다. 따라서 인식, 실천, 효과 등 3차원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인식을 드높이려면 유치원, 초중고, 대학 등 교육기관은 물론 신문, 방송, 유튜브 등 언론, 나아가 종교나 문화예술 등 모든 영역에서 ‘날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 그리고 인권의 문제 등에 대해 지속적인 정보 제공과 토론을 해야 한다. 다 같이 살기 위해서다. 실천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일부 활동가들의 개별적 실천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함을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장관부터 개별 가정에 이르기까지, 또 대기업, 중소기업, 공공기관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조직이 ‘죽기 아니면 살기’의 자세로 실천해야 한다. 외면의 정치나 임기응변 정치를 종식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그 실천의 효과를 드높이기 위해서라도 (이산화탄소포집과 같은) 기술주의 해법이나 (탄소세 도입과 같은) 시장주의 해법의 한계를 넘어 탄소제로와 생태순환의 새로운 생활방식(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일례로, 전면적인 에너지 절약과 채식, 생태 공동체 만들기, 숲 가꾸기가 상징적 대안이다. 이런 변화는 국가별이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연대해야 가능하다. 한마디로, 인류가 ‘6차 대멸종’ 이전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글로벌 혁명’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비포 더 플러드(Before the Flood)>가 인권 차원에 호소하는 가장 시급한 메시지가 아닐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호소처럼 “당신이(우리 모두가) 이 행성을 구할 마지막 희망이다!”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는 기업과 공공부문 노사관계, 이주노동자의 삶과 운동, 일중독과 건강 문제, 중독 시스템 문제 등을 연구했고, 주경야독을 하며 학생과 시민들을 위한 인문학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함씨네와 함께 하는 ‘나부터’ 밥상 혁명』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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