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2016.04] 어머니, 어머니들

글 사진 임종진

 

1

나는 당신의 기도를 듣지 못합니다.
두 손 모아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염원을 담아내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둘러싼 어느 영혼들일 것이라 어슴푸레 짐작할 뿐입니다.
그들을 위한 하염없는 낭송일 거라,
그들을 생각하는 조건 없는 몸짓일 거라 여길 뿐입니다.
때론 그 손끝이 왜 당신을 향하지는 않느냐고 묻고도 싶습니다.
당신 밖의 모든 것을 조금은 내려놓고, 이제는 그리해도 되지 않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2009. 8. 인도네시아



어머니, 어머니들 02 

 

말은 거의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집으로 들어오라며 자글자글한 주름웃음을 지으시며 자꾸 손짓합니다.
주전자에 팔팔 물을 끓여 커다란 유리잔에 노란색 분말가루와 함께 넣어 저으시더니
그대로 건네셨습니다.
얼음 한 조각 없는 뜨거운 그 오렌지주스 한 잔이 그리도 '시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이곳에 머문 지 50년이 훌쩍 넘었다는 여든다섯 살의 남키 할머니.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으려니 하며 이제나저제나… 짐을 쌀 준비도 되어 있는데,
세월은 깊은 주름 하나 더 얹어주고는 오늘도 하루를 받아 떠나갑니다.
창밖을 기웃거리던 햇빛이 오롯이 남키 할머니의 얼굴에 내려앉습니다.


2007. 7. 티베트난민촌. 포카라. 네팔




어머니, 어머니들 03

 

늦은 밤 갑작스러운 헬기의 굉음과 번쩍거리는 조명탄.
뒤를 이어 귀를 찢을 듯 요란한 총성이 주변을 메웠습니다.
그러고는 창문을 깨고 날아든 수십 발의 총탄이 집 안 여기저기를 들쑤셨습니다.
우는 아이들을 끌어안은 어머니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야 했습니다.
밤새 죽음과 맞닿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근처에 저항 세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첩보로 인해 미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 짓거리였음을.


2003. 7. 알 후리야 구역. 바그다드. 이라크



어머니, 어머니들 04

 

고원의 뜨거운 태양이 할머니의 얼굴에 짙은 색 물감을 들여놓았습니다.
이름마저 오래된 마을 한가운데 큰길가에서 할머니는 어린 손주를 업고 나와
어화둥둥 노래도 불러주고 두런두런 옛날얘기도 들려줍니다.
몇 개 남지 않은 앞니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드나듭니다.
슬며시 지어주시는 웃음이 더없이 아름다웠습니다


2007. 7. 올드 팅그리 마을. 티베트





어머니, 어머니들 05

 

철망은 이들의 삶을 구분하는 담벼락입니다.
한순간에 시내 바깥으로 떠밀린 도시빈민들을 규정하는 울타리입니다.
이제 살아야 할 이곳에서 어머니는, 얼기설기 천막집 하나 지어놓고 주변을 돌아봅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무작정 내쳐지는 삶에 지칠 법도 하건만,
어머니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는 오늘 하루를 감당해냅니다.


 

2006. 7. 언동마을. 얼룽깡안 캄보디아

 

 

어머니, 어머니들 06

 

 

아들의 영정사진을 붙들고 어머니가 웃음을 짓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실종된 지 1년 만인 1998년 3월,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은 이제 말이 없습니다.
이후 같은 처지의 다른 분들과 함께 아들의 사망 원인을 밝혀내라며 수없이 많은 곳을 찾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때론 삭발까지 하며 울부짖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의 웃음은 억울하게 사라진 당신의 아들을 조금 더 세상 바깥으로 전하려는 서글픈 의지입니다.
지난 2010년 9월 8일, 23년 만에 노동열사 정경식의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원인규명은 안 되었지만 진실화해위원회의 민주화운동 인정을 받아 명예회복이 되었기에
마음을 푼 어머니의 뜻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보다 정확히 10년 전인 2000년 10월, 김을선(당시 68세) 어머니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설립 홍보 광고촬영을 위해 아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밝게 웃어주었습니다.
세상이 눈과 귀를 기울이며 '왜?'라고 물어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2000. 10. 마포. 서울




어머니, 어머니들 07

 

시골 동네 한 귀퉁이의 작은 구멍가게.
반찬거리를 파는 젊은 어머니는 어린 아들과 함께 매일 자리를 지킵니다.
그리 많지도 않은 가옥이 듬성듬성 세워진 이 작은 마을에서 구멍가게는,
동네 아낙네들이 수다 떨기에 좋은 모임터이기도 합니다.



2006. 7. 쩜나옹. 캄보디아



어머니, 어머니들 08

 

부지런히 모종을 날라야 군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젊은 것이 왜 이리 걸음이 느리냐고 시어머니가 버럭 소리 지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서두를 것 없이 사뿐한 걸음으로 옮겨놓으면 됩니다.
푸른 하늘에 실린 날바람이 여인의 어깨에 내린 뜨거운 햇살을 가만히 식혀주었습니다.


2010. 7. 콜로니 마을. 네팔



8

 

평생을 살아온 공기 좋고 물 좋은 고향 땅에 느닷없이 골프장과 레저센터가 들어온다고 합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 농사만 짓던 어머니들이 그냥 있을 수 없다며 머리띠를 둘러맸습니다.
생전 처음 목이 터져라 구호도 외쳐봅니다.
전북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 덕곡마을 사람들.
평생 농사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이들이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모여 앉아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 땅의 주인인 그들이 당연히 해도 될 얘기를 그렇게 외쳐봅니다.
그리고 한 어머니가 나직하게 몇 마디를 남겼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우리 동네가 젤루다가 물이 좋지유우. 겁나게 말이유우.”


2006년. 2. 광화문 정부청사 앞. 서울.




어머니, 어머니들 10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을 겨를도 없습니다. 그대로 빨려들어가 손가락을 더듬거리고 맙니다.
서로 마주 앉아서 그렇게 두 눈을 마주봅니다.
당신의 주름 가득한 얼굴 앞에서 난,
기억 저편 그리움만 남은 외할머니를 떠올렸습니다.

2008. 11. 깜뽕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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