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보기 [통권158호 2025년 5월*6월.05~06] #1 당사자의 경험과 목소리에서 출발한 디지털 아동권리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길을 다니다 보면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아동의 연령이 낮아진 것을 확연히 느낀다. <2023 어린이 미디어 이용조사>(한국언론진흥재단) 결과에 따르면 3세에서 9세 이하 어린이의 77.7%가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디지털 세상에 발을 들이는 아동의 저연령화는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기를 손에 쥐고 있다고 해서, 모든 아동이 디지털 세상에 동일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동간 디지털 격차는 오프라인 격차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어떤 기기를 가지고 있는지, 그 기기로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 범위는 어떤지. 디지털 공간에서의 경험을 지원하고 지도하는 문화적, 사회적 자원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아동의 디지털 경험은 서로 다르게 펼쳐질 수밖에 없다. 최신의 기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혹여 디지털 세상에서 위험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안전망을 가지고 있느냐 여부가 그들의 디지털 경험의 명암을 가르기도 한다.
기성세대인 우리는 아동청소년의 디지털 경험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성을 제시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어렵다. ‘디지털’과 ‘아동청소년’이 함께 등장했던 뉴스나 주변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어쩌면 흥미로운 불협화음을 알아차리게 될지 모른다. 한편에는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한 기기보급 정책(예를 들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비대면 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태블릿 피시 보급 등)이 있다. 이는 아동청소년이 디지털 기술에 적극적으로 접근하여 디지털 사회에 누락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최근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많은 교육 프로그램 역시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인공지능 같은 신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함을 강조한다. 또 한편에는 딥페이크 범죄의 피해자이며 피의자였던 이들 대부분이 10대였다는 기사, 청소년들의 무서운 온라인 괴롭힘 실태, 사이버 도박에 쉽게 빠져드는 청소년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호주에서는 16세 이하는 소셜 미디어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국제 뉴스도 있다. 이런 소식을 접하는 부모나 양육자는 자녀의 디지털 이용을 권해야 할지 통제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아동을 만나 그들의 디지털 미디어 이용 경험을 듣고 그들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살피다 보면, 그들이 디지털 세상에서의 경험을 도와줄 신호등, 즉 롤모델이나 지침이 부재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디지털 세상에서의 즐거움도 어려움도 직접 몸으로 부딪혀 겪으며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하는 아동. 그들을 건강한 환경에서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인권 중심 접근, 즉 디지털 아동권리 보장이 시급하다.
아동의 디지털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아동의 현실과 경험에 발붙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디지털 기기(예를 들어 스마트폰)를 얼마나 쓰는지, 유튜브나 게임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아닌지에만 집중하기보다, 이 기기를 매개로 무슨 경험을 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소통하는 것을 즐기는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지, 자신이 흥미를 가지는 주제를 탐색하는 것을 즐기는지, 다양한 방식으로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지 구체적인 경험을 들여다보면, 기기 너머에 아동이 경험하는 다채로운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아동에게 디지털 세상과 우리가 ‘오프라인’이라고 부르는 세상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공조하는 세상임을 실감하게 된다.
유엔은 2019년 2월 유엔아동권리협약 일반논평 25호, ‘디지털 환경에서 아동권리’를 발표하였다. 이 일반 논평은 협약당사국이 디지털 환경에서 모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입법, 정책 등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이 중 특히 주목할 내용으로 디지털 환경에 대해 아동의 청취 받을 권리를 꼽고 싶다. 디지털 환경을 경험하고 구성하는 당사자로서 아동을 존중하고, 디지털 환경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거나 방향성을 결정할 때에 반드시 아동의 목소리를 청취하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디지털 기술이나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한 사회 문제를 다룰 때 아동의 목소리를 중심에 놓기보다 수혜나 교정의 대상으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아동의 디지털 권리를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개인, 기업, 사회 모두의 다각적 노력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 먼저 자리 잡기 시작한 온라인 안전법처럼 디지털 공간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법을 제정하는 것, 디지털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의 책무를 강화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지녀야 하는 디지털 시민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과 더불어 아동 당사자가 디지털 환경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싶다. 디지털 기술이나 인공지능 도구의 활용법을 가르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아동이 경험하는 디지털 환경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역량과 디지털 시민성을 키울 수 있게 돕는 교육이 중요하다. 딥페이크 범죄가 사회문제가 된 이후 딥페이크 범죄 예방 교육이 우후죽순처럼 실행되었다. 하지만 ‘딥페이크 범죄의 처벌은 어떠하다’, ‘범죄니 하지 말아라’를 말하는 1회성 교육에 그치지 말고,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하는 책임감은 무엇인가, 디지털 환경 속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에서 나타나고 있는 불평등의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하는지를 말하는 교육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아동에게 디지털 환경은 선택적으로 끄고 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래서 디지털 환경에서 아동의 권리가 보장되는가는 아동의 성장과 안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동이 디지털 환경에서 습득한 문화는 오프라인으로 확산되어 우리 사회 전반의 문화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 전반의 문화가 디지털 환경의 문화에 깊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나는 디지털 환경과는 별 관련이 없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과 무관한 것 같아도, 혹은 아동과 무관한 것 같아도 우리의 행동과 생각은 아동의 디지털 권리 보장과 연결되어 있다. ‘가짜뉴스’ 해결책을 마련하는 디지털 시민성 프로젝트를 꾸리던 고등학생이 해준 말이 기억난다. “디지털 공간에서 ‘가짜뉴스’를 없애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오프라인에 ‘가짜뉴스’가 더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 디지털 공간에서 ‘가짜뉴스’를 없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글 | 김아미(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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