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158호 2025년 5월*6월.05~06 > 책으로 읽는 인권 >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이 나아갈 길 『폭정』

책으로 읽는 인권 [통권158호 2025년 5월*6월.05~06]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이 나아갈 길 『폭정』

 

민주주의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며, 20세기 교훈 20가지를 내세워 <폭정>을 경계하라고 책을 냈던 미국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 그는 작년 12월 4일 또다른 교훈을 급히 정리했다. ‘하루 동안의 독재자’(Dictators for a day)’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실패 소식을 알리며 미국인들이 한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을 설명했다.

그의 관점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가짜 뉴스’를 언급하고 자신의 정치적 반대자들을 국가의 ‘적’이라고 부르는 대통령이 계엄에 완벽하게 실패한 사례. 그는 1979년 마지막 계엄령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이 시민사회, 특히 노동조합의 강력한 활동 덕분에 의미 있는 선거와 시민권 측면에서 상당히 단호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계엄 직후 한국 국회의원들이 군사 독재 위협에 맞선 태도와 결의도 언급하면서 과연 미국 의원들도 해낼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답변을 유보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교훈은 시민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사회가 아니다’, ‘우리는 독재가 아닌 공화국을 선택할 것’이라는 인식 아래 윤 대통령이 금지하려고 했던 바로 그 행동, 즉 말하고, 모이고, 저항한 시민들을 주목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이 나아갈 길 『폭정』

 

이처럼 민주 공화국을 지켜내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자 책무. 역사는 민주정과 공화정이 과두제와 제국으로 변질된 사례를 수없이 보여주지만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불평등이 불안정을 초래한다’면 우리는 지금도 안전하지 않다. 세계화가 불평등을 심화시킬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티머시 스나이더는 100년 전을 살펴본다. 문명, 공화국에 대한 자부심이 흘러넘치던 유럽에서 여러 민주정들이 우파 권위주의와 파시즘에 밀렸다. 20세기 유럽의 역사는 사회가 분열될 수 있고, 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질 수 있으며, 도덕이 땅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20세기 독재자들도 처음부터 독재자는 아니었다. 다들 민주적 선거로 집권했다. 제노사이드를 벌이면서도 자기들은 애국자라 했다. 선동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이용해서 폭군의 지위에 오른다는 플라톤의 믿음은 수천년이 지나도 유효했다. 어느날 문득 폭정을 마주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민의 매뉴얼도 유효하다. 몇가지만 살펴보자.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이 나아갈 길

 

‘미리 복종하지 말라’
나치는 상부 명령 없이, 눈치껏, 솔선해서 대량학살방법을 고안했다. 히틀러 상상을 뛰어넘었다. ‘예측 복종’이란 새로운 상황에 반성 없이 본능적으로 적응하는 걸 뜻한다. 스탠리 밀그램의 유명한 연구가 있다. 권위자가 내세운 규칙에 ‘시키는 대로 하는’ 인간들은 한없이 잔인해진다.

 

 

‘제도를 보호하라’
새 권력자들이 제도를 바꾸거나 파괴하지 못할 거라고? 나치의 새 질서가 공고해지는데 1년도 안 걸렸고, 독일은 순식간에 모든 제도가 있으나 마나 한 일당국가가 됐다.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눌 때, 그것이 마지막인걸 모른단다. 투표도 그렇다. 나치에 투표한 독일인들은 당분간 그게 의미 있는 마지막 자유선거란 걸 몰랐다. 1990년 투표한 러시아인들도 그게 마지막 공정한 자유 선거란 걸 몰랐다. 우리에게는 시민의 정치적 자유, 언론 자유를 규정한 법이 있다. 계엄은 그 모든 것을 뭉개버릴 작정이었다.

 

 

‘세상의 얼굴에 책임을 져라’
유대인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처음엔 억눌려 있었다. 그러나 멀뚱히 지켜본 자들도, 가게에 ‘유대인’ 표시를 한 이들도 그 소멸 과정에 참여했다. 끔찍한 미래와 타협하는 과정이었다. ‘찬성’이라는 핀을 옷깃에 꽂았던 독일인들은 나치 일당국가를 승인했고, 몇 년 뒤 오스트리아 사람들도 그 핀을 꽂기 시작했단다. 때로 자부심의 표현이 배척의 근원이 됐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충성의 상징을 드러낼 때가 온다면, 그런 상징이 동료 시민을 배척하는데 이용되는 건 아닌지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직업 윤리를 명심하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실패한 것은 의회에 난입하던 군인들이 적극적이지 않았던 덕분도 있다. 국민을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군인의 소명과 계엄 명령 사이에서 그들은 소명을 따랐다. 일개 개인이 윤리를 지키는 것은 어렵지만, 직업인으로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재판 없는 처형은 안된다는 규범을 법률가들이 따랐다면, 동의 없는 수술은 없다는 규정을 의사들이 받아들였다면 노예 노동 금지를 기업가들이 지지했다면, 살인과 관련된 서류 작업의 처리를 관료들이 거부했다면, 나치는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못했다.

 

 

‘준군사 조직을 경계하라’
나치의 무장 조직은 히틀러의 군중집회 중에 반대자들을 몰아내는 경호대로 출발했다. 이들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유대인을 약탈하고, 구타하고, 욕보인 것도 현지의 돌격대였다. 이들은 법 밖의 조직으로 출발해 법을 초월했고, 결국 법을 없애버린 조직이 됐다.

 

 

‘진실을 믿어라’
듣고 싶은 말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다를 수 있음을 부정할 때, 우리는 폭정에 굴복하게 된다. 현실을 부정하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진실은 네 가지 방식으로 소멸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실시간으로 목격 중이다. 첫째, 검증 가능한 현실에 대한 공공연한 적개심. 날조와 거짓말을 마치 사실인 양 제시한다. 두 번째, 샤머니즘적 주문이다. 파시즘의 표현 방식은 허구를 그럴듯하게, 범죄를 바람직하게 만들기 위해 ‘끝없는 반복’을 시전한다. 말끝마다 ‘종북세력’을 달고 다니는 것도 이유가 있다. 세 번째 방식은 마술적 사고, 즉 공공연히 모순을 끌어안는 것이다. 트럼프는 모든 사람에게 세금을 깎아 주고, 국가 채무를 없애고, 사회 정책과 국방에 들어가는 지출을 모두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 방식은 부적절한 믿음이다. ‘나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거나 ‘내가 당신들의 대변자다’ 같은 말,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주장, 들어본 적 없나? 탈진실은 파시즘의 전단계다.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이 나아갈 길

 

‘몸의 정치를 실천하라’
저항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한계를 넘어야 한단다. 첫째, 변화의 아이디어는 전적으로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둘째, 우리는 홈그라운드를 떠나 이전에 친구가 아니었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어렵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동유럽의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첫 파도는 폴란드에서 시작됐는데 노동자와 변호사, 학자 같은 직업인, 가톨릭 교도, 세속 단체가 모두 동맹으로 뭉친 덕분이었다. 극단적 상대 말고 합리적인 중도 시민들끼리 연대해야 한다. 지난 촛불이 그랬다.

 

 

‘위험한 낱말을 경계하라’
모든 규칙을 파괴하는 방법은 ‘예외’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나치 지도자는 지금 이 순간이 예외적이라는 보편적 확신을 만들어 낸 뒤, 그러한 예외적인 상황을 영구적인 비상 사태로 전환함으로써 적들을 제압했다고 한다. 시민들은 진짜 자유와 가짜 안전을 맞바꿨다.

 

 

‘애국자가 돼라’
다음 세대에 조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좋은 선례를 보여야 한단다. 모범이 필요하니까.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겪은 새로운 세대는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다. 시민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키는지 보고 있다.

 

 

‘최대한 용기를 내라’
“아무도 자유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모두 폭정 아래서 죽을 것이다”. 인류 역사는 늘 이를 입증했다. 21세기라고 예외는 아니다. 무장군인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던 시민들, 겨울 내내 거리를 지킨 우리의 용기가 답이다.

 

 

글 | 정혜승(북살롱 오티움 공동대표)
본지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우리 위원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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