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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보기 [2025.09~10] #3 노인인권 존엄한 죽음이 인권이다

 

〈어머니와 나〉
〈어머니와 나〉

 

나를 집에서 죽게 해 다오

 

96살의 어머니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70살을 넘기면서 ‘내가 어떻게 죽을지 몹시 궁금하다’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요양원도 보내지 말고, 요양보호사도 집에 오지 않게 하라, 내가 내 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되면 너희 맘대로 하거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노인복지관에서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로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에서 웰다잉사업을 아주 열심히 하는 입장에서 어머니의 의견을 존중했다.

 

노인인권 존엄한 죽음이 인권이다

 

작년 가을 어머니에게 두 차례 뇌출혈이 왔다.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생후 6개월 어린아이처럼 만나면 방긋 웃고, 식사가 오면 반사적으로 턱받이를 찾는다. 10개월째 대소변처리까지 가족에게 맡긴 상태이다. 감기나 욕창의 기미가 보이면 의료생활협동조합을 통해 방문진료와 방문간호를 받고 있다. 임종준비를 집에서 하고 있다.

 

 

진정한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in-place)는 집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다. 2003년 한국건축학회에서 처음 소개된 이 개념은 지금 세계적으로 고령사회 대응의 핵심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아닌 살아온 곳에서 가족과 함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AIP의 완성이다. 이것이 웰다잉(well-dying)이고 노인이 존중받는 사회이다. OECD INDICATORS (Health at a Glance 2023)에 따르면, 한국은 병원 사망 비율이 68%로 최고 수준이다. 평균 49%보다 13.8%가 높다. 최근 10년 동안 일본은 병원 사망률 72%에서 5%가 감소하여 67%가 되었다. 이는 방문의료와 집에서의 사망진단서 발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집에서 죽으면 경찰 조사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주관, 대학로 마로니 공원에서 공동캠페인 중 2024년〉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주관, 대학로 마로니 공원에서 공동캠페인 중 2024년〉

 

존엄한 죽음, 국가가 나설 때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이 시작된다. 2024년 7월,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1천만 명을 넘어섰다. 전인구의 20%, 초고령사회가 되었다. 올해 사망자는 약 35만 명이다. 2023년 12월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 사망자’에 따르면, 2030년에는 40만 명이 넘고 2055년부터 2065년까지 평균 75만 명에 이른다. 지금의 두 배가 넘는다.

 

5년 전부터 죽음에 대해 노인당사자의 관심이 매우 높다. 노인복지관에서도 전국적으로 존엄한 죽음, 맞이하는 죽음에 대한 공론이 활발하다. 각당복지재단 등 민간단체의 노력 또한 상상 그 이상이다. 행복한 죽음의 폿대를 높이 세우는 중이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은 ‘스스로 정리하는 임종’, ‘고통없는 죽음’, ‘가족에게 부담 주지 않는 죽음’을 좋은 죽음으로 발표했다.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21-2025)에서도 ‘존엄한 삶의 마무리’ 목표를 세웠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국민의 삶과 죽음 모두를 아우르는 관점에서 ‘죽을 때까지 잘 사는 것’을 위한 국가 대계를 수립해야 한다. 웰다잉에 대해 거시적 안목으로 정책을 실행할 ‘씽크탱크’ 역할을 보건복지부가 주도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웰다잉지원국을 설치하고 국가기본계획수립과 생애말기 건강관리 등 통합전담 부서 설치를 시급히 해야한다.

 

제5차 「저출생·고령사회기본계획」에서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노인 당사자는 물론 한국노인종합복지관과 각당복지재단 등 30년 이상 존엄한 죽음에 대해 노력한 민간단체와의 논의구조 또한 필수이다.

 

 

〈공동모금회 지원,‘웰다잉교육 체계화사업-타자와와의 관계회복의 중요성’ 수업 중 2024년〉
〈공동모금회 지원, ‘웰다잉교육 체계화사업-타자와와의 관계회복의 중요성’ 수업 중 2024년〉

 

안전한 죽음이 인권이다

 

나의 어머니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보자.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와 6·25 한국전쟁, 산업화 과정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왔다.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 24시간 중 장기요양서비스 3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자녀 셋이 돌본다. 사람들은 ‘어머니가 복을 많이 받으셨네’ 하며 부러워하지만 ‘집에서 돌아가시면 국과수가 출동하고 경찰서에 불려가서 조서를 써야하잖아요?’라고 되묻는다. 집에서 모시고 싶지만 사후에 닥칠 일이 부담스럽고 두렵다는 뜻이다. 헌법 전문에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이라는 문구가 있다. 국가는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는 의무를 나타낸 것이다. 헌법 속의 문장을 책장 밖으로 끄집어내어 집에서 죽음을 맞고 싶은 국민에게 심리적 부담과 두려움의 장벽을 걷어내야 한다. 1차적으로 일본처럼 방문의료 활성화와 사망진단서 발급이 필요하다. 더하여 죽음을 앞둔 가정으로 사회복지사를 파견하여 유언장 작성 등 죽음 준비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안심을 시켜야한다. ‘살던 집에서 안전하고 존엄한 죽음’은 복지이다. 이것이 인권이다. 누구에게나 죽음이 바로 앞에 있다.

 

노인인권 존엄한 죽음이 인권이다

 

 

글 | 박노숙(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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