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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 이야기 [2025.09~10] 죽음을 거부하는 인류의 목소리 세계 사형 폐지의 날

 

매년 10월 10일은 '세계 사형 폐지의 날'이다. 2003년 세계사형폐지연합(World Coalition Against the Death Penalty)이 제정한 이 날은, 사형제도의 비인도성과 생명권 침해 문제를 국제사회가 함께 되새기는 날이다. 유럽에서는 2007년, 유럽 평의회 차원에서 10월 10일을 유럽 사형 반대의 날로 선포하기도 했으며 1989년 채택된 사형제 폐지에 관한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 제2선택의정서는 사형 폐지를 향한 국제사회의 분명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생명권의 불가침성과 정의의 오류 가능성, 그리고 범죄 예방 효과에 대한 근거 부족이 주요 논거로 제시되며,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이 사형제를 폐지하거나 집행을 중단하고 있다.

 

world day against the death penalty

 

2024년 현재,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한 국가는 112개국에 이른다. 법률상 존치하고 있으나 10년 이상 집행하지 않은 ‘사실상 폐지국’까지 포함하면 140개 국 이상이 사형제를 폐지한 셈이다. 반면, 여전히 사형을 집행하고 있는 국가는 전체 유엔 회원국 중 20% 미만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폐지의 흐름은 더욱 두드러진다. 시에라리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짐바브웨, 파푸아뉴기니 등은 2021년 이후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하였고, 말레이시아는 2023년 필수적 사형 조항을 폐지하며 판사에게 재량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였다. 카자흐스탄과 잠비아 역시 법률 개정을 통해 폐지를 선언하였다. 유엔 총회는 2007년 이후 2년마다 사형 집행 모라토리엄 권고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으며, 해당 결의안에 찬성하는 국가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24년 12월 17일, 유엔 총회에서는 사형 집행 모라토리엄에 관한 열 번째 결의안이 찬성 130표로 통과되었다. 이는 2022년의 125표보다 5표 늘어난 역대 최대 찬성표이다. 반대표는 32표로 감소했으며,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은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지는 등 사형 폐지를 향한 국제적 공감대가 더욱 확장되고 있다. 한국은 결의가 처음 제안되었을 때부터 계속 찬성표를 던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국가 간 형벌 제도의 차이를 넘어, 사형제 폐지가 보편적 인권 기준의 정립이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사형제를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며 굴욕적인 처벌’로 규정하며, 자유권규약 제6조에 따라 사형 폐지를 향한 단계적 진전을 권고해 왔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또한 모든 회원국에 사형제 폐지를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회원국 가입 조건으로 사형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으며, 유럽인권재판소는 생명권을 유럽 기본권 체계의 핵심으로 간주하고 있다.

 

한국은 1997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이후 25년이 넘도록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을 ‘사실상 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법률상 사형제는 여전히 존치되고 있으며, 법원은 특정 강력범죄 사건에서 사형을 선고하고 있다. 2024년 현재 약 59명의 사형수가 교정시설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사형제를 합헌으로 판단하였다. 특히 2010년 결정에서는 재판관 5명이 합헌, 4명이 위헌 의견을 내면서, 합헌 판단이 유지되기는 했으나 위헌 의견이 근소한 차이로 따라붙은 결과가 되었다. 2024년에는 다시 사형제 위헌 여부를 둘러싼 헌재 심판이 이루어졌고, 이전보다 더욱 다양한 법적·윤리적 논거들이 제시되며 공론의 장이 형성되었다. 이와 더불어 사형 폐지 관련 법안이 반복적으로 발의되고 있으나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한국에 대해 사형제 폐지를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한국의 자유권규약 이행 상황을 정기 심의하면서 사형제를 법률상으로도 폐지할 것을 권고해 왔으며, 유엔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에서도 사형 폐지 권고가 반복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2005년, 2017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사형제 폐지를 권고한 바 있으며, 헌법상 생명권 보장과 형벌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형제 존치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형벌의 선택 문제를 넘어선다. 오판의 가능성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사법 체계에서,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은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형제가 범죄 억제 효과를 가진다는 과학적 근거는 아직도 불충분하며, 잔혹한 범죄 앞에서 형벌 감정을 자극하는 여론은 제도의 존속 여부를 결정짓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신, 범죄 피해자 보호와 재범 방지, 사회적 안전망의 복원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물음에 집중해야 한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이미 몽골, 동티모르, 네팔 등과 같은 국가들은 사형제를 폐지했다.

 

죽음을 거부하는 인류의 목소리 세계 사형 폐지의 날한국은 이미 25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음으로써 국제사회에 사형폐지로의 신호를 보내왔다. 그러나 지금은 모호한 중간 지대를 넘어서야 할 시점이다. 사형제 완전 폐지를 위한 입법 논의와 함께, 자유권규약 제2선택의정서 가입 검토, 종신형 등 대체 형벌에 대한 사회적 논의, 사법체계 전반의 신뢰 제고를 위한 방안 등이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사형제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이라는 인권의 핵심 가치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세계 사형 폐지의 날은 단지 기념의 날이 아니라, 이러한 물음에 대해 우리 사회가 성찰하고 응답할 수 있는 계기여야 한다. 지금은 숙고의 시간이 아니라, 전환의 시간이다.

 

 

글 | 백가윤(국가인권위원회 국제인권과)
본지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우리 위원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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