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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읽는 인권 [2025.09~10] 『가난의 문법』 노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어떠한가

 

『가난의 문법』 노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어떠한가

 

"노인들은 전통사회에서처럼 사회적인 지식의 창고 역할을 할 수 없다. 책과 인터넷이 그들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게다가 의무교육이 정착하였고, 노인은 그들이 행하던 마을의 교사 자리에서도 밀려났다. 더군다나 도시에서는 노인이 사회적인 지위를 부여받았던 마을이 사라졌다. 남아 있다 할지라도, 지금의 마을은 여러 세대가 어우러지는 공간이라기보다 비슷한 나이나 비슷한 경제적 수준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장소가 됐다. 그래서 마을은 더이상 노인과 청년과 아이가 서로 지식을 공유하고, 지혜를 나누던 공간이 아니다. 기술환경은 노인의 지식을 구닥다리 지식으로 치부하게 하였고, 노인들의 쓸모가 사라졌다.” [가난의 문법] 52~53쪽

 

[가난의 문법](소준철 지음, 2020년, 푸른숲)은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이 주인공이다. 거리에서 종종 마주치는 이들이지만 그들이 대체 무엇으로 생을 이어가는지, 어떤 경로로 그 일을 하게 됐는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다. 빈곤 연구자의 건조한 글과 그가 만난 노인들의 이야기 조각을 이어붙인 가상인물, 45년생 윤영자씨의 억장 무너지는 이야기가 교차되는데 책장 넘기는 도중에 멈칫했다. 노인의 쓸모라니. 저자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 재인용했다지만 노인의 쓸모라니.

 

옛날 이야기에는 오랜 세월 성숙한 시간이 쌓이면서 현명하고, 통찰력 있고, 경험 자산이 많은 노인들이 나온다.
그게 '어른'이겠지. 그러나 우리가 '어른 김장하'에 열광하는 것은 어른이 희귀해진 현실을 반증한다. 좋은 어른에 대한 기억은 꼰대 혹은 틀딱으로 비하하는 대상들 탓에 흐릿해진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고, 삶 자체가 모범이 되는 어른이 분명 있거늘 한 세대를 뭉뚱그려 냉소하는 건 아닐까?

 

게다가 좋은 어른이 아니라면 노인은 쓸모가 없나? 사람을 쓸모로만 판단하는 사회를 우리가 원한 건 아니었겠지만, 이런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노인은 소외된다. 노인에 대한 사회적 기대 자체가 예전과 다르다. 현자의 지혜를 AI 검색에 의존하는 시대에 젊은 것들도 어려운데 노인이라고 다를까. 나이드는 인간으로서 내게 노인의 삶은 멀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시작됐다. 그런데 이 사회 노인은 많이 서글프다. 나의 쓸모, 우리의 쓸모를 상상하니 답답해진다. 쓸모란 무엇인가. 여기에다 한국 노인이 특히 괴로운 것도 맞다. 빈곤율이 압도적이다.

 

『가난의 문법』 노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어떠한가

 

“2017년 기준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전체 인구 중 빈곤 위험에 처한 인구의 비율)은 17.4%로 미국 17.8% 다음으로 높다. 게다가 65세 이상 노인만을 살펴볼 때,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43.8%였다.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여기에 65~69세 고용률에서 한국(45.5%)은 아이슬란드(52.3%)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고, 70~74세 고용률은 33%로 OECD 가입 국가 중에 가장 높았다. 즉 한국의 노인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빈곤하다는 뜻이며, 이는 현재 노인들에게 노후 생활의 경제적 기반이 없다는 뜻이다.” [가난의 문법] 45쪽

 

개발도상국도 아닌 선진국인데, 일본보다 GDP가 높다는데, 노인의 삶은 비참하다. 넝마주이라는 직업이 사라진 자리에 '재활용품 수거 노인'이 등장했다. 폐지를 수백 kg씩 쌓고 날라도 최저임금에도 턱없이 못미치는 돈을 번다. 한국사회에서 '낡고' '오래된' 산업과 그 종사자들에 대한 태도는 늘 냉혹하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지만 현실은 훨씬 비정하다.

 

『가난의 문법』 노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어떠한가

 

한국 노인들의 고통은 자살률 숫자에서도 드러난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10만 명 당 자살률은 40.6명으로, 전체 연령대 자살률(27.3명)의 약 1.5배에 달한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의 취재기록인 [황혼길 서러워라](제정임 엮음, 오월의 봄, 2013년)에서는 특히 농촌 노인들의 자살률이 기이하게 높은 현상까지 추적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2010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 당 81.8명. 충남의 경우 노인자살률이 10만 명당 123.2명에 달했다. 숫자는 언제나 건조하지만, 이쯤 되면 숨이 턱 막힌다. 이건 괴담 수준 아닌가? 한국의 노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가난의 문법]이 빈곤을 연구하다가 끝내 노인에게 집중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노인들의 괴로움은 경제적 빈곤에서 비롯된다. 농촌 자살률이 유독 높은 건 다 이유가 있다. 돈 벌 일도, 할 일도 없는 오랜 세월을 견디는 고통을 상상해보면 더 우울해진다. 도시의 노인들은 조금 나을까? 그들은 어떻게든 일을 한다. 그런데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들을 마주할 때처럼 막상 보면 불편하다.

 

일하는 노인들은 ‘일할 수 있어 다행’ ‘이대로도 괜찮다’고 말했다. 처우에 불만은 있지만, 개선을 요구했다가 아예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며 그냥 참는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경비원 노인들이 마음 놓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은 있어야 하고 택배원 할아버지가 받는 돈이 최저임금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태껏 쌓아온 경력이 휴지가 된 채, 경비원, 택배원 등으로 일하는 노인들을 보는 것은 서글펐다. [황혼길 서러워라], 118-119쪽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1980년대 청년 실업률 때문에 노인 조기 은퇴를 촉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청년들의 일자리로 이어지지 않았다. 청년뿐 아니라 전반적 고용률 확대를 목적으로 한다면 정년 단축보다 노동시간 단축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만일 노인 세대가 일찍 은퇴한다면 청년들이 다 부양할 건가. 그보다는 각 세대가 독립적으로 잘살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황혼길 서러워라], 245쪽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에 들어간 일본 등 해외 사례는 노인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참고가 된다. 치매 노인 지원부터 우울증 예방, 구강기능 향상까지 챙기는 일본의 지역포괄지원센터는 종합 상담이나 생활 지원까지 두루 챙긴다. 스웨덴은 여러 노인들이 한곳에서 생활하는 ‘그룹홈’ 등이 1970년대부터 발달했다. 여기에 모든 노인에게 기초 소득을 보장하는 연금시스템이 노인들을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

 

장수 트렌드 덕에 잘하면 인생의 절반, 3분의 1을 '노인'으로 살아야 한다. 늙어가는 것을 여유 있게 받아들이고 싶지만 막연한 불안은 자칫 공포가 될 지경이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욕망부터, 경제적, 사회적으로 버림받을까 겁내는 마음까지 모두 우리 몫. 일단 온갖 숫자가 전해주는 참혹한 현재 모습은 확인했다면, 마땅히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의욕과 열정, 힘이 남아 있는 노인들을 공동체에서 품지 않으면, 분노만 쌓여 아스팔트 우파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한 적 있다. 한 세대 혹은 이어지는 세대의 절망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회는 비틀거릴 수 밖에 없다. 노인의 빈곤도, 사회적 소외도 정색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노년의 삶을 기초소득으로 공공이 뒷받침하는 구체적 방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동시에 노인의 삶에 대해 우리 스스로 시선을 바꾸면 좋겠다.

 

『가난의 문법』 노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어떠한가

 

작년에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와 원작 [레슨 인 케미스트리](2023년)의 작가 보니 가머스는 65세였던 2022년에 데뷔작을 썼다. 98차례나 출판을 거절당했던 책은 뉴욕타임스 74주 베스트셀러 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에서 1000만 부가 팔렸다. 논픽션만 쓰던 생태학자 델리아 오언스가 첫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 (2018)을 내놓은 것은 69세 때 일이다. 호메로스가 서사시를 노래한 것은 나이가 들어 시력을 잃은 후였고, 아이스킬로스가 최고의 비극을 쓴 것도 예순을 넘기고 나서였으며, 소포클레스는 아흔이 다돼서 최고의 작품을 썼다. 노익장이란 말이 왜 나왔겠나.

 

 

글 | 정혜승(북살롱 오티움 공동대표)
본지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우리 위원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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