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2 > 식탁인권학 > 트러플은 누구의 손을 더럽히는가

식탁인권학 [2026.1~2] 트러플은 누구의 손을 더럽히는가

 

트러플은 더 이상 사치스러운 식재료가 아니라, 일상 속 미식의 언어가 되었다. 소량만으로 음식의 향미를 극적으로 바꾸는 이 재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도달하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트러플이 생산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노동권과 인권 침해 문제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또한, 식탁이 인권의 문제와 만나는 지점에서 오늘날의 식문화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짚어보고자 한다.

 

트러플은 누구의 손을 더럽히는가

 

행복한 식탁 이면의 어두움

 

‘서양송로’ 또는 ‘양송로’로 불리는 트러플은 푸아그라, 캐비어와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꼽힌다. 트러플은 ‘땅속의 다이아몬드’라는 별명을 얻으며 오랫동안 미식의 상징으로 소비되어 왔다. 트러플은 유럽에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특정 지역의 전유물은 아니다. 영국과 스페인, 크로아티아와 터키, 시리아를 비롯해 최근에는 중국, 미국, 호주까지 주요 생산지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서도 트러플은 더 이상 낯선 재료가 아니다. 트러플을 전면에 내세운 레스토랑과 가공식품이 늘어나며, ‘트러플 향’은 하나의 유행처럼 소비되고 있다. 국내 토양에서의 트러플 재배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 역시 이어지고 있다.

 

트러플 시장이 화려하게 성장하는 동안, 그 생산 과정에 내재한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 특정 산업의 소비가 늘고 생산량 확대가 요구될수록 비용 절감을 통한 경쟁이 시작된다. 이 압박은 정책적 대책이 아닌 경제적·사회적으로 소외된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의 후퇴로 이어지기 쉽다. 기계로 대체될 수 없는 트러플 채취법의 특성상 노동력은 더 많이 동원되고, 노동자들은 불어나는 시장의 요구에 맞춰 공정한 계약과 보호 장치 없이 노동 현장으로 내몰린다.

 

 

사냥당하는 인권

 

이 구조는 분쟁과 빈곤이 겹친 지역에서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오늘날 시리아의 트러플 채취 현장은 바로 이 구조가 가장 잔인하게 작동하는 공간이다. 시리아인들에게 트러플을 채취하는 일은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다. 계속되는 분쟁과 무너져있는 사회 안전망으로 인해 90%의 인구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아가며 경제적인 궁핍에 놓여있다. 시리아 트러플의 대부분은 사막 지대에서 채취하게 되는데, 이곳은 내전 중 매설된 지뢰가 무성한 곳이다. 시리아 정부는 지뢰 매설 위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노동자들에게 수익의 상당 부분을 요구한다. 또한, 무장 강도로부터의 보호를 위한 명분으로 동행을 강요하며 트러플 채취로 발생하는 수입의 일부를 탈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전의 고통과 심각한 경제 침체 상황에 놓인 시리아인들은 생명의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도 고수익이 보장되는 트러플 채취를 멈출 수 없다.

 

트러플 산업을 둘러싼 노동 인권 문제는 유럽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탈리아는 세계적인 트러플 생산 시장의 중심지로,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농장에서 대규모로 재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동시에 농업 분야의 이주노동자 착취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 온 나라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는 ‘카포랄라토(caporalato)’라 불리는 불법 노동 중개 시스템이 오랫동안 농업 현장을 지배해 왔다. 중개인은 이주노동자들을 농장에 공급하며 법적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임금을 지급한다. 노동 조건을 통제하고, 숙소와 이동 비용을 명목으로 임금의 상당 부분을 다시 착취하기까지 한다. 일부 노동자들은 화장실, 상수도는 물론 전기조차 없는 열약한 숙소에서 생활한다. 계절노동에 의존하는 농업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한 철 쓰는 부품으로 취급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지워진다.

 

 

식탁에 놓인 음식과 책임

 

이처럼 서로 다른 지역의 트러플 채집 노동은 공통된 문제를 갖는다. 불안정한 계약, 위험한 환경이 노동자들의 인권을 더럽힌다. 트러플이 고급스러운 접시에 오르는 순간, 노동자의 이름은 지워진다. 메뉴판에는 트러플의 산지와 품종, 향의 노트가 적히지만, 노동의 조건은 기록되지 않는다. 우리가 맛보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외면하는가. 트러플의 향을 즐기는 행위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향이 소비자에게 닿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은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 무관심은 우리를 미식가가 아니라 방관자가 되게 한다. 안전한 채집, 공정한 보상, 투명한 유통은 미식의 적이 아니라 전제가 되어야 한다. 국가와 기업의 역할도 분명하다. 불법·위험 채집을 방치하지 않는 규제, 중개 구조의 투명화, 노동자 보호를 조건으로 한 시장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루에 여러 번 식탁에 둘러앉아 희로애락을 나누기도 하고 쉼을 얻기도 한다. 그만큼 식탁은 아주 쉽게, 일상적으로 인권 침해가 묵인되는 공간으로 변모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선택할 때, 그 이면의 문제까지 함께 선택하게 된다는 사실을 더는 외면할 수 없다.

 

 

글_ 편집실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