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는 시간 [2026.1~2] 운명은 누구의 손에 달려있는가 <마이너리티 리포트>
20세기를 살며 21세기를 예견한 SF작가 필립 K. 딕.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딥 페이크 등 미래의 기술을 현실의 혼란과 인간의 불완전함을 비추는 도구로 활용한 그의 소설은 여러편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사랑받았다.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이 대표적이다. 필립 K. 딕이 1956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하고 톰 크루즈가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 더 유명하다.

재밌는 것은 영화가 개봉한 2002년 당시만 해도 흥미로운 공상 혹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로 다가왔던 이야기가 이제는 다분히 실제적으로 체감된다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범죄 예방 시스템은 최근 널리 활용되고 있는 예측형 AI(과거와 현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는 인공지능)의 고위험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을 예비 살인범으로 체포한다”는 영화 속 대사는 이제 흥미롭기보다 섬뜩하다.

영화의 배경은 2054년의 미국 워싱턴 D.C. 범죄를 사전에 예측해 범죄자를 체포하는 최첨단 치안 시스템 ‘프리 크라임’이 워싱턴에서 시행 중이다. 미국의 살인 사건은 급증세였지만 범죄 예방 시스템의 도입으로 한 달 만에 살인율이 90% 감소했다. 6년간 살인사건은 0건. 범죄 예방 관리국은 ‘도시에서 살인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자유롭고 안전한 삶을 누리세요’라고 홍보하며 범죄 예방 시스템의 전국 확대 시행을 꾀하는 중이다. 범죄 예방국의 체포팀 리더인 존 앤더튼(톰 크루즈)은 범죄 예방 시스템의 필요성과 무결성을 절대적으로 믿는 인물이다. 그는 프리 크라임 시스템의 위법성 및 불완전성을 우려하는 법무부 수사관 대니 위트워(콜린 파렐)에게 이렇게 말한다. “예언자들의 예언은 절대 틀리지 않아요. 시스템에는 결함이 없어요.” 대니 위트워는 답한다.
“결함은 인간에게 있죠, 언제나.”
‘프리 크라임’의 작동 방식은 다음과 같다. 3명의 예언자(아가사, 아서, 대실)가 있다. 이들은 미래를 본다. 핏빛의 악몽을 꾼다. 살인 사건의 발생 시간과 장소,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름을 예지한다. 범죄 예방국은 예언을 토대로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살인을 저지를 예정인 사람들을 체포한다. 법을 어기지 않았지만 법을 어길 예정인 사람들. 발생하지도 않은 일에 책임을 묻는 게 말이 되냐 싶겠지만 사회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프리 크라임 시스템은 용인되고 있다. 원작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범죄 예방국)는 그들에게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지. 반면 그들은 영원히 무죄를 주장할 걸세. 그리고 어떤 면에서 보면 그들은 실제로 무고한 셈이지.” 무고한 이들이 떠받치고 있는 안전과 질서라고나 할까.

한편 영화의 제목이 ‘마이너리티 리포트’인 이유는 세 명의 예지가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소수 의견 즉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존재한다는 뜻인데, “오류의 여지를 인정하면 효율성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범죄 예방국은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 시스템은 완벽해야 하기 때문에. 대니 위트워의 말이 맞았다. 시스템의 완벽성을 위해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폐기하기로 결정한 건, 다시 말해 시스템을 조작한 건 인간이다. 결함은 인간에게 있다.

시스템에 대한 존 앤더튼의 굳건한 신념은 뜻밖의 살인 예언을 통해 깨지고 만다. 예언자들은 존 앤더튼이 리오 크로우라는 인물을 살인한다고 예지한다. 존은 리오 크로우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살인 예정자들을 일사불란하게 체포하던 입장에서 체포될 입장에 놓인 존은 시스템의 오류를 증명해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가 된 듯, 비행 슈트를 입고 날아다니는 수십명의 요원들을 맨몸으로 상대하며 뛰고 구르고 날던 존은 급기야 자신의 얼굴까지 바꿔 가며 음모의 실체에 다가간다. 영화가 그리는 2054년은 안구를 교체하지 않고는 완벽히 신분을 숨길 수 없는 투명한 감시 사회이기도 하다. 상점에 들어서면 홍채 인식을 통한 맞춤형 광고가 자동으로 생성되는 시대. 가만히 있어도 위치 정보가 모두 털리는 시대. 개인 정보가 더 이상 개인의 정보가 아닌 시대. 그리하여 존은 불법 시술을 통해 안구를 갈아 끼운다.

“대개는 3명이 똑같이 미래를 보지만,
가끔 한 명이 다르게 보기도 하죠.”
촘촘한 감시망을 뚫고 예언대로 리오 크로우를 찾아낸 존은 눈앞의 실체를 확인하고는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예언은 틀리지 않는 걸까? 운명을 알아도 운명을 바꿀 수는 없는 걸까? 인간의 자유의지마저 운명에 종속되어 있는 걸까? 존에게 시스템의 결함을 알리고 싶어 한 예언자 아가사는 말한다. “당신은 선택할 수 있어요.” 그렇다. 인간은 자유의지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싶다). AI는 가지지 못한 자유의지.

영화에서 미래를 예견하는 건 ‘예언자’로 불리는 사람들이지만, 오늘날 영화 속 예언자의 역할은 AI가 대체하고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이야기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된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선 과거의 범죄 데이터를 기반으로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은 구역에 순찰 배치를 강화하고, 미래의 위험도를 예측해 사전 대응력을 키우는 방식의 예측 치안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 예측 치안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선 대규모 감시와 대규모 정보 수집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과연 데이터와 알고리즘은 정확하고 공정하기만 할까? 캐시 오닐의 책 <대량살상 수학무기>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알고리즘 모형은)수학에 깊이 뿌리내린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데이터로 만들어진 모형은 행실이 안 좋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전제한다는 것이다. 알고리즘과 데이터는 편향될 수 있다. 현실의 차별을 증폭시킬 수 있다. 시스템에는 ‘마음’이 없어도 시스템을 만든 인간에겐 ‘마음’이 있으므로.
덧. 영화와 현실의 상관관계에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영화가 현실을 모방한 건지, 현실이 영화를 모방한 건지. 아무튼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세계는 부디 영화로만 남아주길.
글_ 이주현 ㅣ 전 씨네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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