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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읽는 인권 [2026.5~6] 그 누구에게도 차별할 권리나 자유가 없음을

 

“영포티가 영포티했네”
어쩌다 영포티가 중년 남성을 조롱하는 단어가 됐는지 어리둥절하다. 10여 년 전에는 트렌드에 민감한 40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젊어 보이고 싶어 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중년 남성들을 지적하는 식으로 밈이 진화할 수는 있다. 하지만 청년 남성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젊은 여성 직원에게 추근대는 남자 상사, 권위적 꼰대, 위선적 군상들이 모두 영포티로 싸잡아 비난의 대상이 됐다. 여기에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을 지지하거나, 인권이나 페미니즘을 말하면, 혹은 단순히 자신들 입장에서 보기 싫은 나이 든 남성들을 모두 영포티라고 놀리기 시작했다고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의 저자 박정훈은 지적한다.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박정훈 작가는 21대 대선이 끝난 2025년 하반기부터 영포티라는 말이 멸칭으로 쓰였다고 분석한다. 2030 남성과 4050 남성의 정치 성향 대비가 뚜렷해진 선거였다. 민주당 지지층의 핵심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기득권을 갖고 있는 4050 남성들을 묶어서 비난하는 것은 수순이었다.

 

농담처럼 보이지만, 그저 밈으로 치부하기에는 멸칭을 이용한 차별은 생각보다 심각한 현상으로 이어진다. 영포티가 영포티 했다는 식으로 넘어가면 안 그래도 어려운 대화나 토론이 아예 막혀버린다.

 

“단순히 위선적이거나, 갑질이나 성희롱하는 남성에 대한 비판으로 이 말을 쓴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진보적인 가치나 이념을 이야기하는 순간 곧바로 “영포티”라는 조롱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충분히 고민하고 토론해야 하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의제를 영포티라는 말로 쉽게 튕겨낼 수 있는 분위기라면 보수화나 극우화는 더 가속화될 수 밖에 없다.” -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78쪽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계엄을 정당화하려는 이들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시하며 중국인들이 부정선거에 개입했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저자 홍성수는 “짱X, 북괴, 빨갱이들, 대한민국에서 빨리 꺼져라” 외치는 대학생 시위와 함께, “중국 유학생은 100퍼센트 잠재적 간첩”, “중국인이 몰려온다! 집회 참여! 범죄 증가! 혜택은 싹쓸이!”라는 펼침막이 서울 시내 곳곳에 내걸리는 상황을 주목했다. 특정 세대를 비롯해 직업, 상황, 국적을 지칭하며 공격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늘 비극의 시작점이었다. 시대적, 사회적 위기가 닥쳤을 때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기보다 엉뚱한 희생양을 찾아 책임을 전가하는 혐오와 차별이 더 쉬운 탓이다.

 

“유럽이 대기근과 흑사병의 위기에 빠졌을 때 중세인들은 마녀를 지목하여 마녀재판과 화형식을 거행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을 때는 유대인이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되었고 코로나 19가 확산되었을 때는 아시아인과 중국인이 표적이 되었다. 유럽과 미국이 만성적인 위기에 빠지자 이주노동자와 타민족, 인종 구성원들이 공격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흑사병, 중세의 위기, 코로나19, 현대의 만성적인 사회경제적 위기 중 그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18쪽

 

차별을 마치 그래도 되는 권리나 자유처럼 용인하면 혐오의 불길이 급속도로 번질 뿐이다. 아이 동반 가족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키즈존 음식점이 처음에 등장했을 때, 논란이 될지언정 찬반 여론이 존재하는 것처럼 지켜보는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동남아시아인의 출입을 막는 클럽, 코로나19 때 중국인 출입을 금지한 음식점, 노인 회원을 받지 않거나 ‘아줌마 출입 금지’를 내건 헬스장이 등장했고 부정선거 음모론 이후 ‘노차이니즈존’이라고 내건 음식점까지 나타났다. 맘충, 영포티, 틀딱이라는 혐오와 차별의 표현을 용인하고, 언제든 편하게 돌을 던져도 되는 대상인 것처럼 내버려두면 안된다. 우리 중 상당수는 엄마가 되고, 우리 모두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되는 만큼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조롱당하고 위협을 겪어보면 잘못을 깨달을까? 순진한 생각이다. 멸칭을 장난처럼 쓰는 이들이 나이가 들면 다른 젠더를, 다음 세대를 같은 방식으로 조롱하지 않겠나.

 

내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든 그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자유를 파괴하는 차별을 더 이상 봐주면 안 된다.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라.

 

 

글_ 정혜승ㅣ북살롱 오티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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