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는 시간 [2026.5~6] <주토피아>가 보여주는 차별의 언어와 포용의 언어
차별은 당연한 분류에서 시작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에서 주디 홉스와 닉 와일드는 토끼와 여우,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피식자와 포식자라는 구도 안에서 관계를 맺는다. 분류는 기준에 따라 같은 것과 다른 것을 나누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분류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고,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편견을 확산하는 프레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동물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닌 것은 맞지만 그것이 공존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없고 가능성을 가두는 잣대 또한 될 수 없다고 <주토피아>는 말한다. 토끼 주디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은 이렇다. “주토피아에선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주토피아>는 지상의 동물들이 다양한 생태계를 이뤄 함께 사는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주토피아 시티의 시장은 사자, 부시장은 양이며, 경찰서장은 코뿔소, 지하세계의 ‘대부’는 북극뒤쥐다. 지상의 다양한 포유류들이 공존하는 현대적 도시도 한때는 “사악한 포식자”와 “온순한 사냥감” 두 부류로 나뉘었던 때가 있었다(이 말은 토끼들의 학예회 연극에서 등장하는데, 만약 포식자 입장에서 설명했다면 ‘세상은 강인한 포식자와 나약한 피식자로 나뉘어 있었다’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사이 동물들은 진화했고 야만의 시대는 지나갔다. 하지만 ‘유리천장’은 여전히 존재해서 부모마저 주디의 꿈을 쉽게 응원하지 못한다.

주디의 꿈은 경찰이 되는 것이다. “전 커서 경찰이 되겠어요.” 토끼 친구들을 괴롭히던 여우 기디온 그레이는 주디를 비웃으며 말한다. “주제 파악 못 하는 멍청한 토끼.” 홍당무 농사를 짓고 있는 주디의 부모도 걱정을 담아 말한다. “지금껏 토끼 경찰은 없었어.” 주디는 명랑하게 대답한다.
“그럼 내가 최초가 되겠네”

5년 뒤, 주디는 경찰학교에 입학한다. 동료들은 대부분 코뿔소, 코끼리, 기린, 얼룩말 등 대형 동물들이다. 체급 차이가 상당하다. 경찰학교 동료들도 주디를 무시하기 일쑤다. 하지만 주디는 빼어난 속도와 민첩성, 남다른 노력과 간절함으로 경찰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다. 주토피아 최초의 토끼 경찰이 된 것이다.
주토피아 경찰국 제1관할서에 발령받은 출근 첫날, 주디는 이런 얘길 듣는다. “진짜 토끼를 채용했어. 생각했던 것보다 귀엽네.” 포유류 연쇄 실종 사건에서 배제된 주디는 교통 위반 딱지를 떼다 여우 닉을 만난다. 사기 행각을 벌이던 닉을 체포하려는 주디에게 닉은 세상 물정을 알려준답시고 말한다. “많은 동물들이 꿈을 이루려고 주토피아에 와. 그렇지만 성공하지 못하지. 왜? 타고난 건 못 바꾸니까. 여우는 교활하고 토끼는 멍청해.” 주디는 자신은 멍청한 토끼가 아니라고 반박하지만 ‘교활한 여우’라는 말까지 정정하려 들진 않는다. 주디 역시 부모로부터 여우에 대한 편견을 알게 모르게 학습해왔다. “여우는 천성이 교활하다”는 편견.

멍청한 토끼와 교활한 여우, 사악한 포식자와 온순한 피식자처럼 대상을 특정한 프레임으로 분류하는 순간 사회적 편견이 생긴다. ‘젊은 애들은 멍청해’ ‘나이 든 사람들은 말이 안 통해’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00는 원래 그런 존재야’라는 말은 차별의 언어다. 주디는 주변 동물들에게 ‘토끼는 경찰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해서 듣는다. 닉 또한 마찬가지다. 닉은 ‘여우는 교활하다’는 언어적 편견에 갇혀 자랐고, 그 편견에 자신을 맞춰 살았다.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혐오의 표현만큼 일상의 규정 언어도 편견과 차별과 배제를 낳는다. <주토피아>는 포식자와 피식자라는 단순한 분류가 특정 집단을 손쉽게 범주화하고 고정관념을 공고히 해버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언어는 사회적 편견을 확산하는 강력한 도구다.
투닥거리면서도 조금씩 손발을 맞춰 함께 포유류 연쇄 실종 사건을 수사하던 주디와 닉은 포식자의 야수성이라는 말 앞에서 관계의 위기를 맞는다. 실종된 동물들은 대부분 포식자였고, 이들은 위험한 공격성을 보여 격리되었다. 포식자들의 야수화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주디는 ‘포식자의 DNA와 생물학적 특성 때문인 것 같다’고 답한다. 닉은 실망한다. 그간 사회적 편견의 말에 저항해온 주디가 그 말을 똑같이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너도 내가 무서워? 내가 널 공격할까봐?” 사건의 배후엔 부시장 벨웨더가 있었다. 덩치 큰 포식자들에게 무시당하며 살아온 ‘양’ 벨웨더는 그들을 야수화시켜 사회에서 내쫓으려는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다. ‘포식자’ ‘야수성’ ‘본성’과 같은 단어들이 결합하면 공포를 자극하고 편견을 공고히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피식자도 포식자가 될 수 있고, 포식자도 피식자가 될 수 있다. 세대, 계급, 집단을 나누는 언어는 그들을 특정한 부류로 낙인찍기 쉽다. 그 낙인은 또한 사회적 시스템으로 빠르게 굳어진다. 특정 세대와 집단을 밖으로 밀어내고 조롱하는 언어는 폭력적이다. 일례로 ‘영포티’ ‘맘충’ 같은 말들은 이러한 언어의 폭력성을 잘 보여준다.
9년 만의 후속작 <주토피아2>에서도 전편의 큰 주제는 견지된다. 포유류가 아닌 파충류의 이야기를 서사에 끌어와 소수집단에 대한 편견, 혐오, 차별의 작동 원리를 살핀다. 주토피아의 주류는 포유류다. 그런 주토피아에 뱀 게리가 나타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게리는 주류 동물인 포유류에 의해 삶의 터전은 물론 자신들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당한 캐릭터다. 주토피아를 실제로 건설한 것은 파충류였지만 고양이 링슬리 가문이 그 공을 빼앗았다. 역사는 왜곡됐고, 파충류에 대한 혐오와 편견은 사회 전반에 내면화됐다. 주류와 비주류, 다수와 소수, 주류 안의 비주류 문제를 다루는 2편 역시 1편과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로 완벽히 치환 가능한 우화적 성격을 띤다.
과한 열정과 영웅 심리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주디, 사회 정의도 좋지만 그보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닉. 두 동물의 관계가 위기를 맞았다가 해소되는 지점에서 인상적인 대사 하나가 등장한다. 닉은 평소의 냉소적 태도를 덜어내고 말한다. “달라도 상관없어.” 이 세계에는 생명의 수만큼의 개성이 존재하고, 생명의 수만큼의 다양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러니 달라도 상관없다. 아니, 다른 게 당연한 거다. 이 이치를 깨닫는다면 우리의 세계는 확장될 것이다.
글_ 이주현ㅣ전 씨네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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