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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 할머니들에서 국제사법재판소까지

지구인 이야기 [2026.9~10] 기후피해는 인권피해다
― 스위스 할머니들에서 국제사법재판소까지

 

기후피해는 인권피해다

유럽인권협약을 담당하는 유럽 평의회 국제법원인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외부 전경

2024년 4월 9일 유럽인권재판소 대법정에서 승소한 이들은 평균 나이 일흔이 넘은 스위스 여성들이었다. ‘기후 보호를 위한 여성 노인회(KlimaSeniorinnen)’라는 단체에 모인 이들의 주장은 단순했다. 폭염은 고령 여성에게 특히 치명적인데, 스위스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대책이 너무 허술해 자신들의 건강과 삶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재판소는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스위스가 기후변화의 악영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고, 이는 유럽인권협약 제8조가 보장하는 ‘사생활과 가정생활을 존중받을 권리’의 침해라고 판단했다.

낯설게 들릴 것이다. 폭염 피해가 사생활 보호권 침해라니. 유럽인권협약에는 환경권 조항이 없어, 재판소는 그동안 환경 피해 문제를 사생활권의 영역에서 다뤄왔다. 온실가스는 국경을 넘나드는데 어떻게 한 나라 정부의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감축목표를 몇 퍼센트로 정할지 같은 정책 판단을 법원이 심사할 수 있는가. 10년 전만 해도 법률가 다수가 회의적이던 질문들이다. 그런데 지난 10년 사이 세계 각국의 법정이 여기에 하나씩 답을 내놓았다. 그 방향은 놀랍도록 일관된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정책의 실패이기 이전에 인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왜 ‘인권’의 문제인가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닥치지만 그 피해는 균등하게 나뉘지 않는다. 같은 폭염이라도 에어컨 없는 쪽방과 옥탑방에 사는 사람, 그늘 없는 건설 현장과 한낮의 배달길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훨씬 가혹하다.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태평양 도서국들은 온실가스 배출에 거의 기여한 바가 없다. 위험이 특정 집단에게 구조적으로, 반복적으로 집중될 때 그것은 기본권의 문제가 된다.

인권의 언어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후정책을 경제성이나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만 다루면 언제나 다른 시급한 과제에 우선순위를 빼앗긴다. 반면 이를 국가의 인권 보호 의무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재량이 넓어도 넘어서는 안 되는 최소선이 생기고, 그 선을 지켰는지를 시민이 법정에서 물을 수 있게 된다.

기후피해는 인권피해다

유럽인권재판소(ECHR) 대법정 / 출처: https://www.echr.coe.int

네덜란드에서 독일과 스위스, 국제사법재판소까지.
세계의 법정은 기후위기를 환경정책이 아니라 ‘권리의 문제’로 바꾸어 놓고 있다.

10년 사이에 쌓인 판례들

출발점은 2015년 네덜란드의 우르헨다(Urgenda) 사건이었다. 네덜란드 법원은 정부의 미흡한 감축정책이 유럽인권협약상 생명권과 사생활권 보호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았고, 2019년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다. 행정부의 기후정책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문이 처음 열린 것이다.

202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노이바우어(Neubauer) 결정은 여기에 ‘탄소예산’과 ‘세대 간 정의’를 더했다. 지구 온도 상승을 일정 수준으로 묶으려면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총량에 한계가 있고, 현재 세대가 그 예산을 앞당겨 써버리면 미래 세대는 훨씬 가혹한 부담을 떠안게 된다. 독일 헌재는 2030년 이후의 감축 계획을 비워둔 법률이 바로 그 이유로 미래 세대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소개한 유럽인권재판소의 2024년 판결은 한발 더 나아갔다. 국가에 폭넓은 정책 재량이 있음은 인정하되 감축목표를 세우는 일만큼은 그 재량이 좁아진다고 보았고, 언제 탄소중립에 이를 것인지와 남은 탄소예산이 얼마인지를 숫자로 밝히지 않은 태도를 문제 삼았다.

무대는 국제재판소로 옮겨갔다. 2024년 국제해양법재판소는 온실가스 배출이 유엔해양법협약이 금지하는 ‘해양오염’에 해당한다고 만장일치로 확인했고, 2025년 7월 미주인권재판소는 ‘건강한 기후에 대한 권리’와 나아가 자연 그 자체의 권리를 인정했다. 서로 다른 법체계에서 나온 이 판단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과학이 법적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1.5도’와 ‘탄소예산’이 그 중심에 있고, 과학이 제시한 한계선을 국가가 얼마나 성실하게 자기 몫으로 나누어 지고 있는지가 재판의 쟁점이 되었다.

2025년 7월 23일, 국제사법재판소

그리고 지난해 7월 23일, 유엔의 최고 사법기관인 국제사법 재판소(ICJ)가 ‘기후변화와 관련된 국가의 의무’에 관한 권고적 의견을 재판관 전원일치로 내놓았다. 출발점은 태평양 도서국 법대생들의 캠페인이었다. 국제법이 각국에 요구하는 기후 의무가 무엇이고 그것을 저버리면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 국제 최고 재판소에 직접 물어보자는 제안이었다. 학생들이 설득한 태평양 국가들이 움직였고, 바누아투가 주도한 결의를 2023년 유엔총회가 채택했다. 91개국과 여러 국제기구가 의견서를 냈다. 작은 나라의 학생들이 시작한 일이 국제법의 지형을 바꾼 셈이다. 의견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파리협정에 따라 우리가 정한 목표만 지키면 된다”는 항변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기후조약이 특별법이므로 일반 국제인권법의 적용을 배제한다는 주장에 대해, 재판소는 두 규범이 서로 보완적으로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깨끗하고 건강하며 지속 가능한 환경에 대한 권리’가 다른 인권을 누리기 위한 필수 조건임을 확인하면서 이를 국제법상 인권으로 인정했다.

둘째, 국가가 기후체계를 보호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국제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재판소는 그 예로 화석연료의 생산과 소비, 탐사 허가, 그리고 화석연료 보조금을 명시했다. 책임이 인정되면 배상 의무까지 따르며, 여러 나라가 함께 만든 피해라는 이유로 개별 국가의 책임이 희석되지는 않는다.

셋째, 기후난민이다. ICJ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명의 위협이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런 위험에 놓인 사람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금지된다고 판단했다. 난민협약이 요구하는 ‘박해의 사유’와 무관하게 생명권에 근거해 보호 의무를 끌어낸 것이다. 보호의 초점이 ‘왜 떠나왔는가’에서 ‘돌아갈 그곳이 어떤 상태인가’로 옮겨갔다.

물론 권고적 의견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그러나 국제법의 최고 법정이 만장일치로 확인한 기준은 앞으로 각국 법원과 국제 협상, 수많은 소송에서 판단의 출발점이 된다. 판결문이 온실가스를 직접 줄이지는 못하지만, 무엇이 ‘충분한 대응’인지를 가리는 잣대는 만들어낸다.

기후피해는 인권피해다

국제사법재판소(ICJ) 법정 / 출처: https://www.icj-cij.org

한국은 어디에 서 있나

우리도 이 흐름 바깥에 있지 않다. 2024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이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를 어떤 형태로도 정해두지 않은 것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하지 않은 것이라며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청소년과 영유아, 시민들이 청구인으로 나선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이었다.


이 결정 과정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도 중요했다. 폭염 속에서 일하는 농민과 건설노동자, 바닷물이 차오르는 마을의 주민, 청소년들이 기후위기를 인권 문제로 제기하자, 인권위는 기후위기가 생명권과 건강권, 주거권을 광범위하게 위협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감축목표 상향과 취약계층 보호를 정부에 권고했다. 나아가 헌법재판소에 직접 의견을 내어, 다음 세대에게 돌아갈 몫을 계산하지 않은 감축목표는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기후위기와 인권의 관계를 우리 국가기관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첫 판단이었고, 헌재의 결론은 그 뒤를 따랐다. 헌재가 정한 개선입법 시한은 2026년 2월 말이었다. 국회는 이 시한을 넘겼고, 개정법은 지난 8월 26일에야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된 탄소중립기본법은 2035년과 2040년, 2045년의 감축목표를 상한과 하한을 둔 ‘범위형’으로 명시했다. 각각의 목표는 2018년 배출량 대비 2035년 53~61%, 2040년 69~80%, 2045년 84~90%다.

눈여겨볼 대목은 함께 들어간 원칙 조항이다. 국가의 감축목표는 전 지구적 감축 노력에서 우리나라가 기여해야 할 몫에 부합해야 하고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해서는 안 된다고, 법률이 직접 규정했다. 공정한 몫과 세대 간 부담 이전 금지. 국제 법정들이 10년에 걸쳐 다듬어온 두 기준이 마침내 우리 법전의 문장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다. 범위의 하한이 매년 같은 비율로 줄여나가는 ‘선형 경로’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초기 감축을 덜 하고 부담을 뒤로 미루는 방식이라는 지적이 이어졌고, 헌법소원을 냈던 청구인들은 통과 당일 헌재 결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냈다. 역사적인 기후소송 결과치고는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세대간 형평성을 명시한 법률에서 ‘선형 경로’를 목표로 인정하는 것이 양립할 수 있는가?

구체적인 목표치는 이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해진다. ICJ는 형식적으로 목표를 세워 제출하는 것만으로는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니며 그 내용이 1.5도 달성에 부합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률에 적힌 원칙이 실제 숫자로 어떻게 옮겨지는지, 우리는 아직 시험대에 올라 있다.

국제 법정들이 10년에 걸쳐 세운 ‘공정한 몫’과 ‘세대 간 부담 이전 금지’의 기준은
마침내 우리 법에 담겼다. 그러나 그 원칙을 실제 감축목표와
정책으로 구현하는 일은 아직 남아 있다.

새롭지만, 강력한

이 흐름은 분명 새롭다. 1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법리이고, 미래 세대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환경권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를 두고 논쟁도 여전하다. 그러나 방향만큼은 뚜렷하다. 네덜란드에서 시작해 독일과 스위스를 거쳐 국제해양법재판소와 미주인권재판소, 그리고 ICJ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법체계의 법정들이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했다. 기후위기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의 선의나 재량이 아니라 법적 의무라는 것이다.

이 변화가 우리 삶에 갖는 의미는 생각보다 구체적이다. 국가는 이제 감축목표를 숫자로 제시하고 그 근거를 설명해야 한다. 기후정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정보에 접근하고 의견을 낼 권리, 다투어볼 사법적 통로도 인권 보호의 핵심 요소로 인정되었다. 폭염에 가장 먼저 쓰러지고 침수에 가장 먼저 집을 잃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는 시혜적 배려가 아니라 의무의 내용이 되었다.

스위스의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노년을 지키기 위해 소송을 냈지만, 그 판결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기후위기 앞에서 권리를 말하는 언어가 이제 막 만들어지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언어치고는, 꽤 힘이 세다. 「인권」

글_ 박시원 |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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