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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할 수 있는 기후 대응 정책 많아요”

연재 [2024.05~06] “플라스틱 빨대 쓰지 않을 수가 없는 이들도
참여할 수 있는 기후 대응 정책 많아요”

 

중증장애가 있는 김상희(42) 노들장애인자립센터 사무국장은 활동보조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생활한다. 비장애 중심의 세상에 균열을 내고 싶고 장애인을 배제하는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당당히 말하는 일을 하면서 장애인권언론인 <비마이너>에 칼럼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을 연재한다. 그에게 기후위기 문제란 “장애만큼 소수자들의 외침”으로 느껴졌으나 이제는 “내 일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희 사무국장이 4월 11일 서울 종로구의 노들장애인자립센터 사무실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 촬영을 했다.
김상희 사무국장이 4월 11일 서울 종로구의 노들장애인자립센터 사무실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 촬영을 했다.

 

지난 4월 11일, 그가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매일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일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의 노들장애인자립센터 사무실로 향하는 길,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함께 기다리는 동료 장애인의 전동차에는 플라스틱 물통과 플라스틱 빨대가 꽂혀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한 그의 전동차에 달린 가방에도 투명한 하얀색 플라스틱 빨대가 한 가득 실려 있었다. 그가 인터뷰를 하면서 마시던 음료에도 플라스틱 빨대가 꽂혀 있었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시나요?
“아침 7시30분쯤 일어나면 활동보조선생님이 집에 오세요. 그분이 오시면 씻고 옷 갈아입고 출근 준비를 해주세요. 마치면 같이 지하철이나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이동해서 사무실에 나와요. 보통 오전 10시쯤 와서 7시쯤 퇴근해요. 제가 일이 많아서 야근을 하고 있어요.”

 

글 한 편을 쓰시는 데 얼마나 걸리시나요.
“미니키보드를 이용해서 글을 써요. 제가 오른손, 한 손가락만 사용할 수 있어요. 엄청 오래 걸려요. 하루 종일 쓰고 이튿날에는 퇴고를 해요. 주말 내내 하죠.”

 

혼자 다 하시는 군요.
“도움 받으면 글이 더 안 나와요. 글 쓰는 걸 좋아해요.”

 

 

장애인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20년 넘게 활동해 온 그는 기후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의 변화가 의미있는 변화라고 느껴지는 듯 했다. 장애문제보다는 시민들의 관심을 많이 받아 “주류로 가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김상희 사무국장의 마음을 대변하는 오른 손.
김상희 사무국장의 마음을 대변하는 오른 손.

 

 

기후시위도 나가셨나요.
“자주는 못 갔지만. 2~3년 전쯤 가을에 열렸던 시위에서 같이 행진했어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언제 알게 되셨고, 처음 이 문제를 접하셨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기후 문제는 예전부터 계속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린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점점 체감이 되니까, 내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계기가 있으셨나요.
“저는 전동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날씨에 매우 민감해요. 비가 오거나 눈보라가 치면 곤란을 겪지요. 외부에서 집회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서 만일 피할 곳이 없거나 대처할 수 있는 게 없으면 꼼짝없이 비를 맞아야 해요. 전동차가 비를 맞으면 고장나요. 고치는 데 몇 십만 원씩 깨지기도 하죠. 그런데 저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출퇴근을 해야 하는데 비 오는 날이 정말 싫거든요. (웃음) 그때는 우비로 몸 전체와 전동차까지 감싸기 때문에 얼굴만 내놓고 다니는데, 그걸 쓰면 아무 것도 못하니까 너무 피곤해요.“

 

겨울철은 어떠십니까.
“너무 추운 날에는 배터리가 금방 소모되고요. 미끄러운 언덕은 정말 위험해요.”

 

날씨가 이상해지고 있다고 느끼신 지가 대략 몇 년 전쯤이신가요.
“한 10년 된 것 같아요. 봄과 가을이 뚜렷했는데 달라지고 있는 듯 해요.”

 

 

주류가 되어가는 환경문제

 

어릴 적 뇌성마비를 앓은 뒤 중증장애를 얻은 그는 장애인들을 옥죄는 정책들로, 장애인의 이동권을 무시하고 시설생활을 강요하는 두 가지를 꼽는다. 특히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장애감수성이 없는 정치인에 의해 정책이 후퇴되는 것이 가장 답답하다고 했다. 모두가 새 출발을 말하는 들뜬 기분이 거리에 가득한 봄보다는 차분한 느낌을 주는 가을이 그는 좋다고 했다.

 

 

장애문제 만큼 환경문제는 소수영역이었는데 이제는 주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맞아요. 사람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예전에는 환경 문제가 소수의 외침이었는데 요즘은 점점 주류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친환경 제품도 많이 나오고요.”

 

환경 문제가 다른 문제들보다 더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에는 동의하시나요.
“온난화를 막아야 한다는 건 동의해요. 지구가 아픈 것은 분명한 변화니까요.”

 

쓰레기 문제를 여쭙고 싶습니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 어떠셨나요.
“그 문제가 저에게는 참 쉽지 않았어요. 환경 문제에 대응을 잘 해야 하죠. 저도 동참하는 마음으로 다양한 재질의 빨대를 써봤어요. 다 안 맞았어요. 우리들은 플라스틱 빨대만 쓸 수 있어요. 왜냐면 스테인리스 빨대를 쓰면 일단 굽어지지 않기 때문에 불편해요. 저는 장애가 있어서 빨대를 씹을 일이 많아요. 딱딱하니까 치아에 좋지 않았어요. 또 실리콘 빨대도 써봤어요. 자꾸 씹게 되니까 고무맛이 느껴지는 것도 불편하고, 세척을 잘 해야 하는데 제가 일일이 다 못하니까 활동보조 선생님이 그때그때 씻어주셔야 하니까 눈치보이기도 해요. 종이빨대도 써봤지요. 씹는 맛이 있어요. 자꾸 씹으면 종이가 흐물흐물해지니까 싫지요.”

 

그런데도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 특히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없애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 난감하셨겠습니다.
“눈치가 보였어요. 활동가가 되어가지고 꼭 플라스틱 빨대를 써야 할까, 스스로도 눈치보이고 주변에서 농담으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요. 나 스스로도 고민하고 있었는데 내 마음도 모르고 그런 말을 들으니 분한 느낌도 있었지요.”

 

 

에코에이블리즘(Eco-ableism, 친환경 장애차별주의). 친환경정책을 추진하면서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는 에코에이블리즘 사례에 부딪힐 때 사회가 하나의 답만을 강요하지 않고 장애인의 인권과 환경 문제를 융통성있고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성숙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그는 스타벅스 카페를 갔을 때 종이빨대를 받아서 써봤지만, 불편해서 결국 가방에 플라스틱 빨대를 한뭉치씩 넣어 다니는 이유이다. 전동차 뒤에 매달린 큰 가방에는 우비와 물티슈를 챙겨 다녀야 한다.

 

가방 속 플라스틱빨대 뭉치
가방 속 플라스틱빨대 뭉치

 

 

또 에코에이블리즘 문제들을 깨달은 순간들이 있으셨나요.
“동료들과 밥을 먹을 일이 많아요. 배달도 많이 하고 플라스틱 사용도 많이 하죠. 생리대도 천생리대를 써보고 싶었지만 포기해야 했어요. 집에서도 일회용품을 안 쓸 수는 없어요. 저도 줄이고 싶은데 설거지나 빨래 등을 제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 매번 재활용 할 수 있는 다회용기 등을 사용하자는 말을 속 편하게 할 수 없어요. 나 아닌 동료나 또다른 누군가가 설거지하는 수고로움을 알면서 일회용품을 쓰지 말자고 강조할 수 없는 거죠. 저는 중증장애인이다보니 활동보조선생님들(월~일요일 하루 16시간, 총 3명)께 괜한 부담을 드리고 그 분이 일을 힘들어하신다면 또다른 누군가와 일을 새로 해야 하니까 편하게 해드리려고 노력하기도 하고요.”

 

기후변화와 인권의 관계를 말할 때 저개발국 국민들과 아이나 노약자를 주로 말하는데 장애인도 피해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지요. 제가 무서워하는 건 태풍이에요. 태풍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데, 저는 밤에 혼자 자야 하는데 태풍이 오면 너무 무서운 거에요. 오피스텔에 있는데 창문이 매우 커요. 그런데 이 창문이 태풍이 불면 정말 무서워요. 바람이 세게 불어서 저 창문이 깨지면 어쩌지, 불안하지요. 재난 상황에서 몸이 불편하고 혼자 사는 저는 피할 수 없으니까 그 자리에서 죽는 건 아닌지 가장 겁이 나요.”

 

수해로 반지하에 사시던 장애인분이 희생되기도 하셨지요.
“저희 단체에서도 2022년부터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 지원사업을 해요. 장애주민들이 정말 많아요. 장애가 있고 빈곤하다 보니 2중, 3중의 고통을 겪고 계세요. 쪽방촌에 에어컨이 없으니 여름철 찜통 더위를 그냥 견디고 계시고, 노인 장애인들은 시설로 보내질까봐 그런 고통을 숨기시기도 해요.”

 

장애영역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 제도의 부족함 등 인권침해 사례가 기후위기 시대에는 더 불거질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국장님이 생각하시는 가장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하는 정책이 있을까요.
“(고민 끝에) 딜레마 같아요. 사실 이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려면 개발해서 새로운 집을 짓고 에어컨을 설치하는 등 기술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또 환경 문제는 아닐까 고민이 되기도 해요. 환경을 이용해야만 하니까요. 이 중첩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사회적으로 고민해 봐야 해요. 개인적으로는 공장에서 내뿜는 오염물질이나 탄소를 줄이면 기후 문제를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해결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하니 쓰레기 문제 같이 눈에 보이는 환경 문제에 더욱 집중하는 것 같아요. 거북이가 빨대 때문에 죽은 모습을 보면 너무 충격적이기도 하고요.”

 

전동차에 항상 들고 다니는 가방. 우비와 물티슈 등이 들어있다
전동차에 항상 들고 다니는 가방. 우비와 물티슈 등이 들어있다

 

각국 정부는 점점 환경 문제에 대응하는 정책을 만들어야만 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게 돈이 되기 때문일 수도 있어 보이고요.

“환경이 돈이 되어가는 시대, 공감해요. 이제는 환경이 부의 상징이 되어 가고 있어요. 비싸서 친환경 실천을 못하고 있는 분들도 많아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이를 좀 더 대중적 실천이 가능하도록 바꾸는 것도 좋겠어요.”

 

기후변화나 환경 문제를 말할 때 인권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친환경정책을 마련하더라도 중증장애인들에게도 맞는 건지 검증이 필요해 보였어요. 그 정책을 활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고려할 점이 또 있는 거죠. 환경을 보호하는 것도 어차피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잖아. 누구는 포함되고 누구는 포함되지 않으면 안되는 듯해요. 환경을 말할 때 누구나 다 포함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이 필요해요.”

 

김상희 사무국장

 

 

기술의 발전과 진화가 인간을 향하지 않고 자본을 향해서는 안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동시에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지키는 기술은 삶을 지키는 보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비장애인 역시 잘 알고 있다. 감히 말해보지만, 환경 문제를 말하면서 주변 이웃의 삶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위장환경주의(그린워싱)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후위기 시대, 약자를 고려하지 않은 다양한 정책이 추진된다면 이 역시 옳은 일은 아닐 것이다. 13명의 동료들과 바쁘게 일하고 있는 김 국장은 장애인이 배제되는 사회에 대해 발을 구르며 분노했다. “인간 사회라면, 어떠한 사회이든 돈의 많고 적음의 차이가 아니고 모든 인간이 최소한 먹고 입고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는 지켜져야 한다”며 “너는 이렇게 살고 나는 이렇게 산다는 것은 오만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장애인도 함께 할 수 있는 기후환경정책을 고려하는 성숙한 사회를 기다린다.

 

 

글/사진 | 최우리(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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