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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는 시간 [2024.05~06]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도둑맞은 여성들 <레벤느망>

 

지난 3월 4일, ‘나의 몸, 나의 선택’이라는 문구가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서 반짝였다. 역사적 사건의 목격자가 되고 싶어 에펠탑 인근에 운집한 사람들은 거대한 랜드마크에 조명이 켜지고 폭죽이 터지자 이 메시지를 따라 외치며 환호했다. 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임신 중지(낙태)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한 순간이었다.

 

레벤느망

 

이날 프랑스 상·하원은 여성의 임신 중지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찬성 780표 대 반대 72표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실질적 효과보다 상징적 의미가 큰 개헌이었다. 프랑스에선 1975년부터 여성의 자발적 임신 중지가 합법화되어 이른바 낙태죄는 유명무실한 상황이었다. 미국 역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성폭력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제인 로(가명)가 낙태수술을 거부당한 뒤 소송을 제기, 낙태금지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이끌어낸 사건)을 통해 낙태죄와 관련한 중요한 판례를 만든 바 있다. 그럼에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에서 보수적인 법 개정 움직임이 일어났고, 2022년 미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무효화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성의 권리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후퇴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 프랑스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적극적 행동을 취하며 국가적 자부심을 세웠다.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는 헌법 개정 표결에 앞서 이런 발언을 했다. “우리는 모든 여성에게 도덕적 빚을 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겪은 여성들, 자유를 갈망하다 목숨을 잃은 여성들, 뒷골목 낙태 시술자들의 바늘에 시달린 여성들 말입니다.” 아탈 총리는 이 연설에서 1975년 프랑스의 임신중지 합법화를 이끈 인물인 시몬 베유의 이름을 언급했는데, 당시 프랑스 보건부 장관이었던 시몬 베유는 “낙태죄의 존폐에 대한 질문은 태아와 여성의 삶의 경중을 따지는 물음이 아니라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여야 하느냐는 물음이다”라고 말하며 국가가 아닌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몸에 관해 결정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에펠탑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 켜진 ‘나의 몸, 나의 선택(My Body, My Choice)’

 

여성들은 오랫동안 제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도둑맞은 채 살아왔다. 1963년에 스물을 갓 넘긴 대학생 아니 에르노 역시 그런 여성들 중 한명이었다. <단순한 열정> <남자의 자리> <한 여자> <세월> 등의 책을 쓴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 아니 에르노에 관한 얘기다. 여성의 자유와 욕망, 사회적 억압 등을 직시하며 자기 고백적 글쓰기를 이어온 아니 에르노는 <사건>에서 과거의 고통스런 한 ‘사건’을 고백한다. 여기서의 사건이란 임신중지의 경험이다.

 

2021년 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오드리 디완 감독의 <레벤느망>은 바로 이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대학생 안의 이야기는 아니 에르노의 이야기인 동시에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다. 문학적 날카로움을 품은 <사건>이 개인의 고통에 깊숙이 접속하게 한다면, <레벤느망>은 보통명사로서의 ‘여성’이 당면한 고통을 서늘하게 체험하게 한다.

 

“4월 29일. 없음, 오늘 또.”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 안(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 그가 공책에 적은 이 문장의 의미를 대부분의 여성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뒤이어 찾아오는 감정이 두려움이라는 사실도. “임신입니다.” “그럴 리 없어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안은 의사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현실도 부정해보지만 무엇보다 도움이 필요하다. “어떻게든 해주세요.” 하지만 의사는 재빠르게 답한다. “누구에게도 그런 말 마세요. 함께 감옥에 갈 수 있으니.” “이건 부당해요.” 아무렴, 부당한 현실이다.

 

육체적 사랑은 환희여야 마땅하나 육체적 관계에 수반한 어떤 책임은 오로지 여성의 몫으로 전가되곤 한다. 안은 아이를 낳을 마음이 없고 감옥에 갈 마음도 없다. 학업을 포기할 마음도 없고 미혼모가 될 마음도 없다. 안은 또다른 의사를 찾아가 말한다. “계속 공부하고 싶어요. 제겐 그게 중요해요.” 196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 낙태는 불법이었다. 낙태를 돕는 사람도 덩달아 처벌받았다. 낙태라는 말 자체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환경이었다. 젊은 여성이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엔 너무도 가혹한 현실이었다.(애초 낙태가 죄가 된 데에는 법을 만든 이들이 임신 및 출산을 경험하지 않는 남성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법을 만드는 과정에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됐다면 낙태죄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레벤느망

 

안 역시 외롭고 두려운 투쟁을 시작한다. 안에겐 정보가 필요하고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까운 친구들조차 차갑게 안을 밀어버린다. “날 끌어들이지 마.” 머리 좋은 딸을 대학에 보낸 것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딸이 무사히 학업을 마쳐 자신들보다 더 나은 길을 스스로 개척해가길 바라는 노동자계급의 부모에게도 이 비밀은 털어놓을 수 없다. 정보통이라 여겼던 남자 동기는 최악의 친구로 판명 나고, 안의 임신에 책임이 있는 상대 남자의 태도는 무책임과 비겁함 그 자체다. 시간도 안의 편이 아니다. 생리가 멈춘 뒤로 안의 인생은 계속해서 붕괴 중이다. “받아들여요. 선택권이 없어요.” 의사는 안의 건강을 생각해 이렇게 말하지만, 도리어 안의 머리에선 이런 생각이 자란다. ‘내 몸에 대한 선택권이 왜 나한테 없는가. 내 몸에 대한 결정은 내가 할 것이다.’ 그 결심은 모든 것을 걸고 하는 결심이다.

 

“단지 난 너보다 운이 좋았을 뿐이야.” 한 친구가 뒤늦게 안을 찾아와 고백한다. 자신도 지난 방학 동안 섹스의 쾌락을 즐겼노라고.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운이 좋았다’는 것이다. 낙태를 결심한 안의 삶은 비극적이게도 ‘운’에 맡겨질 터였다. 불법 수술을 받다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테니. 안은 운이 좋았다. 살기 위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처참한 전투에서 안은 살아남았다. 아니 에르노는 계속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사건>이 세상에 나왔다.

 

다시 시몬 베유 전 프랑스 보건부 장관의 말을 인용해보자. “어떤 여성도 가벼운 마음으로 낙태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비극이다.” <레벤느망>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빅토르 위고의 시 <출구>를 참고하면, 비극의 한복판에서 안은 “분개한 눈동자, 창백한 이마”를 하고서 투쟁했다. 안과 같은 여성들의 투쟁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 투쟁 덕에 우리는 오늘을 맞이하게 되었다.

 

 

글쓴이 이주현은 전<씨네21> 기자이자 편집장이다. 인권 영화 도서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를 썼다.

 

글 | 이주현(전 씨네21 편집장)

사진 | 네이버 영화, ⓒAFP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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