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6.04] 바다의 왕

글 정도경 그림 조승연

 

바다의 왕


옛날 옛적에 산을 일곱 개 넘고 강을 일곱 개 건넌 곳에 있는 머나먼 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커다란 배를 타고 외국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바다 여행에 즐거워하며 들뜬 사람도 있었고, 새로운 곳에 가서 새 생활을 시작할 꿈에 부푼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풍랑을 만났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파도가 거세져 배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배가 기울어져 곧 뒤집힐 것만 같아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여러 척의 다른 배가 나타나서 커다란 배를 둘러쌌습니다. 그 다른 배 여러 척에는 검은 제복을 입은 군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흔들리는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해줄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다고 생각해서 모두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새로 나타난 여러 척의 다른 배에 탄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뒤집힐 듯 기울어가는 커다란 배와 그 안에서 두려움에 떨며 비명을 지르는 승객들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그저 무표정하게 서서 구경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전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커다란 배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바다의 왕에게 도움을 청하며 살려달라고 기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에 어떤 형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형상은 바다 속의 해초처럼 검푸른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얼굴과 몸체는 파도의 물거품처럼 하얗고 희미했습니다.

  기이한 형상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는 바다의 왕이다. 너희 중에서 가장 어린 사람을 제물로 바쳐라.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의 목숨은 살려주겠다.”

  이 말을 듣자마자 배의 선장은 배에 타고 있던 아이들을 출렁이는 검은 바닷물 속으로 던져 넣으려고 날뛰었습니다. 그러나 승객들이 놀라서 항의하고 아이들이 울며 저항하자 선장은 부하들을 데리고 도망쳐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자 이제까지 곁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여러 다른 배에서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아까와는 달리 얼른 달려와서 선장과 부하들을 구조해주었습니다.

  이제 선장도 승무원도 없이 기울어가는 배에 남겨진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그중에서 나이 어린 소년 소녀들이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구원의 손길은 필요 없다! 나는 내 친구들과 끝까지 함께 가겠다!”

  어른들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까지 함께하겠다!”

  그리고 승객들은 더 이상 하늘에 기원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뭉쳐서 침몰해가는 배 안에 남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안쪽 선실로 달려갔습니다.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손을 꼭 잡고 조금이라도 물이 덜 들어오는 곳으로 이끌며 다가올 운명에 함께 저항했습니다.

  그러자 검푸른 머리카락은 해초와 같고 새하얀 얼굴과 몸통은 파도의 물거품과 같은 기이한 형체가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자기만 잘되고자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가장 저열한 짓이다. 목숨을 바쳐 친구와 가족을 지키려는 너희들이야말로 진정 고귀한 존재들이다.”

  그 순간 주위를 둘러쌌던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의 배는 모두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승객과 배를 버리고 달아난 선장과 승무원들도 함께 흔적 없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지켜주려던 승객들은 바다의 왕이 보호해주는 가운데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고향에 돌아와 보니 이미 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친구들과 가족들은 다시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돌아오자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돌아온 승객들은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정도경 님은 소설가로 중편 <호(狐)>로 제3회 디지털문학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문이 열렸다> <죽은자의 꿈>과 단편집<왕의 창녀> <씨앗>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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