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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16.07] <유럽인권재판소 판결 읽기 7> 나는 네가 한 일을 모두 알고 있다

글 박성철 그림 이한수

 

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청구인 프랑수아 사비에르 브뤼네(Francois Xavier Brunet)는 프랑스인이다. 1959년에 태어나 예르(Yerres)에 살고 있었다. 2008년 10월 10일께 동거녀와 격한 다툼이 벌어졌다. 화가 난 동거녀가 고소하고 형사절차를 밟게 되었다. 형사절차 중 동거녀는 브뤼네가 실제로 저지른 행위와 소환장에 기재된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검찰에 알렸지만 절차는 계속되었다. 2009년 4월 11일 동거녀는 고소를 취하하고, 검사는 더 이상 공소를 유지하지 않아 형사절차는 종결되었다.


  문제는 범죄 관련 기록이었다. 동거녀가 고소했을 때 프랑스의 범죄확인처리(STIC: System de Traitment des Infractions Contatees) 시스템에 브뤼네의 수사 기록이 등재되었다. 프랑스 경찰이 작성한 수사 기록 등이 그대로 남아 보존되게 되었다. 청구인은 자신에 대한 수사 기록 삭제를 청구했다. 검사는 혐의 없음 혹은 증거불충분과는 다른 원인으로 공소가 유지되지 않은 것이므로 정보를 지울 수 없다고 거절했다. 삭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청구인은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에 제소했다.


  유럽인권협약(The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 제8조에서 정하는 사생활과 가족 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한 것이다[Brunet v. France, App no. 21010/10(ECtHR,18 Sep 2014].


┃  범죄 정보 저장, 사생활 존중받을 권리 침해


유럽인권재판소는, 브뤼네의 범죄 관련 개인정보를 STIC 시스템에 저장한 조치가 청구인의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저장된 정보가 신원과 개인 특성에 대한 내용을 상당히 자세하게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브뤼네에 대한 공소가 유지되지 않았는데도 20년 동안 신상 정보를 보존하도록 했기 때문에 개인에 대한 법익 침해가 지나치다고 보았다. 반면, 개인의 지문이나 DNA 프로필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므로 사익이 그다지 침해되지 않는다는 프랑스 정부의 항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럽인권재판소는 범죄 관련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경우가 제한적이라는 데에도 주목했다. 혐의가 없거나 증거가 불충분해 수사가 종결된 경우에만 개인정보 삭제를 허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을 뿐이고 그 밖에 검사가 개인정보 보유 여부의 적절성을 판단해 지울 수 있는 재량권이 없는 제도적 결함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개인의 수사 정보를 보유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는 구체적이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도 조기에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보니 불합리한 경우가 생길 수 있었다. 가령 수사가 더 진행되면 혐의 없음 혹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받을 수 있는데도 그전에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 절차가 종결된 경우, 또는 재판으로 넘겨졌으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는데 그 이전 단계에서 다른 사정으로 기소가 되지 않는 경우처럼, 실질적으로는 혐의 없음 혹은 증거불충분과 다르지 않은 경우에도 삭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20년 동안 수사 기록이 보존되는 불이익을 당할 수 있었다.


┃  검사 결정에 대한 이의 제기 할 수 있어야


더구나 유럽인권재판소는 검사의 결정에 대해 더 다툴 수 있는 절차가 없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인식했다. 검사가 한번 결정한 처분으로 20년간 개인정보가 보존될 수밖에 없는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검사의 처분에는 의도적인 자의가 개입하거나 실수로 오류가 있을 수 있는데도 한번의 처분으로 개인정보가 20년 동안 보관될 수밖에 없도록 제도가 고안된 것은 지나친 사익 침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개인정보를 보존하는 기간도 문제였다. 프랑스 정부는 개인정보가 기간의 제한 없이 보존되는 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20년이라는 기간은 사실상 기간 제한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거나 설령 기간 제한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거의 일률적으로 20년이란 시간을 설정한 것은 상당성을 넘어선 조치라고 판단했다. 


  범인을 속히 검거하고 재범을 방지하는 것과 같은 공익이 중대할지라도 그 중대성만으로 개인정보 보유 조치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점이 다시 확인되었다. 달성하려는 공익이 침해되는 사익보다 더 우월해야 비례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된다. 오로지 혐의 없음 혹은 증거불충분과 같이 제한된 경우에만 조기 삭제를 허용하고 그 밖의 경우 20년 동안 개인정보를 보유하도록 하면 사안에 따라서는 사익 침해가 훨씬 더 지나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  20년간 보관은 상당성을 넘어선 조치


어떤 조치로 달성하려는 목적이 정당하다는 점만으로 개인에 대한 권익 침해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목적을 달성하기에 적합한 수단을 선택해야 하고, 선택한 수단보다 더 완화된 수단,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차이가 없으면서도 개인의 피해를 더 줄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조치로 이룰 수 있는 공익적 가치의 크기가 침해되는 사익의 정도보다 더 우월해야 비례의 원칙을 준수해 인권침해에 이르지 않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적 결함과 불균형은 브뤼네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불거졌다. 만일 동거녀가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다면 혐의 없음 혹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재판에 넘겨졌더라도 무죄 판결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확정된 건 아니었다. 만일 다른 검사가 삭제 요구를 판단했다면 혹은 그 검사의 판단에 대해 재차 다시 다툴 수 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가능성을 모두 차단당한 채 수사 기록이 20년간 보존된다는 데에 브뤼네는 부당하다는 문제 제기를 했고, 유럽인권재판소는 수긍해 인권협약 위반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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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철 님은 변호사로 법무법인 지평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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