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16.07] <국제인권 따라잡기 7> 고문방지협약과 추가선택의정서
글 김형구 그림 강우근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대표적인 고문치사 사건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와 관련한 박종철 씨 고문치사 사건 외에도 우리 현대사는 여러 고문 사건(부천 성고문 사건, 야당 국회의원 고문 사건 등)으로 점철되어 있기에 우리에게는 이러한 고문과 가혹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이를 금지하고 재발을 방지해야 하는 큰 소명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고문은 왜 방지되고 금지되어야 할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고문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매우 심하게 훼손하는 심각한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국제적으로 고문은 세계인권선언(1946), 제네바협약(1949), 자유권규약(1966)과 지역적 인권협약에서 금지되었고 유엔(UN)은 보다 포괄적인 고문 금지와 방지를 위해 1984년 '고문 및 기타 잔인하거나, 비인도적이며 모멸적인 처우 및 처벌의 금지에 관한 협약(Convention against Torture and Other Cruel, Inhumane or Degrading Treatment or Punishment (이하 고문방지협약)'을 채택했고 이는 1987년 6월 26일 발효되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는 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가 채택되었습니다.
고문방지협약은 국제적으로 포괄적인 고문행위 방지와 금지를 규정함과 아울러 고문행위자의 처벌 의무를 체약국에 부과하고 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문'행위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고문방지협약 제1조는 "공무원 등의 공무수행자가 정보나 자백을 얻기 위하거나, 혐의자를 처벌하기 위해, 타인을 협박 강요하기 위하거나, 기타 어떠한 종류의 차별에 기인한 이유로 개인에게 고의적으로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인(私人) 간에 이루어지는 유사한 행위는 이 협약에서 말하는 고문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다만 공권력이 고문행위를 사인에게 교사했거나 묵인했다면 이는 협약에서 규정하는 고문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고문방지협약은 고문을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면서 고문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 큰 특징이 있습니다. 이 협약은 고문행위를 한 자뿐 아니라 미수범, 공범 및 단순 가담자(제4조) 그리고 교사, 동의, 묵인한 자도(제1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협약은 처벌과 관련해 체약국이 직접 처벌하거나, 처벌할 의사가 없거나 처벌할 수 없을 경우 처벌을 위해 타국으로 인도해야 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는 점(제7조)에서 매우 특징적 입니다. 이를 '인도 아니면 재판'의 원칙이라고 하는데 주로 항공기 납치와 같은 극악한 범죄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고문방지협약도 다른 인권협약과 마찬가지로 자체적인 이행감시체제를 마련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4년 임기의 위원 10인으로 구성되는 고문방지위원회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에 대해서는 고문이 허용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국제법적인 대답은 "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에서 고문 금지 원칙은 이른바 모든 조약이나 국제관습법보다 우월한 지위를 가지는 상위 규범인 '강행규범(Jus Cogens)'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행규범이란 이 세상의 모든 국가와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근본적인 규범을 의미하며 어떠한 일탈도 허용하지 않는 규범을 말합니다. 따라서 고문방지협약의 당사국이 아니라고 해도 고문 행위는 강행규범의 위반으로 금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문 금지와 방지에 대한 국제법의 입장이 이러하다면 과연 세계적으로 고문과 가혹행위가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고문방지협약이 발효한 1987년이 몇 년 지나지 않아 구(舊)유고슬라비아 전쟁 중 고문행위와 잔학행위가 수없이 발생했고 2001년 9ㆍ11사태 이후 미국의 CIA도 알카에다와 관련되어 있거나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물고문(water boarding)을 광범위하게 자행했습니다. 그리고 관타나모의 미국 수용시설에서도 고문과 비인도적 처우가 행해졌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역설적으로 고문 금지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추구되어야 하는 현실적 문제입니다.
현실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를 감시하고 탐지하는 일이 우선돼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2002년에 채택된 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에는 고문 및 비인간적이거나 모멸적 처우와 처벌의 방지를 위해 체약국 내의 모든 구금 장소에 대한 정기적 방문과 국가예방기구의 수립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선택의정서 가입은 국방부의 군 수용시설에 대한 외부 방문 거부 입장으로 어려움에 처한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 국방부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국가기관이 고문행위의 본질이 가진 인권침해의 심각성과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고문으로 인해 빚어진 아픔을 기억하면서 반성하고 보다 전환적 인식을 가지기를 소망합니다.
김형구 님은 국제법과 국제형사법을 공부했으며 한국항공대학교와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국제법, 국제기구론, 국제인권법, 국제항공법, 국제형사법과 관련한 내용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