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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세상 [2016.07] 왜,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는 거죠?

글 박영희 사진 이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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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대학교 창조일자리센터에서 주관한 공공기관, 공기업, 대기업 채용설명회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초청강사가 연단으로 들어서자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취업 준비는 언제가 가장 적기일까요? 1학년? 2학년? 3학년…? 빠를수록 좋습니다. 늦어도 2학년부터는 차근차근 준비해야 합니다. 2학년은 자신의 인생 목표 설정을, 3학년은 직업과 업종 선택을, 4학년이 되면 입사 희망 기업 시험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그런데 왜, 강사의 조언이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 걸까. 오히려 인터넷에 떠도는 '20대 취업률의 진실'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익명의 그는 대기업이나 공무원 같은 정규직 20%, 대학원 진학 및 군 입대 20%, 알바나 단순 노무 같은 비정규직 20%, 공시(생) 및 백수를 40%로 진단했다.

학생회관 소극장을 가득 메운 채용설명회에 이어 취업 상담, 지문 인·적성 검사 등 행사가 모두 끝난 건 오후 4시경이었다. 졸업을 앞둔 허예진(중어중문학과) 씨의 표정이 썩 밝아 보이진 않았다.


┃  서울 한 번 다녀오면 10만 원


“채용설명회에서 강사가 2학년 때는 자신의 인생 목표를 설정하라고 했지만 전 좀 다르게 보낸 것 같아요. 1,2학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할까요.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지내다 보니 혼자만의 생활을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마침 학과를 아버지가 추천해주어 부산에서 청주로 올 수 있었고요.”

교환학생으로 중국 창춘에 유학을 다녀온 것도 커다란 행운이었다. 지린(吉林)대학에서 보낸 세 학기는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본교로 다시 돌아온 뒤에는 부전공으로 통계학과 사회학을 들었습니다. 좀 더 폭넓은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걸 창춘에서 깨달은 거죠. 현재 마음에 둔 업종은 관광산업 분야입니다. 그런데 생각처럼 만만치가 않네요. 인프라 면에서 수도권 대학생들이 부럽기도 하고요. 수도권 학생들이야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예술 공연과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지만, 저처럼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어쩌다 한 번 접하는 기회와 수시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은 상대적 박탈감을 가져오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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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학년 2학기로 접어드는 지난가을부터였다. 취업박람회, 채용설명회를 좇아 서울을 10여 차례 오르내린 예진 씨는 곧 한계를 실감했다. 마음 같아서는 수시로 상경해 직접 듣고 체험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서울에 한 번 다녀오려면 교통비와 식비로 10만 원이 들어가는데 그걸 감당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돈 버리고 시간 버린다는 생각마저 들고요.”

  취업 준비를 하겠다며 휴학계를 제출한 친구들이 서울로 떠나갈 때였다. 지방에 남아있어봤자 희망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예진 씨는 끝내 동행하지 못했다. 청년 세대를 일컫는 이태백, 5포(연애, 결혼, 출산, 취업, 인간관계 포기), 헬조선, 흙수저 등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서울에 직접 다녀오는 것과 인터넷으로 접하는 취업 정보의 차이는 피부로 실감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만 처박혀 있다 현장 체험을 다녀온 기분이랄까요. 프로그램 운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위탁업체 직원에게 직접 질문도 할 수 있으니까요. 학교에서도 자체적으로 스터디 그룹과 남녀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진행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곧 한계를 느끼게 되죠. 취업은 곧 '정보 전쟁'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그 정보의 9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된 것도 분명한 현실이고요.”


  오는 8월에 졸업하는 예진 씨는 시기도 썩 좋은 편은 아니라고 했다.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면서 공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마저 정규직은 뽑지 않고 인턴과 계약직 채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서울로 간 친구들이 뭐라는 줄 아세요? 지방에서 4년간 대학을 다니느니 서울에서 1년간 취업 준비하는 게 훨씬 더 낫겠대요.”

해서 예진 씨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짐을 챙겨 서울로 가야 할지 청주에 그냥 남을지. 그동안 10여 업체에 입사 지원서를 제출했지만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한 것이다.


  “국립대학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가정형편 때문이었는데요, 막상 기업체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자 세상이 갑자기 공허하게 느껴지지 뭐예요. 저도 부산에서 올라와 안 해본 알바가 없단 말예요.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보려는 청년들에게 주변이 너무 불안한 것 같다는 예진 씨와 헤어질 때였다.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예진 씨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연애, 결혼, 출산이야말로 가장 필수적인 행복추구권 아닌가요. 하지만 자신이 없네요. 부모님 세대처럼 살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아버렸고요. 결혼하고, 아이 낳아 기르고…….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까 봐 그게 더 겁이 나는 걸 어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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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 대학 지방 대학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김태영 씨와 인사를 나눈 뒤였다.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다는 말에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의 취업에서 발생하는 격차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에서 몇몇 대학을 지방 거점 대학으?? 있어 답답할 뿐입니다?? 두고 있잖습니까. 신입사원 채용도 본사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고요.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간담회를 개최한 적 있는데, 지방에서는 신입사원 채용을 지사에서 해달라는 요구였죠.”


  그러나 2개월 남짓 준비한 간담회는 마이동풍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 기관도, 기업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말지방 대학은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인식부터 깨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방에는 국립대학이, 수도권에는 사립대학이 많잖습니까. 그 때문인지 수도권 대학은 취업 부분에서도 상당히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더군요. 이른바 인맥이라 칭하는 학연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고요. 각 업체에 취업한 동문 선배들로부터 얻어낸 다양한 취업 정보를 손에 쥐고 있어 지방으로선 경쟁 속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거죠. 지방 대학들이 취업 정보를 인터넷으로 접속하고 있을 때 수도권 대학들은 구두로 얻은, 한층 확실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잖습니까.”


  그러면서 태영 씨는 강사를 초청하려 해도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며 지방 대학의 애환을 털어놓았다.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특강에 응해주지 않거나 수도권에서 받는 강사료보다 더 많은 액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 축제 때도 애를 먹긴 마찬가지입니다. 연예인을 섭외하려 해도 반기는 사람이 있어야 말이죠. 결국엔 출연료를 더 지불하는 조건으로 섭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예인을 초청하지 않으면 축제 때 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해진다며 한숨을 내쉬던 태영 씨가 잠시 말머리를 돌렸다. 지난봄에 학교를 다녀간 초청 강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직무적성, 자기소개서, 테크니컬에 밝은 강사였는데, 특강을 마친 후 아쉬움을 토로하더군요.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은 학생들 질문에서 차이점을 보이는 것 같다면서 말이죠. 먼저 취업정보의 80%만 들려준 뒤 나머지 20%는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 마저 채워주려 했는데 질문하는 학생이 없더라는 겁니다. 그만큼 지방 대학생들이 취업 정보에 어둡다는 방증이 아니겠습니까.”


  강사의 말처럼 사립대학이 즐비한 수도권은 입사 시험에서도 지방과 큰 차이를 드러낸다. 취업에 대비하는 각종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그 효율성이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취업 문 앞에서는 모두가 냉정하잖습니까. 그 지역의 문화나 정서를 묻는 심사위원도 별로 없고요. 학문을 위한 대학이냐? 취업을 위한 대학이냐? 여기에 대해 누군가 물어온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해마다 취업 시기가 다가오면 예ㆍ체능계(인문)는 입사지원서에 클릭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취업 문턱에서 좌절감부터 맛봐야 하는, 인문학 전공자, 인문학은 과연 우리 사회에 필요한 학문인가? 태영 씨의 목소리가 처음 같지 않았다.

  “청년들의 미래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 가장 적확한 표현 아닐까요? 입학 문에 비해 졸업 문은 콘크리트 벽처럼 굳게 닫혀 있고, 정부마저 학문을 소모품 대하듯 경제 논리로만 보고 있으니 말이죠. 대학이 점점 사막화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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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들의 꿈은 무엇이냐?


청주대학교에서 만난 양승민(사회학과 4학년) 씨는 2014년 발생한 사회학과 폐과(廢科) 소식부터 들려주었다.

  “사회의 부당함에 침묵하지 말라고 배운, 그동안의 교육이 무색하게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는 신세였잖습니까. 학교 측이 주장하는 일방적인 통보에 맞서 사회학과를 제자리로 돌려놓긴 했지만, 앞으로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하겠네요. 한국 사회의 기류가 보통 불안정해야 말이죠.”


  외국인 교수의 강의를 듣는 날이었다. 강의 도중 교수가 물었다.

  “너희들의 꿈은 무엇이냐?”

  순간 강의실은 침묵으로 휩싸였다. 바로 그때였다.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자 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한국에 와서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꿈을 앗아가는 무서운 괴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들 공무원을 하겠다고 그러는데, 그것이야말로 미래가 없는 나라요 꿈을 잃어버린 나라가 아닐까요? 적어도 사회학 관점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강의를 듣고 나오는 길이었다. 쇠뭉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승민 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20대를 향해 투표율이 저조하다며 말들 하잖아요. 저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정부와 정치권에서 단 한 번이라도 청년들이 갈급해하는 밥상을 내놓은 적 있느냐고요. 주행 중인 차량이 고장으로 멈췄을 때 땜질 수준의 정비를 하느라 바빴잖습니까. 전체적으로 부품을 교체할 시기를 놓쳐버린 겁니다.”


  5포 세대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정치권이야말로 지탄의 소리를 먼저 들어야 한다고 했던가. 휴학계를 제출한 동기들이 일찌감치 서울로 떠나는 걸 지켜볼 때마다 승민 씨는 까닭 모를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저는 유명 강사의 특강을 싫어합니다. 왜 하나같이 성공한 사람만 있고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는 거죠? 자신의 꿈조차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청년 세대에게 성공 사례는 오히려 거부감만 일으키더군요. 텔레비전 드라마도 예외는 아닙니다. 대기업 입사 서류전형에서 지방 대학생 서류가 나오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하잖아요. '지방대? 그거 한쪽으로 밀어놔. 지방에서 배웠으면 뭘 얼마나 배웠겠어.' 당부컨대 이 같은 장면과 대사는 자제하고 좀 더 신중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에 대기업밖에 없는 양 한쪽으로 몰아가는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승민 씨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아까 투표 이야기를 했잖아요. 대학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총학생회 투표율이 거의 바닥입니다. 이걸 콕 집어서 알려준 게 한국으로 유학 온 다른 나라 학생들이었고요. 한국의 대학생들이 갈수록 이기적으로 변해간다고 말입니다. 물론 잘못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중국에서 유학 온 학생을 보면 '짱깨', 피부 색깔에 따라 너는 화이트 너는 블랙, 이런 식으로 유학생들을 대했으니까요.”


  호주에서 잠깐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승민 씨에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누구나 토목, 목공, 전자, 자동차 엔진 구조 등을 배운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사회에 나가 스스로 밥을 벌어먹을 수 있도록 교육받는 것이었다.


  “서울을 몇 차례 오르내리면서 알게 되었죠. 지방 대학 학생들이 왜 서울로 떠나려 하는지를.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은 정보에서 벌써 급이 다르지 뭡니까. 헤비급과 밴텀급 선수를 한 링에 올려놓은 것과 같았다 할까요. 지방에서 접하는 취업 정보라 해야 9시 뉴스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란 말이죠.”


  하지만 승민 씨는 그 대열에 끼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제 종강도 했으니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부터 할 거라며.

  “여유가??대를 받아야 한다면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직은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란 말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안타깝지만, 청주에서 만난 대학생 6명 중 취업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은 정희원(서원대학교 호텔외식조리학과 3학년) 씨뿐이었다. 다만 희원 씨는 지난해부터 텔레비전에 음식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취업 경쟁률이 높아졌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박영희 님은 시인·르포작가로 르포집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등이 있으며, 최근 중국 연변 조선족 교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르포집 <두만강 중학교> 여행에세이 <하얼빈 할빈 하르빈>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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