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6.07] 게의 공격

글 박애진 그림 조승연

 

게의 공격



옛날옛날 어떤 마을에 한 청년이 살았습니다. 청년은 마을 여자들과 남자들이 때로 사이좋게 거닐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청년은 여자들이 자신에게는 말을 걸지 않고, 자신이 다가가면 피하는 것 같다고 여겼습니다.


  청년은 여자들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거나 친근하게 굴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점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화가 난 청년은 도술을 익혀 거대한 게로 변해 마을 여자들을 공격했습니다.


  마을 여자들은 그 청년이 나타날 때면 겁먹을 뿐만 아니라 부당한 공격에 대해 화가 났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공격받은 사람들에게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녀 생긴 일이라고 했습니다. 일이 늦게 끝나거나, 일을 마친 뒤 친구들을 만나려면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으며, 밤에 다닌다는 이유로 공격받으면 안 된다고 말하자 이번에는 치마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치마를 입든, 바지를 입든 어떤 옷을 입을지는 자기 자유이며, 치마를 입었다는 이유로 공격받아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바지를 입었는데 공격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게를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생각에 갇혀 멋대로 타인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여겨서는 안 되는데도, 누군가 공격을 받으면 일단 피해자에게 어떤 잘못이 있는지를 따졌습니다.


  결국 마을 여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곰과 멧돼지를 키웠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나운 짐승을 키워 평화로운 마을을 불안하게 하느냐 나무랐습니다. 게가 날뛰며 마을은 평화로운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안전해야 하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권리가 있는데도 어떤 사람들은 피해자가 눈에 띄지 않게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게 정상처럼 보이고, 정상처럼 보이면 모든 게 정말로 괜찮으리라는 오해를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세상은 그대로 있거나 때로 더 나빠집니다. 노예 제도 폐지도, 여성 참정권도, 민주화도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주어진 적은 없습니다.


  곰과 멧돼지는 무럭무럭 자라 힘을 키우고는 게를 퇴치하러 게가 사는 동굴로 갔습니다. 게는 곰과 멧돼지를 이기지 못해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지만, 이 평화를 정착시키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게 하나가 벌인 일일 뿐인데 왜 다른 사람들까지 그 일로 인해 불편해져야 하느냐고 합니다. 그건 사회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는 다만 한 사람만의 문제나 잘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회 전반으로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은 없는지 고심해야 합니다.


  먼저 일상적으로 하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무심코 던지는 말에 편견과 폭력의 메시지가 있지는 않은지요. 편견과 폭력은 또 다른 편견과 폭력을 낳습니다.


  사람들은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괴롭히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자칫 괴롭힘 당하는 걸 수용하라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좋아하면 친절하게 대하는 게 정상입니다. 괴롭히는 건 이유가 무엇이든 괴롭히는 행위이며, 그런 행위는 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하고, 괴롭힘 당하는 사람에게 괴롭히는 사람을 무작정 이해하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살아가다 보면 세상에 대해 박탈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을 탓하며, 타인에게 분노를 돌리는 게 아니라 왜 박탈감을 주는 사회가 되었는지 생각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작게는 일상에서 편견과 잘못된 기대를 확산하거나 재생산하지는 않는지 돌아보고, 크게는 올바른 체제가 성립하도록 노력할 때, 누구나 사람으로 태어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며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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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진 님은 환상문학ㆍ과학소설 작가로 장편소설 <지우전-모두 나를 칼이라 했다> <부엉이소녀 욜란드>, 작품집<각인>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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