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깊이읽기 [2023.01] 국가기관 최초의 의견표명에 담긴 4가지 제언
글. 지현영(법무법인 (유)지평 변호사)
기후정의를 위한 행진 ‘오늘도 기후바람은 순풍’ _ 2022. 4. 30(제공: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위기를 인권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행동하는 기후위기인권그룹 출범
기후위기인권그룹은 기후위기를 인권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행동하자는 취지에서 결합하게 된 연대조직이다. 2020년 가을 녹색연합, 녹색법률센터, 다산인권센터, 사단법인 두루, 인권운동사랑방, 청소년기후행동과 같은 다양한 단체가 함께 뜻을 모았다.
기후위기인권그룹은 첫 번째 기획으로 2016년 필리핀에서 환경단체와 피해자들이 필리핀 인권위원회를 상대로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를 주장하며 청원한 사건에 대한 스터디를 시작했다. 이는 2013년 태풍 하이옌으로 필리핀에서 약 8천여 명이 사망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사람과 삶의 터전을 잃자, ‘이러한 비극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 사건이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이 있는 47개의 글로벌 화석연료 기업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의 청원을 받아들인 필리핀 국가인권위원회는 영국 런던, 미국 뉴욕, 필리핀 마닐라 등을 찾아다니며 대상 기업들에 대한 공청회를 수년간 이어갔다. 그 결과 필리핀 국가인권위원회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등 세계 무대에서 이들 기업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중요한 발언들을 이어 나갔다. 2022년 5월에 최종적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국가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주요 탄소배출 기업들뿐 아니라 각국 정부, 투자자 등도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해야 할 도덕적, 법적 의무”를 진다고 밝혔다.
기후위기인권그룹이 주최한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증언대회’ _ 2020. 11. 26(제공: 녹색연합)
이러한 스터디를 바탕으로, 기후위기인권그룹은 2020년 11월 말 두 번째 기획으로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증언대회’를 준비했다. 국내에서도 기후위기로 인해 인권침해를 받고 있는 당사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증언대회를 바탕으로, 12월 말 국가인권위원회에 기후변화로 인한 인권침해를 주장하는 최초의 진정을 접수했다. 당시, 농업인, 가스검침원, 방송노동자, 건설노동자, 해수면 상승지역 거주민, 기후우울증 피해자 등 41명이 진정에 참여했다. 환경단체와 인권단체가 기후위기 문제에 관해 공통의 아젠다를 정하고 협력한 첫 진정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기후위기를 인권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당시 진정을 준비하며 깨달았던 점은 기후위기 취약계층 당사자가 자신을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자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농민의 경우 기후의 변화와 심각함은 그 누구보다 절박하게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는 반면, 이것을 인권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다. 노동자는 날씨에 영향을 받는 노동환경에 따라 건강과 직업의 자유에 제약을 느끼지만, 기후위기라는 개념을 낯설어했다. 국내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라는 논의는 사회 전반에 걸쳐 낯설고 설익은 주제였다. 이에 기후위기인권그룹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권리침해를 인정하는 것 외에 인권에 관한 최고기관으로서 관련 주제에 관해 연구하고, 의견 표명을 통해 이 사회에서 논의의 불씨가 지펴질 수 있도록 도화선이 되어줄 것을 요구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인식과 국내외 정책 동향 실태조사』라는 주제의 연구를 발주하였고, 사단법인 두루와 법무법인 (유)지평에서 이를 수행하게 되었다. 연구진들은 기후위기인권그룹에서 진정을 진행하며 느꼈던 한계와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최대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실태조사에 생생히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정책적 제언을 제시하였는데, 여기에서는 4가지 정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기후위기로 인한 취약계층이라는 개념의 정의가 필요하다. 흔히 취약계층은 개인의 사회적 위치, 생애과정, 사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정의된다. 주로 장애인, 여성, 노인 등 사회적 소수자나 빈곤층 등 경제적 약자가 취약계층에 해당한다. 그러나 기후위기로 인한 취약계층은 일반적 취약계층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예컨대 진정에 참여한 해운대구에 거주하는 주민의 경우 일반적 취약계층에 속하지는 않지만, 기후위기에 취약한 해안가에 거주하기 때문에 기후위기로 인한 취약계층에 해당할 수 있다. 또한 일반적인 청소년은 취약계층으로 간주하기 힘들지만, 세대 간 불평등의 관점에서 보면 청소년 또한 기후위기 취약계층으로 이해하고 관련 대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한 누가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해당하는가, 라는 아젠다에 대해 더 폭넓은 고민을 통한 포섭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실태조사 자체가 매우 편협한 범주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대책 또한 포괄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로, 적응 정책의 중요성이다. 기후변화 정책은 감축(완화)과 적응으로 나뉘는데, 그동안 국내에서 기후변화 정책은 감축 쪽에 집중되어 그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기후변화의 영향이 점점 광범위하게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감축뿐 아니라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는 정책도 집중적으로 개발될 필요가 있다. 특히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는 취약계층을 당장 보호하고 권리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은 적응정책이다.
세 번째로 기후위기에 대한 적응정책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더 큰 권한을 갖고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완벽한 방재로 접근하는 기존의 중앙집권적 재난 대응 방식은 발생과 피해가 예측 불가능한 성격의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 피해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지역의 자원과 취약점을 잘 알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대책을 세우고, 자원을 활용하여 피해를 구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후위기 시대에서 노동의 의미는 재정의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변화한 여름과 겨울의 야외노동 환경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노동 강도를 요구받고 있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사고와 분쟁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노동자들은 그로 인한 피해를 개인적 손해로 감수하고 있었다. 이는 개별 기업들에게 변화를 요구할 문제가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따른 노동정책을 재정의할 문제이다.
2022년 12월 말, 국가인권위원회는 마침내 정부를 상대로 기후위기를 인권 관점에서 접근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 표명을 했다. 매우 유의미한 결정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각 정부 부처에 보다 구체적인 정책들을 제언하고, 변화를 끌어내 주기를 기대한다.
지현영 법무법인 (유)지평 변호사는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 기후대기분과 위원, 환경운동연합 중앙위원회 위원으로서 기후위기와 인권의 문제 해결을 위한 적응정책 수립의 중요성에 대해 알리고 있으며,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인식과 국내·외 정책 동향 실태조사』, 『사람 중심 ESG를 말한다』 연구 등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