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가 말하다
[통권158호 2025년 5월*6월.05~06]
#2 노인 인권을 위한 국제적 리더십:
GANHRI 고령화실무그룹 의장으로서의 여정
2025년 3월 13일, 제네바 국제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2025년 상반기 GANHRI 고령화실무그룹 회의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었다. 유엔 노인인권독립전문가, 노인인권 시민사회단체, GANHRI 사무국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석하는 회의였지만, 이번에는 역대 최다인 24개 인권기구(회원 기구 6, 옵저버 18)가 참여하여 그 열기를 더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회의 안건이었다. 뉴욕에서 제네바로 옮겨온 유엔 고령화실무그룹의 논의에 발맞춰, 제네바에서 국가인권기구들이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 공유가 이루어졌다. 또한, GANHRI 연례회의와 동시에 진행 중이던 제58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상정된 노인권리협약 제정을 위한 실무그룹 결의안에 대한 비공식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국가인권기구들이 처음으로 유엔 인권이사회 결의안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되었다. GANHRI는 각국 정부 대표단과 NGO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결의안 상정 전 국가 간 의견 조율 회의(informals)에 참여하는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 고령화실무그룹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의견 조율 회의에 참석하여 국가인권기구들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최종 결의안에 그 내용이 반영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성과는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지난 9년간 국가인권기구들이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온 노력의 결실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노인 인권은 국가인권기구들이 주도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이끌어가는 몇 안 되는, 어쩌면 유일한 분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국 국가인권위원회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왜 노인 인권인가?
2024년 유엔이 발표한 세계인구전망에 따르면, 전 세계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24년 10.2%에서 2072년 20.3%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2011년 유엔 사무총장 보고서는 전 세계적으로 노인들이 연령차별, 학대, 빈곤, 부적절한 생활 환경 및 서비스 부족 등 심각한 인권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은 고령화의 영향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2024년부터 2072년까지 전 세계 고령 인구 증가율은 10.1%인 반면, 한국은 19.2%에서 47.7%로 25.8%나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72년 한국의 고령 인구 비율은 홍콩, 푸에르토리코에 이어 세계 3위로 예상되며, 일본(36.9%)과 중국(40.6%)보다 훨씬 높은 수치이다.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서 노인 문제에 대한 시급한 대응이 필요한 이유이다.
실제로 한국 노인들의 상황은 심각하다.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38.3%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지만, 노인 빈곤율은 OECD 평균보다 3배 가까이 높다. 이는 대부분의 노인이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여 의미 있는 소득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대수명은 83.5세이지만 건강수명은 66.3세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노인 돌봄' 문제는 초고령 사회를 앞둔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2009년부터 당사자 중심의 노인 인권 사업인 '노인인권지킴이단'을 운영하며 노인 스스로 인권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도록 지원했다. 또한, 통·이장 위촉, 공공 영역 업무 위탁, 아파트 입주자 대표, 교육 훈련생 모집 등에서 연령 제한을 두는 관행에 대해 '나이보다는 업무 수행 능력 자체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인권적 기준을 제시하며 사회적 인식 변화를 촉구해 왔다. 이는 노인을 단순한 부양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국제 사회에서 노인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국제적 연대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노력 또한 국내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GANHRI 고령화실무그룹 의장으로서의 활동
GANHRI 내 고령화실무그룹은 2016년 출범했다. 당시에는 장애, 기업과 인권 정도만이 GANHRI 내 실무그룹으로 운영되었고, 지속가능개발목표(SDG) 실무그룹조차 고령화실무그룹 출범 이후 사라졌을 정도인데, 국제 사회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노인인권의제로 고령화실무그룹이 설립되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2015년 아셈 노인인권 콘퍼런스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국내외에 노인 인권의 중요성을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3월, GANHRI 고령화실무그룹(WG-HROP)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초기 2년 임기 동안 네 번이나 더 재선출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지난 9년간 국가인권위원회는 국제 사회에서 노인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협력을 이끌어내며 GANHRI 고령화실무그룹 의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국제 노인 인권 의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때로는 논의를 주도하며 영향력을 확대해 온 것이다.
GANHRI 고령화실무그룹 의장으로서 한국 국가인권위원회가 가장 핵심적으로 수행한 역할은 노인 인권과 관련된 유엔 노인인권독립전문가, 유엔 관련 기구, 국제 NGO 및 전문가들에게 국제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해준 것이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개최된 '노인 인권 국제 콘퍼런스'는 아셈 노인인권 전문가 포럼, GANHRI 노인인권 특별회의, 전문가 포럼, 아셈 노인인권정책센터 운영을 위한 라운드 테이블 등으로 구성되어 전 세계 약 200여 명의 전문가들이 국제 노인 인권 관련 동향과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2022년에는 '유엔 노인권리협약 제정을 위한 국제회의'를 개최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마련한 '유엔 노인권리협약 초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GANHRI 고령화실무그룹 회의와 국제 콘퍼런스를 통해 전문가 논의를 심화시켰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국제 노인 인권 논의에서 중요한 이해관계자로 자리매김하고 국가인권기구의 역할을 부각할 수 있었다.
2017년 유엔 고령화실무그룹이 국가인권기구에 옵저버 자격을 부여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전에는 제네바 유엔 인권이사회나 유엔 인권 조약 관련 사안이 아니면 유엔의 다른 논의에서 국가인권기구의 참여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 12월 제7차 유엔 고령화실무그룹 회의부터 국가인권기구의 공식 참여가 인정되었고, 이에 GANHRI 고령화실무그룹 의장인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2024년 제14차 회의까지 모든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노인 인권 의제의 국제적 공론화와 노인권리협약 제정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힘썼다. 이 외에도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지지부진한 노인권리협약 논의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국내 전문가들과 TF를 구성하여 노인권리협약 초안을 마련하고 2022년 국제 노인 인권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3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워크숍을 개최하여 아시아·태평양 국가인권기구들의 의견을 수렴했으며, 2024년 제14차 유엔 고령화실무그룹 회의 GANHRI 부대 행사에서 이를 발표했다. 또한, 국가인권기구들이 스스로 노인 인권 보호 및 증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2023년 11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GANHRI 집행이사회에서 노인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고 GANHRI 차원의 공동 노력을 촉구했다. 그 결과, GANHRI 고령화실무그룹은 GANHRI 차원의 노인인권정책지침서 작성 업무를 부여받았고, 60개 회원국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국가인권기구들이 노인 인권 보호 및 증진에 필요한 사항을 담은 GANHRI 노인인권정책지침서를 마련하여 2024년 GANHRI 집행이사회의 승인을 받았다. 이는 노인 인권 보호가 국가인권기구의 역할임을 인식시키고 노인권리협약 제정에 대한 국가인권기구들의 지지를 결집하는 데 기여했다.
올해 3월 10일, GANHRI 상반기 고령화실무그룹 회의 개최 3일 전, 한국 인권위원회는 GANHRI 고령화실무그룹 의장 자격으로 대한민국, 슬로베니아, 필리핀, 조지아 유엔 대표부와 공동으로 GANHRI 연례회의 및 제58차 인권이사회 부대 행사를 개최했다. '선두에 선 국가인권기구: 노인권리협약의 진전을 위한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와의 협력 강화'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부대 행사에는 뉴욕에서 제네바로 옮겨온 노인 인권 의제의 배경을 설명하고, 제네바에서 노인권리협약 제정을 위해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국가인권기구, 각국 제네바 대표부, 시민사회단체 등 약 120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된 이번 행사는 그동안 한국 인권위원회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앞으로의 추진 방향
제58차 유엔 인권이사회가 마무리되는 4월 2일, 우리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노인권리협약 제정을 위한 정부 간 실무그룹 구성 결의안이 통과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결의안이 통과된다면 지난 14년간 유엔 고령화실무그룹의 활동이 결실을 맺는 것이기에 매우 기쁘겠지만, 동시에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여정은 그 어떤 국가인권기구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우리는 새롭게 길을 개척해야 한다. 다행히 혼자가 아니다. 그동안 GANHRI 고령화실무그룹 회원 기구뿐만 아니라 이 활동에 관심을 가진 동료 국가인권기구들이 생겨났고,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인권 시민사회단체 동료들도 있으며, 관련 유엔 기구들과도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처음 가는 길을 혼자 가야 했다면 막막하고 두려웠겠지만, 다소 막막한 마음은 있어도 두렵지는 않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바라보며,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GANHRI 고령화실무그룹 의장으로서 노인권리협약 제정 과정에서 국가인권기구들을 이끌고 의견을 모으며, 적극적으로 '노인인권협약' 제정 의제를 제시하는 등 국제적으로 노인 인권 의제를 선도하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나갈 것이다.
약어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 (GANHRI, Global Alliance of the National Human Rights Institutions)
유엔 고령화실무그룹 (UN Open-ended Working Group on Ageing, OWEGA)
글 | 박유경(국제인권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