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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돌봄 [2025.09~10] 청년, 이행기의 어려움

 

지역에 영케어러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때였다. 한 영케어러는 이렇게 말했다.“맨날 회사에서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갈굼만 당하다가 어머니가 쓰러져서 간병을 하는데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일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때다 싶었어요. 저도 어머니 돌보면서 저 자신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말이 던지는 울림은 단순하지 않았다. 한두 명씩 동조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그랬노라고 말했다. 정말 돌봄이 편해서일까? 아니다. 아픈 이를 돌보느라 잠도 못자고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들은 차라리 낮은 임금과 처우, 비인간적인 대우를 견디느니 외려 돌봄을 부담하는 게 숨통이 트인다고 답했다. 이들의 말은 오늘날 청년들이 이행기에 겪는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지 모른다.

 

청년, 이행기의 어려움

 

청년세대 내 불평등GENERATIONAL

 

청년기를 이행기라고 한다. 성인이 되고 경제적 자립으로 이행하는 시기라는 뜻이다. 저성장에 들어서 이행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여러 직업훈련과 자격증 취득, 얼마 없는 양질의 일자리에 진입하고자 해야 하는 노력들이 많아지면서 미취업 기간도 길어졌다. 그러나 그렇게 양질의 일자리에 진입할 수 있는 이들도 극소수다. 대기업 정규직, 공무원, 전문직에 진입한 일부는 안정적 소득과 주거를 확보하지만, 상당수는 비정규직, 플랫폼노동, 단기 알바로 생계를 잇는다. 취업 여부와 직종, 부모 배경에 따라 청년 내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최근 국민연금 문제는 배고픈 청년세대와 배부른 중년세대의 갈등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빈곤은 세대 간에 얽히고 설켰다. 부모세대의 빈곤은 자녀에게 대물림되고, 계속해서 불안정에 시달리는 자녀세대를 부양하는 부모세대는 빈곤이 되올림되는 상황을 겪는다. 부모 세대의 노후빈곤은 자녀 세대의 돌봄 부담과 경제적 압박으로 전가된다. 다시 말해, 노년빈곤은 청년빈곤을 재생산하는 경로가 된다.

 

청년빈곤과 노년빈곤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세대별로 모양은 다르지만, 불안정 노동, 공공 돌봄의 부재, 부의 세습 구조가 그 뿌리다. 청년이 부모를 부양하다가 자신의 경제적 기회를 잃고, 그 결과 또다시 빈곤한 노년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빈곤과 외로움

 

경제적 어려움은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킨다. 돈이 없으면 사람을 만나는 일, 취미를 즐기는 일, 심지어 병원에 가는 일조차 망설여진다. 빈곤은 단지 통장 잔고의 문제를 넘어, 관계망의 붕괴로 이어진다. 주거 불안정, 고용 불안정, 돌봄 부담, 사회적 고립이 동시에 얽혀 있다.

 

정치철학자 김만권은 ‘자기책임의 윤리’로 포장된 각자도생의 세계가 이러한 외로움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2018년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의 응답자 26%가 ‘자주, 거의 항상 외롭다’고 답했다. 20대의 응답자 중 40%가 상시적 외로움을 호소했다. 30대의 29%, 40대의 25%, 50대의 20%, 60대의 17%보다 20대의 외로움 비중이 높았다. 2022년 서울시 1인 가구 실태조사에서는 서울의 1인 가구 청년 62%가 외로움을 느끼고, 13.6%는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다. 약 13만 명은 극단적 고립 상태에 있다는 추정도 있다. 소득이 낮을수록 스트레스, 우울, 자살 생각 비율이 모두 뚜렷하게 높아진다. 빈곤은 마음까지 잠식하는 병이다.

 

 

물질적 안전망과 비물질적 안전망

 

돌봄 부담이 ‘쉼’이 되고, 불안정이 ‘일상’이 되는 사회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청년의 이행기가 무너지는 순간, 그 사회의 미래도 함께 붕괴한다. 이 문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경고음이다.

 

청년빈곤의 문제를 물질적 지원과 비물질적 지원으로 상상해보자. 소득 지원, 주거 지원, 일자리 지원 등과 같은 물질적인 안전망이 더욱 확충되어야 한다. 그와 더불어 비물질적인 안전망도 필요하다. 이를테면 꿈, 미래, 더 나은 생애 전망, 양질의 관계망은 비물질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비물질적인 것들을 권리로서 보장하는 것은 쉽게 상상하지 않는다. 청년빈곤의 문제는 물질적인 빈곤 뿐 아니라 비물질적인 빈곤도 포괄하기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는 청년의 권리를 더 넓혀서 상상해야 한다.

 

청년, 이행기의 어려움

 

 

글 | 조기현(작가)
본지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우리 위원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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