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가 말하다 [2025.09~10] #1 골프클럽 나이 차별 시정 권고
어느새 칠순을 지나온 나. 요즘 친구들이랑 라운딩을 자주 나가다 보니 골프 회원권에 관심이 생겼다. 친구들이 이미 회원으로 있는 골프클럽에 입회하려고 물어보니 ‘70세 이상은 입회할 수 없다’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동갑내기 친구들도 여전히 회원권을 갖고 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규 입회만 할 수 없다고 한다. 내 나이가 일흔이 넘었다는 이유로 골프클럽 입회를 못 하는 이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과연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호소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 속 ‘나’는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최근 인권위가 70세 이상의 입회를 제한하는 골프클럽에 나이 차별(ageism)을 시정하도록 권고하였기 때문이다.
나이 차별의 합리성?
이 골프클럽은 급경사지로 인해 70세 이상 이용자의 사고 위험도가 높아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 입회를 제한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인권위가 조사한 결과, 70세 이상 회원이 전체 회원의 절반에 달하는 한편, 최근 3년간 발생한 사고 중 70세 이상 이용자 비율이 13.6%에 불과하였고, 나머지 86.4%는 70세 미만 이용자에서 발생하였다. 이에 인권위는 고령과 사고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거나 고령과 사고 위험이 정비례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기존 회원이 70세를 지나더라도 그 자격이 소멸하지 않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인권위는 사고 예방이라는 목적과 70세 이상의 신규 입회 제한이라는 수단이 모순된다고 보았다.
평등권과 사적 자치권의 충돌?
이 골프클럽은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입회 대상을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도 주장하였다. 이에 인권위는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경영 자율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가 법령에 위배되거나 현저히 합리성을 잃어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남용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해석하면서, 사고 예방의 목적은 정당하나 70세라는 특정 나이만을 기준으로 입회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방법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반면에 인권위는 이 골프클럽이 나이를 제한하기보다 보험 보장을 확대하고 그 비용을 회원과 같이 부담하거나 안전 교육 및 홍보를 강화하는 등 더욱 합리적인 수단을 통해 사고 예방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 골프클럽이 나이 제한을 시정하게 되더라도 자율적인 경영활동이 충분히 보장된다고 할 수 있는 만큼 기업경영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노인의 문화향유권!
이번 인권위의 권고는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오늘날, 노인의 보편적 인권으로서 ‘문화와 여가를 향유할 권리’를 명시한 데 그 의의가 있다. 이는 1948년에 발효된 「세계인권선언」에서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며 예술을 향유하고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제27조제1항)’고 규정하고, 우리나라가 1990년에 가입한 유엔(UN)의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사회권규약)에서 모든 사람의 문화생활(cultural life)1)에 참여할 권리(제15조제1항a)를 인정하도록 하며, 유엔 총회가 1991년에 채택한 「노인을 위한 유엔 원칙」에서 ‘노인은 사회의 교육적, 문화적, 정신적 자원 및 여가를 위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제16조)’고 규정한 국제인권규범의 흐름과도 그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며
예술을 향유하고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
노인 인권은 오늘 마주하는
내일의 ‘나’에 대한 이야기다.
노인 인권=나의 인권
노인 인권은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떠오르고 있는 중요한 화두로, 우리나라 인권위는 2016년부터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고령화 실무그룹의 의장기구로서 노인권리협약 초안을 발표하는 등 그 선두에서 활약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열거하고 있는 19가지의 차별금지사유를 살펴보면, 그중 ‘나이’는 모든 사람이 경험하였고, 경험하고 있고, 경험할 것이라는 점에서 가장 보편적인 속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노인 인권은 오늘 마주하는 내일의 ‘나’에 대한 이야기다. 과거가 현재를 돕는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현재가 미래를 도울 수 있도록 ‘나’의 인권으로서 노인 인권을 함께 이야기하자.
1) 유엔 사회권위원회 일반논평 제21호(2009)에 따르면, 문화란 무엇보다도 생활방식, 언어, 구비문학과 기록문학, 음악과 노래, 비언어적 의사소통, 종교 또는 신념체계, 의례와 격식, 스포츠와 게임, 생산방법 또는 기술, 자연환경과 인위적 환경, 의식주, 예술, 관습과 전통을 포괄한다고 보는데, 이것들을 통해 개인과 개인들이 이룬 집단 및 공동체는 그들의 인간성과 스스로 자신들의 존재에 부여하는 의미를 표현하고,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세력과의 만남을 나타내는 세계관을 구축하며, 문화는 개인과 개인들의 집단 및 공동체의 안녕의 가치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생활을 형성하고 반영한다고 함.
글 | 이성용(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총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