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가 말하다 [2025.09~10] #3 귀를 기울이니 한 걸음 다가왔다
둘이 하나 되는 이야기
2025년 7월12일~13일 무척이나 덥고 습한 한여름의 주말 북한인권팀은 또 저질렀다. 내 하나뿐인 팀원 돌격대장 오숙현 북한인권전문관과 꼭 닮은 성향의 나는 때때로 저지르곤 한다. 2025년 7월 8일도 그랬다.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맞아 ‘상담 부스를 운영하자’라는 나의 말에 친애하는 돌격대장님이 동조의 시그널을 보낸다. 우리는 그날로 계획을 세워 통일부로 갔다.
원래 행사 부스는 북한 업무 관련 기관과 단체 등이 주로 신청하기에 인권위 몫은 없었다. 하지만 행사 당일 구석에 책상 하나 놓을 수 있도록 사정해 볼 요량으로 무작정 명함을 내밀었다. 두둥!! 기적이 일어났다. 행사를 다섯 날도 남겨두지 않았는데 배정받는 기관 하나가 불참을 통보했단다. 통일부 정착지원과 하무진 과장님 덕분에 인권위가 상담하기 딱 좋은 바로 그 자리에 설치된 부스를 차지하게 되었다. 9회 말 만루 투아웃 상황에 역전 홈런 타자가 된 기분이다.
7월 12일과 13일,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맞아 열린 시민참여 문화행사는 한여름에도 불구하고 포근함이 느껴졌다. 행사장 곳곳에는 “서로 다른 길, 하나의 내일”이라는 슬로건처럼 다채로운 이야기와 만남,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 스토리, 탈북민 창업 플리마켓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꿈과 가능성, 그리고 문화예술 공연장의 감동이 곳곳을 가득 메웠고 부스 별로 서로 다름과 어울어짐을 경험하였다. 특히, 조기 매진 품절 대란의 인기상품인 아바이순대와 인조고기밥을 나눠먹으며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만들어 갔다.
“서로 다른 길, 하나의 내일을 향해 모인 우리의 공간.”
“인권상담 여기어때, 우리는 소통 중”
행사장 한 편, 인권위는 인권상담 및 진정안내 부스를 운영했다. 처음엔 먹거리, 볼거리 많은 행사장은 북적이는 반면, 인권상담 부스 앞에는 머뭇거리던 이들만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한 80을 넘기신 실향민 노부부가 조심스레 발걸음을 들였다. 처음엔 낯설고 쑥스러워 문턱을 넘기 어려웠던 듯, 몇 번이나 부스 근처를 서성이다가, 상담 의자에 앉았다. 드디어 상담 개시! 우리(북한인권상담)팀 비장의 무기 14년 베테랑 상담사 박주은 님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박주은 선생님의 상담은 정말 옆에서 보면 경이롭다. 경청은 기본이고 답답한 속내를 읽어내고 상대가 말하게 하는 신묘한 재능을 타고나신 분이다. 누구라도 주은 선생님과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조심스레 본인의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고 만다. 노부부도 그랬다. 처음은 어색한 말투로 기관에 대한 분석을 이어가시다가 어느 순간 북한 고향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때때로 이들이 주고받는 북한 말이 정겹기만 하다. 어느새 어르신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고향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위 시선도 잊은 채, 옛 추억과 사투리를 쏟아내기도 하셨다. 홍보용으로 나눠드린 필통과 엽서 효과일까? 우리의 진심이 상담 맛집으로 입소문난 것일까? 차츰 상담석에 앉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상담은 사연에 따라 1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남과 북의 오랜 분단의 세월 탓도 있겠지만, 인권 분야의 용어가 익숙하지 않아, 상담할 때 우리 위원회에서 일상적인 용어를 낯설어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이러한 어려움을 말씀하시는 분들에게는 ‘진정서’ 대신 ‘도움을 청하는 내용’, ‘인권침해’는 ‘권리가 보호받지 못하고 지켜지지 않은 일’ ‘차별행위’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대우하는 것’으로 세심하게 고쳐서 상담에 임했다. 덕분에 북한이탈주민들은 낯선 상담 환경에서도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에피소드로, 한 북한이탈주민은 “남쪽에 와서 ‘부당한 일’이 생겨도 어떻게 호소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상담원이 직접 내 사연을 듣고 쉬운 말로 정리해 줬을 때 처음으로 내 목소리가 응답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상담자는 겉으론 괜찮은 척했지만, 직장에서 반복되는 따돌림과 부당한 업무 분배 때문에 힘들었다며 “상담 부스에서 ‘이런 일이 인권침해일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처음으로 내 고통이 사회적 문제일 수 있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인권 상담은 여기 어때’
“인권위원회 말로만 들었는데, 이제는 내 이야기로.”
올해 북한이탈주민의 날 행사 현장에서는 이런 마음 소통과 만남이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누군가는 북한이탈주민 공연을 감상하며 미래의 통일을 상상했고, 또 다른 이는 북한 음식 한 점에 오래된 추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인권위 상담 부스에서는, 잠깐의 망설임 끝에 다시 피어난 고향 말 한마디가, 마음의 거리마저 좁혔다.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 성명
행사 다음 날인 7월 14일 국가인권위원장은 ‘제2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일에 맞춰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이 취업, 교육, 주거 등 일상에서 여전히 수많은 장벽과 편견을 경험하고,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고립감을 겪고 있음을 짚고 있다. 그 메시지는 깊고 울림이 있다. 또한, 실제로 북한이탈주민이 마주하는 차별은 단순한 지원으로 해결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임을 강조하며 “북한이탈주민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라는 선언을 통해, 차별과 배제를 넘어 포용으로 나아가자는 사회적 책임을 일깨우는 인권위의 촉구였다. 과거의 탈북이라는 고통스러웠던 경험의 과정이 아닌, ‘지금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에 집중하며, 남과 북 모두가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함께할 수 있길 바라는 뜻을 담은 것이다.
마무리, 그리고 버무리
이번 행사는 단순히 특정 집단을 위한 기념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공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공존은 단순히 같은 공간에 섞여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담 부스에서 나눈 조심스럽고도 진솔한 이야기들과 기념 성명에서의 존엄한 공존의 의미가 잘 버무려진 상호이해와 공감, 그리고 연대, 조화롭고 자연스러운 통합과 교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함께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개선해야 할 것도 많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시작된 작은 대화와 만남들이 모여 변화는 시작되었다.
“함께라는 이름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1) 출처: 통일부, 2025년 1분기 북한이탈주민 입국현황
2) 출처: 통일부, 2025년 1분기 북한이탈주민 입국현황
글 | 권도연(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