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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17.03]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입증책임은 상대방에게 있다

글 김태형

 

청각장애인 차별 교육기관 상대 승소!

법원, "차별하지 않았다, 입증책임 상대방에게 있어"

"권리구제 한층 쉬워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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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비장애인의 동등한 권익을 위한 한 걸음


지난 2017년 2월 9일,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5가합519728). 2급 청각장애인(이하 ‘원고’)이 서울시가 설립한 직업교육훈련기관의 교육훈련생 선발과정에 지원했다 불합격했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서 500만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원고는 면접을 볼 때 아무런 편의도 제공받지 못했고 결국 장애를 이유로 선발과정에서 불합격되었다며 차별행위를 주장했는데, 법원은 원고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원고가 사전에 해당 기관 담당자에게 장애가 있음을 알리며 지원이 가능한지 문의하고 음성을 문자로 변환하는 장치 등을 요청했으나, 해당 기관은 지원자가 많다는 등의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면접관조차도 장애인 지원 여부를 면접 당일에야 알았다고 합니다. 원고는 면접일에 동행한 배우자를 통해 면접관의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을 면접관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면접을 보았는데, 이러한 방식이 면접관과 1:1로 직접 의사소통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분명함에도 면접시간은 연장되지 않았습니다. 배우자와 함께 면접실에 입실한 것, 배우자의 출근을 위해 면접시간을 조정해 달라고 요청해서 받아들여진 것이 전부였습니다.


위 판결이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두 번째 쟁점, 즉 장애를 이유로 선발과정에서 불합격된 것이 차별행위인지, 차별행위를 주장하면서 소송에서 다투려면 장애를 이유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원고가 어떤 사실까지 증명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법원이 내린 결론입니다. 일반 민사손해배상 사건에서는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원고가 불법행위, 손해발생,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모두 주장하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해야 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도 “누구든지 이 법의 규정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사람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진다(제46조 제1항)”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 제47조에서 별도로 “이 법률과 관련한 분쟁해결에 있어서 차별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차별행위를 당하였다고 주장하는 자가 입증하여야 한다(제1항)”, “제1항에 따른 차별행위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아니라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점은 차별행위를 당하였다고 주장하는 자의 상대방이 입증하여야 한다(제2항)”고 하여 증명책임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증명책임이란 소송에서 증명을 필요로 하는 어떤 사실의 존부가 확정되지 않을 때 당해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되어 법률판단을 받게 되는 당사자 일방의 위험 또는 불이익을 말하는 것으로서, ‘차별행위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아니라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점’이 증거를 통해 명확하게 인정되지 않으면 차별행위가 있었음을 전제로 ‘차별행위를 당하였다고 주장하는 자’에게 불이익한 판결이 내려질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법률 규정 및 민사소송의 기본 체계만 놓고 보면 일반 민사법의 체계보다는 장애인에게 유리하게 보이는데, 불분명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7조 제1항에 따르더라도 ‘차별행위’는 차별을 당한 장애인이 증명해야 하는데, 같은 법 제4조 제1항은 ‘이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을 열거하면서 모두 ‘장애인’, ‘장애를 사유로’, ‘장애를 고려하지 아니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차별행위’를 정의하고 있어 장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있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원고는 단순히 자신에게 장애가 있고 면접에서 탈락한 사실만을 주장·증명하면 충분한 것인지, 더 나아가 장애 때문에 탈락했다는 사실도 증명해야 하는지 문제될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하여 법원은 “차별행위를 당하였다고 주장하는 자가 ‘장애로 인한 차별’이라거나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점에 관하여는 입증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장애인인 원고가 이 사건 선발과정에서 불합격한 사실은 앞서 기초사실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피고는 원고가 이 사건 선발과정에서 불합격한 것이 장애를 이유로 한 것이 아니라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여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제한·배제·분리·거부의 행위자는 차별행위를 당하였다고 주장하는 자의 상대방이므로, 그와 같은 차별행위가 장애를 이유로 한 것이라는 점에 관한 증거는 위 상대방에게 편재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차별행위가 장애를 이유로 한 것이라는 점을 차별행위를 당하였다고 주장하는 자에게 입증하게 하는 것은 증거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 장애인의 특수성 등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것이 법원의 논였습니다. 모든 소송에서는 원고가 승소하려면 청구원인에 관한 요건사실을 모두 주장·증명해야 하는데, 위 법리가 확립되면 ‘장애로 인한 차별’, ‘정당한 사유 없음’까지 주장·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청구가 기각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를 희망하다!


위 판결이 장애인으로 하여금 ‘장애로 인한 차별’과 ‘정당한 사유 없음’까지 증명할 책임은 없다고 판단함으로써 장애로 인한 차별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의 문턱을 낮춘 것은 분명히 큰 의미가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단순히 장애가 있고 일정한 불이익을 당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모든 분쟁에서 승소를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위 사건에서는 피고의 항변이 인정되지 않고 항소 없이 확정되어 추가 공방은 진행되지 않았으나, 일반적으로 피고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아니라는 사실’, ‘차별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면 원고 청구가 기각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증명책임이 분배되어 있기는 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단순히 제한·배제·분리·거부와 같은 사실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법률상 ‘차별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고, 상대방이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아니라는 사실’, ‘차별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면 당연히 법원에 그에 관하여 심리를 진행하므로 그 주장을 다투려면 다시 ‘장애를 이유로 차별이 있었다’거나 ‘차별에 정당한 사유가 없었다’는 주장을 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제출해야 합니다.


비록 1심 판단이기는 하지만, 위 판결에서 당초 불분명했던 부분을 정리해 줌으로써 향후 차별행위를 원인으로 한 소송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고 소송으로까지 비화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소송을 통해서라도 장애인들의 권익이 향상되고 판례 법리가 형성될 수 있으면 그 자체로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장애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법원도 더욱 전향적으로 장애인들의 권익 구제를 위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이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 목적이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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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변호사 님은 법무법인 '지평' 공익위원회 장애인권소위에서 활동 중이며 장애 문제와 관련한 여러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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