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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2017.03] <나, 다니엘 블레이크> 우리는 어쩌면 모두가 다니엘 블레이크!

글 진유정

 

마음을움직이는-2

 

며칠 전 병원에 급한 문의를 할 일이 있었다. 담당 부서로 연결하겠다는 상담원의 말이 있었지만 전화는 자꾸 엉뚱한 부서로 연결되거나 신호음만 들리다가 끊어졌다. 몇 번을 다시 걸어 겨우 제대로 연결되기까지 머릿속으로 어떤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실업급여 문의를 위해 끊임없이 전화를 거는 영화의 첫 장면. 통화 연결음은 끝이 없고 화가 난 주인공은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듯 몇 시간째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연결은 됐지만 허망한 답 아닌 답을 들었을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일상에서도 그런 경우는 허다하다. 시스템이라는 미명을 쓰고 있지만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 말이다.

 

상영된 지 벌써 몇 개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생생한 영화, , 다니엘 브레이크는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해 준 영화다. 일을 할 수 없는 심장병 환자 다니엘의 저항. 영화를 보는 내내 복지 제도의 허점에 울분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영화 안에서 나는 잊지 못할 장면들을 만났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남아있을 장면, 그리고 분명 당신의 마음도 울렸을 깊은 울림이 있는 장면을 이 지면을 통해 나누고 싶다. 그 안에는 평등을 가장한 불평등,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겉만 그럴 듯한 사회 시스템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들과 진심 어린 위로, 그래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이 있다.

 

 

이 모든 건 네 잘못이 아니야

 

상담센터에서 만나 다니엘과 인연이 된 케이티와 두 아이. 아이들만 겨우 먹이고 며칠을 굶은 케이티가 푸드뱅크에 가게 된다. 필요한 음식을 비닐 봉지에 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이제 좀 그녀의 허기가 가실 수 있겠구나 안심하고 있을 무렵 깜짝 놀랄 장면이 펼쳐졌다. 케이티가 물건들을 담다가 구석에서 통조림 하나를 따서 입에 넣는 것이 아닌가. 케이티는 곧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는 오열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지켰던 그녀가 무너지는 순간. 슈퍼마켓에서 생리대를 훔치고 들켰을 때만 해도 간신히 붙잡고 있던 자존심이 허물어지는 모습에 나 또한 마음이 먹먹해 눈물을 삼키지 조차 힘들었다. 그런 케이티에게 다니엘은 진심으로 이 모든 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위로한다.

 

그 장면에 우리나라의 현실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500원 동전을 얻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노인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온 적이 있다. 이른바 ‘500원 순례길’. OECD 국가 가운데 노인빈곤율 1위인 우리나라의 현실은 처참했다. 500원짜리 동전을 얻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고, 동전을 주는 또 다른 곳을 찾아 정신 없이 이동하는 노인들은 그렇게 받은 동전을 모아 약을 사고 밥을 먹고 전기와 수도 사용료를 낸다고 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700만 여명. 500원 동전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노년의 현실은 우리 사회에 경고 신호를 보낸다. 이제 그들의 생계 책임을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사회가 이 모든 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케이티를 위로한 다니엘이 되어주어야 할 것이다.

 

 

슬픔을 건너가게 하는 사람들

 

푸드뱅크에서 케이티에게 건넨 위로와 진심은 따뜻한 부메랑이 되어 지친 다니엘에게 돌아온다. 다니엘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이 있어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숨을 쉴 수 있었던 것 같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곁에 있어 준 케이티.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진 다니엘의 집 문을 두드리는 케이티의 딸. 그리고 컴퓨터를 쓸 줄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인터넷만 운운하는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다니엘에게 손을 내밀어준 구직센터 직원의 따뜻한 마음은 눈물겹도록 소중했다. 아주 미약할지라도 누군가를 살게 하는 그 마음들 때문에 다니엘은 모욕적이고 초라한 순간들을 간신히 건너갈 수 있게 된다. 이 영화의 힘은 여기에 있나 보다. 소시민들이 맞닥뜨린 빈곤과 실업의 문제가 결코 그들의 능력 문제만이 아니라는 날카로운 사회적 메시지는 물론 휴머니티와 진심, 연민의 시선도 잘 담아낸 것. 그 실 같은 희망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 다니엘 블레이크는 더욱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다니엘의 통쾌하고 멋진 인권 선언

 

영화 속에는 다니엘이 이 사회에 보내는 직접적인 메시지가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 고용청 담벼락에 쓴 다니엘의 통쾌한 저항은 어떤 그래피티 작품보다 멋졌다. ,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상담 전화의 구린 대기음도 바꿔라담에 쓴 메시지를 보는 순간, 나 역시도 영화 속에서 다니엘의 손을 들어 준 사람처럼 다니엘의 손을 번쩍 들어주고 싶었다. 상담 전화의 구린 대기음이라면 우리도 너무나 익숙하니까. 그리고 또 하나, 결국 스스로 읽지 못한 한 편의 메시지가 있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이웃을 도왔습니다.

자선에 기대지 않았습니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는 요구합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해 주기를.

나는 한 명의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다니엘은 그렇게 우리의 인권 선언을 대신해 주고 떠났다. 그리고 나는 궁금해졌다. 아이들을 위해 매춘 행위로까지 내몰렸던 케이티는 지금 그 일을 그만두었을까.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했을까.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을까. 웅덩이에 고인 물을 마치 춤추듯 뛰어 넘는 다니엘의 모습이 담긴 영화 포스터. 그 모습처럼 케이티가 그렇게 삶의 힘든 순간들을 넘어가고 있기를, 사회가 그녀의 인권마저 처참하게 무너뜨리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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