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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삶 [2017.05] 청년의 집, 홀로 감당하지 않기 위한 우리의 ‘계약’

글 임경지 / 일러스트 장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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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시작기호 최근 한 고시원에 사는 23명의 청년들이 하루아침에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이 사건은 청년들과 직접 계약한 조씨에게서 시작된다. 조씨는 고시원을 직접 운영하는 사람은 아니다. 조씨는 고시원의 실소유주와 계약한 후 청년들과 다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전대인이다. 그는 한 사람당 약 3천만 원에 달하는 보증금과 월세 10여만 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전대인 조씨는 9억 원에 달하는 보증금과 함께 다달이 월세를 받고도 임대인에게 지급하지 않았고, 임대인은 임대료 체납의 사유로 청년들이 살고 있는 고시원에 단수 강행과 법률사무소를 통해 명도 소송을 걸었다. 세입자들은 본래 조씨와 체결한 계약 기간이 남아 있음에도 물도 나오지 않고 나가라고 하는 임대인의 문서를 통보받은 채 살고 있다. 한 청년은 ‘21세기 단수화 시대라며 자조적인 소리를 내뱉었다.

 

이 황당한 사건은 누구의 책임인가. 당연히 중간에서 임대료를 꿀꺽 삼킨 조씨에게 가장 큰 잘못이 있는 것은 명확하다. 하지만 온전히 조씨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순간 해결의 주체 역시 피해자인 청년들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의 이면에는 조씨가 세입자들을 기만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 척박한 환경이 있다. 사건의 피해자인 대부분의 청년들은 직거래 중개 플랫폼을 이용했고 조씨와 직접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위험의 징후는 포착됐다. 조씨는 이미 임대료 체납이 상당했고,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조씨가 그의 주장대로 전대인이 아니라 임대인인 줄 알고 계약했다. 그 누구도, 임대인, 설사 전대인이라고 할지라도 임대료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세입자를 속일 것이라 생각하고 계약하지는 않으니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청년들, 즉 처음으로 독립하거나 주택임대차시장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은 계약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 사회의 주거권에 대한 낮은 인지와 접근하기 어려운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없는 조건에 놓인 시민들을 더욱 위험한 곳으로 내몰고 있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주거와 관련한 계약서를 쓰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단 한 번도 알려주지 않는다. 스스로 찾아서 해결해야 할 뿐이다. 위험이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피해자인 청년들은 관련 부처의 문을 두드렸지만 법이 없어 특별한 대책이 없다라거나, “긴급 주거 지원 대상이 되지 않아 지원할 수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혼자서 온몸으로 이 위험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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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회를 형성하고 정부를 선출하는 최소한의 이유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고 위험 속에서도 권리를 지키기 위함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우리는 사회계약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하고, 이를 토대로 현재의 세계를 구성하고 또 유지하고 있다. 사회계약론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적어도 인간의 자유, 즉 스스로를 보호하고 누군가에게 간섭을 받지 않을 자유는 어떤 정치적 지향을 가지더라도 동의하는 바다.

 

그렇다면 이 사건 역시 국가와 계약한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책임의 양상은 달라진다. 계약이란 개인 간의 필요를 바탕으로 한 합의의 산물이다. 이에 따라 시민은 국가에 권리를 요구하고 국가는 오롯이 이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주거권 역시 이에 대응해 국가가 시민에게 보장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집이라고 하는 인간의 필수적인 삶의 조건을 중심으로 맺어지는 계약에 대해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개인 간의 거래이기에 민법에서만 다뤄지고 있는데, 독일의 경우 임대료를 급등시키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임대차기간을 종료할 때에는 형법으로 다뤄 인간의 필수 조건인 집에 관해서는 엄격하게 다루며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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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임대차계약에서 세입자는 사회경제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에 부당한 상황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집에 관한 정보의 비대칭성은 물론 임대료, 임대기간 역시 세입자의 요구가 들어갈 틈은 없다. 이는 곧 임대인과 세입자, 둘 사이가 아닌, 사회적 상황에 의거해 동등한 계약을 맺을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국가와 계약한 시민, 즉 모든 시민은 동등한 권리를 평등하게 지닌다는 개념에 기초한다면 국가는 불평등한 계약을 개선할 의무를 지닌다. 이에 인간의 기본권인 집을 중개하는 플랫폼의 공공성 보장과 평등한 임대차계약을 위한 계약서의 개선과 관련 서류의 필수 열람 등과 같은 제도적 보완은 반드시 필요하다.

 

권리 구제 또한 정부가 깊이 숙고해야 하는 지점이다. ‘관련법이 없어 지원할 수 없다또는 지원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말로 피해자의 고통을 방치하는 상황을 이번 사건에서처럼 우리는 종종 마주한다. 하지만 권리가 법이고 법이 곧 권리다. 개인은 권리의 집합이기에 법 앞에 평등한 것이다. 법을 보통 외적 규제로 생각하는데 개개인들이 권리를 갖고 있고 그것을 집합해서 모아놓은 것이 곧 법이다. 이것이 권리 이해의 핵심이다. 따라서 권리보다 우선한 법은 없다.

 

한편,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며 시민에게 스스로의 권리 보장의 책임을 돌리는 주장이 심심찮게 들린다. 최근 유례없는 전직 대통령 탄핵과 기나긴 겨울을 촛불로 이겨내고 치러진 선거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깨어 있는 시민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한다. 시민들의 눈부신 참여와 열망은 당연히 높이 살 만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깨어 있지 못하는’, ‘행동하지 못하는시민을 나무라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도, 참여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참여의 장으로 초대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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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주거 빈곤은 전국 평균 30%이고, 서울은 40%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잠시 거쳐가는 현상이라고 여겨 그 심각성에 비해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대출 중심인 동족방뇨식 정책은 물론 젊어서 고생 사서도 한다라는 고질적인 편견은 청년 주거권 보장의 목소리를 일축해오기도 했다. 매 선거기간마다 청년들이 투표를 많이 해야지라는 말로 청년들에게 과도한 정치적 책임을 묻기도 했다. 시민의 권리와 국가의 의무가 전도되는 상황 속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우여곡절과 시련이 있었지만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는 제도의 공백으로 인해 목소리를 잃은 채 권리가 제한된 시민을 다시 사회 안으로 초대하고 국가의 존재를 일깨우는 역할을 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제고한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에 맞춰 오늘도 작은 방에서 하루를 마치는 청년들에게 주거권의 숨결을 들려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내일을 기대해본다. 글마무리기호

 

 

 

 

글중간기호

 

임경지 님은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으로 청년 주거 문제 해결과 세입자 권리 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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