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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밥상 [2017.05] “얘들아, 아줌마의 추억도 한 줌 불어 넣고 튀겼단다”

글 권오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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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료_ 새우 누릉지 컴프리 이파리 단호박 삶은 달걀 당근 오이파프리카 양파

부재료_ 튀김가루 식용유 소금

 

 

인권을 지키는 것은 어떤 거창한 일이 아니라 소박하더라도 정성껏 차린 한 끼 밥상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땅에서 나는 흔한 제철 음식으로 푸근한 밥상을 차려, 혼자 대충 때우기 쉬운 분과 사회적 약자들을 찾아가 함께 나누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글시작기호 따뜻하게 느껴지던 봄볕이 어느 날부터인가 뜨거워졌다. 그래도 숲에서 불어 오는 바람은 상큼하다. 숲에서 나무들을 어루만지고 불어 오는 바람처럼, 상큼 발랄한 친구들을 만났다. 늦은 봄이거나 초여름의 날씨처럼 풋풋한 여고생들이다. 소녀들의 모습이 4월의 꽃이 진 자리에 달려 있는 앵두알처럼 싱그럽다.

 

뒷마당에서 여고생들에게 먹일 튀김 만들 재료를 따면서 딸아이 생각이 났다. 딸이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어도 나는 딸아이라는 말을 잘 쓰는 편이다. 품에서 멀어진 자식을 늘 내 품에 있을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게 엄마의 마음이다. 그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글 속에서만 쓰는 단어다. ‘딸아이라는 활자를 보고 마음으로 뇌이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런 마음이 나의 친정 엄마한테도 있었겠구나, 생각하니 그 마음을 헤아리기도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아려서 눈물이 났다. 이래서 후회가 앞서는 일은 없다라는 옛말이 있게 된 것일 게다.

 

열일곱 소녀들과의 소풍을 준비하는 손길은 바빠졌고 설렘이 왔다. 소풍을 가 본 지가 10년도 더 넘은 것 같다. 어쩌면 잊고 있었을 만큼 아득한 시절의 언어인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는 김밥 재료를 준비만 해도 엄마, 우리 소풍 가는 거야?’라고 환호를 치곤 했었던 아이가 자라 아비가 되어 아들을 데리고 캠핑이라는 소풍을 하느라 고달파 한다. 그 모습을 보니 준비하는 엄마 힘든 건 모르고 신나하던 아들의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이 떠오른다. 소풍 상의 콘셉트는 학교 공부에, 학원에, 아르바이트에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의 학생들에게 시간의 느림을 선물하는 것이었다. 햄버거나 피자, 똑같은 맛을 지닌 손 쉬운 프랜차이즈 김밥집 김밥이 아닌 내가 직접 집에서 만든 김밥을 선물로 먹이고 싶었다. 만나서 물어 보니 태권도를 하는 민주도 노래하는 꿈을 가진 한솔이도 아침, 점심을 모두 거른 빈 속이었다. 한 친구는 다이어트를 한다는데 내 보기엔 오히려 더 쪄야 할 정도로 날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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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튀김만 준비할까 했는데 소풍에 김밥이 빠지는 것이 왠지 내가 서운했다. 김밥을 말고 컴프리 튀김과 김말이 튀김, 새우 튀김을 장만하고 집에서 만든 누룽지를 튀겼다. 컴프리 튀김은 오분표말고는 만드는 사람이 없는 나의 단골 메뉴다. 배춧잎처럼 생긴 것을 알맞은 크기로 잘라서 튀김옷만 얇게 입혀서 튀기면 요리 끝! 손쉬운 데다 그 바삭함이 며칠간 유지된다. 간편함과 맛이 일품이라 튀김의 여왕이라는 이름표를 달아 주어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요리이다. 컴프리는 간 기능을 보호하는 약초라서 분말로 만들어 팔리던 때도 있었다. 5~6월에 보랏빛 초롱 모양으로 조로롱 피는 꽃도 무척 예쁜, 매력 덩어리 다년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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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오분표 튀김은 김말이이다. 먼저 김 한 장을 네 쪽으로 잘라 펼쳐 놓는다. 다음에 삶은 달걀, , 당근, 오이, 피망, 양파를 4등분한 김 크기에 맞춰서 준비해서 김 위에 올린다. 색깔을 맞추어 흐트러지지 않게 싸고 말아서 튀기면 영양 만점, 모양 만점인 특제 튀김이 된다. 잘 드는 칼로 가로로 김밥 썰듯이 썰어주면 김밥의 단면보다 더 이쁘고 고급스럽다. 돈이 궁해서 금반지를 살 형편이 되질 않았을 때 백일잔치, 돌잔치에 수 없이 선물했던 단골 요리다. 그래서 사람들이 금보다 더 귀한 요리하고 말했었다. 그만큼 상차림이 화려해서 돌잔치 기념 사진에 한 몫을 했었다. 우리 동네 교수님이 일본에서 손님이 올 때마다 일식집에 없는 튀김이라며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확대 해석하면 일본인도 칭찬한 튀김이다. 날씨가 더워지면 식중독 때문에 늘 문제가 되는데 튀김은 날에도 안심되는 먹거리이기도 하다. 컴프리 튀김은 불빛이나 햇빛에 비춰 보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투명하고 맑은 초록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늘 먹기 전에 들고 하늘에 대고 비춰 보라고 한다. 오늘 소풍의 주인공인 소녀들도 컴프리 튀김을 허공에 비춰 본다. 그 모습이 성당의 사제가 영성체를 할 때의 모습과 흡사하다. 많은 식물을 튀겨 보았지만 컴프리만이 아름다운 초록빛으로 보이니 얼마나 신비로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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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풋풋한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 엄마가 되었을 때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햇빛에 비쳐지던 투명한 초록빛을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모두들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살고 학교 급식과 편의점, 넘쳐나는 식당들 덕분에 우리집 음식, 집밥 등의 단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만 난무할 뿐이어서 지금 아이들의 미래가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집에서 만든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우리가 누구인가를 소리 없이 심어 주는 사람의 역할이 크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라도 내가 차린 소풍 상을 받은 소녀들에게 옛날 내 아이들에게 하듯 엄마의 음식을 차려 대접하고 싶었는데 나 혼자만의 꿈이 아니었길 바란다. 어느새 뉘엿뉘엿 지는 해가 어스름한 저녁빛을 드리우고, 바람이 시원했다. 글마무리기호

 

 

 

 

글중간기호

 

권오분 님은

수필가로 활동 중이며 한국자생식물보존회, 숲과 문화 연구회, 한국식물연구회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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