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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동행 [2017.06] 따뜻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_ 김인숙 변호사

인터뷰 지유리 / 일러스트 배중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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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굵직한 시국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약자들의 편에서 힘이 되어준 김인숙 변호사.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그녀를 정의로운 사람의 표본으로 만들었다. 법률사무소에서 진행된 인터뷰 탓에 자칫 무거운 공기로 흐르진 않을까란 생각은 찰나의 기우로 그쳤다. 환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그녀의 모습에서부터 기분 좋은 온기는 시작되었다.

 

 

글시작기호 인권_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소속 변호사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계신데요. 처음 변호사의 꿈을 키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인숙_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판사가 되고 싶었어요. 특별한 계기는 어렸을 적 본 한국영화의 영향 때문인데요. 줄거리는 조직폭력배인 아버지에게서 버려진 딸이 고난을 겪고 훗날 판사가 돼서 자신의 아버지를 법에 의해 집행한다는 내용의 영화였어요. ‘정의는 살아있다식의 모습이 저에게는 멋있어 보였고, 죄인이지만 감옥에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를 외치는 장면이 꽤 인상적이었어요. 그게 발단이 되어 사법고시를 보고 시험에 합격해 지금의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인권_ 김인숙 변호사님의 학창시절도 궁금한데요. 변호사란 직업 때문인지 불의를 보면 못 참으실 것 같은 모습이 그려지는데요. 혹시 청소년기 때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김인숙_ 고등학교 시절에 동아리 활동으로 도서반에서 도서위원으로 활동했어요. 주로 교내에서 도서전을 개최하거나 다른 학교의 도서위원들과 연합활동을 하는 거였죠. 그래서 주변 학교의 도서반 학생들은 거의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체 친구가 버스 안에서 남학생들한테 창피를 당한 일이 있었어요. 마침 그 남학생들이 평소 알고 지낸 도서위원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당장 제 친구를 괴롭힌 그들을 찾아가서 시원스레 면박을 줬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고 보니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네요(웃음).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의 상담을 많이 해줬던 기억이 있어요. 친구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조언을 잘 해준다는 말을 종종 들었죠.

 

인권_ 어렸을 적엔 판사를 꿈꾸셨는데 변호사로 꿈을 바꾸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김인숙_ 특별한 계기는 없었고요. 제가 사법고시를 조금 힘들게 준비했어요. 결혼하고 출산 후에야 시험을 봤으니 꽤 늦어졌죠. 그런 이유들로 판사보다는 변호사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 것 같아요.

 

인권_ 어린 시절부터 정의로운 성격과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성향이 이어져서 지금의 변호사가 되신 거네요. 그렇다면 변호사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의 현주소는 어떤지 여쭤보고 싶어요.

 

김인숙_ 총론은 구비되어 있지만 각론엔 약하죠. 조금 풀어서 얘기한다면 사회적 문제에 대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 부족해요. 가정폭력의 예를 들면 사건이 발생하면 우선 피해 여성을 남성과 격리시켜야 하는데 그에 따른 격리 시설들이 부족해요. 여기에 피해자들에 대한 치료도 너무 안일하고요. 겉으로 보이는 체계는 형성돼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허술한 부분이 많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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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_ 현재 군인권센터의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신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담당하는 곳인지 궁금합니다.

 

김인숙_ 군인권센터는 지난 2009년에 설립된 군인권운동 시민단체에요. 군의 인권에 대한 전반적인 상담과 피해자 지원방안, 법률·의료 지원, 인권교육, ·제도 개선, 입법 추진활동 등의 일을 하고 있어요. 또 인권학교를 운영 중인데 이는 군인이나 예비입영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이에요. 이 밖에도 군 인권 상담전화인 아미콜을 운영 중이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군인권카드를 배포하고 있습니다.

 

인권_ 윤 일병 사망사건은 군대 내의 가혹행위가 얼마나 잔인하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는데요. 사건의 원인과 문제점은 무엇이었나요?

 

김인숙_ 사건이 발생했던 경기도 연천의 28사단 977포병대대는 일반적인 통합막사가 아닌 독립된 장소의 생활공간이었어요. 병사 6명과 하사 1명이 24시간 내내 공동생활을 하는 환경이었죠. 때문에 관리 책임인 간부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던 곳이었던 게 함정이었어요. 이 사건은 폭력이 폭력을 낳은 사건이었어요. 가해자들의 경우 윤 일병이 전입해 오기 전까지 윤 일병의 대역과 같은 존재였죠. 결국 병사들 사이에서 이런 갈등이 발생했을 때 어떤 식으로 처리하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하지만 군에선 소원수리를 형식적으로 처리하고, 가해자·피해자를 한 곳에 모아놓고 대충 사과하면 끝인 상황을 되풀이하죠. 지휘관들 또한 사건을 은폐하고 적당히 넘어가려는 태도가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킨 거예요.

 

인권_ 군대 폭력의 온상이라 불리는 소규모 독립부대들은 어떤 곳이고, 이런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인숙_ 숨진 윤 일병이 근무한 의무반의 경우 소속 본부와 약 200m가량 떨어져 있어,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걸로 확인됐어요. 의무반이나 탄약보급소 등은 소규모 독립부대로 운영되고 있어 지휘관들의 감시를 피할 수 있고, 더불어 피해자들의 도움처가 희박하기 때문에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죠. 사건이 일어나도 작은 단위 부대들의 경우엔 통제 인력이 부족해 반복적으로 폭력사건이 발생하는 거예요.

 

인권_ 윤 일병 사망사건 이후 병사들의 핸드폰 반입을 허용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요. 현재 군대 내의 상황은 어떤가요?

 

김인숙_ 원칙대로는 군법상 군사시설보호법 위반으로 핸드폰 반입을 불허하고 있어요. 만약 무단으로 반입했을 경우엔 영창처분을 받게 됩니다.

 

인권_ 더불어 이런 끔직한 군인권 관련 문제들이 되풀이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김인숙_ 무엇보다 고질적인 군대의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상명하복의 문화, 그래서 계급에 의한 지배문화, 그리고 폐쇄적인 군대의 환경도 원인이겠죠.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에요. 닫힌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요. 특히 요즘 젊은 이십대들의 경우 자아의식이 발달한 세대인데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와 폐쇄적인 문화에 얼마나 큰 괴리감을 느끼겠어요. 근본적인 군문화의 변화를 위해서는 사회와의 교류가 필요하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문화가 이뤄져야 해요.

 

인권_ 김 변호사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군 관련 사건을 꼽으신다면 어떤 사건인가요?

 

김인숙_ 지난 2011년에 벌어진 강화도 해병대 총기난사사건을 들 수 있겠네요. 사건의 경위는 군대 내의 가혹행위로 인한 보복 범행이었어요. 결론적으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사건이었죠. 피해자들의 나이가 고작 19, 20살의 자그마한 체구의 군인들이었어요. 사건 진술 때 19살의 상병이 모든 범행은 자신의 단독범행이라며 20살의 이병을 챙기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어요.

 

인권_ 군대 내의 성추행 사건 또한 큰 충격을 주고 있는데요. 그 원인과 근절하기 위한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김인숙_ 군대에서 발생되는 일련의 사건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조건 은폐하려는 태도에요. 특히 성추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를 가해자에게서 격리시켜야 하는데 오히려 피해자가 2, 3차 피해를 입게 만들어요. 그리고 피해자가 믿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돼요. 그런데 오히려 그 반대죠.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피해자의 비밀보장, 사실관계의 정확한 파악이 제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인권_ 가해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이런 판결이 내려지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요?

 

김인숙_ 성폭력 사건을 예로 들면 보통 성폭력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일관성과 세부적인 진술 묘사에요. 그런데 피해자들의 진술 내용을 읽어보면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상당히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요. 그럼에도 재판부는 통화기록이나 시간 등 사건 자체와 관계없는 그 후의 진술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는 거예요. 이는 재판부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하지 못했다는 방증이에요. 참 답답한 일이죠. 같은 사건을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재판에서 다뤘다면 재판 결과는 아마 달랐을 거예요.

 

인권_ 그래서 끊임없이 군대 사법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요. 이에 따른 김 변호사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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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_ 사단장이 군검찰과 군판사의 지휘권과 인사권을 가지고 있고, 1심 관할관 이름으로 형량 감경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지휘관의 뜻에 따라 사법판단이 좌우되고 있는 현실인거죠. 여기에 지휘관과 관련된 범죄에 대해서는 기소가 거의 어렵고, 기소가 된다 하더라도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기 힘들어요. 군검찰과 군판사의 활동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서라도 군사법 인사체계의 개편과 더불어 군양형법을 제정해야 해요. 결론적으로 심판관이 법조인이 아닌 일반 군인으로 구성돼 전문성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에요. 수사단계에서부터 변호사강제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_ 사회적으로 뜨거운 공방이 되고 있는 동성애자 A대위의 변호를 맡고 계신데요. 군대 내에서 동성애자의 인권은 어떻게 존중되어야 할까요?

 

김인숙_ 그냥 내버려두면 돼요. 우리 서로 각자의 성적취향에 대해 궁금하지 않잖아요. 군대 내에서도 동성애자라고 차별하지 않으면 돼요. 저는 동성애자를 보호하자는 게 아니거든요. 단지 그들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거죠. 군형법 926의 문제도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처벌하는 차별적인 법조항이란 게 잘못됐다는 거예요. 일반적으로 군대 내의 성추행 사건 중에 동성애자들의 사건은 거의 없어요.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동성애자란걸 숨기고 싶어 하죠. 그런데 마치 동성애자 군인들이 군대의 기강을 흔든다고 잘못 생각하는 거죠.

 

인권_ 군형법 926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은데요.

 

김인숙_ 일부 기독교단체에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현대사회가 종교적 신념에 의한 사회가 아닌 것처럼 그 무엇도 강요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판결을 받은 A대위의 경우도 3년 동안 군대 내에서 동성애자인줄 전혀 몰랐어요. 이번 사건의 발단은 동성애 군인을 색출한다는 기획 하에 벌어진 기획수사였어요. 그래서 협박과 강요에 의한 수사가 일어났고요. 심문 방식조차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없이 진행이 됐어요. 옆에 있는 저 또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으니까요. 현재 군형법 926은 인천지방법원에서 위헌심판 신청을 제출한 상태예요. 저 또한 위헌법률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_ 군 문제 피해자를 위한 법·제도의 현황과 개선되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김인숙_ 국가유공자의 경우 등급에 따른 치료비를 받고 있어요. 등급을 받지 못한 이들은 방치되고 있는 현실이죠. 때문에 좀 더 세분화된 법·제도에 의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에 따른 피해자의 법률, 의료서비스 또한 충분히 이뤄져야 하고요. 나라를 위해 충성하다 피해를 입은 군인들을 나라가 치료해주지 않는다면 어디서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완치가 될 때까지 국가가 나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권_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된 김제동 씨의 영창 발언이 화제가 됐었는데요. 오히려 그 발언 이후 영창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공론이 벌어졌어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인숙_ 영창제도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해요. 만들어진 계기가 단순히 군대 내에서 군기를 잡기 위해 생긴 제도에요. 영장도 없이 지휘권 재량으로 병사를 가둘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헌법상에 위배되는 셈이죠. 더 이상 군대의 폐쇄성과 특수성을 인정해서는 안돼요. 반드시 헌법에 따라 일반 판사에 의한 판단이 이뤄져야 해요.

 

인권_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권법무관 제도는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있나요?

 

김인숙_ 유명무실한 존재죠(웃음).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군 법률 관계자가 중복된 경우가 많아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창 여부를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민간감시가 필요해요. 때문에 군인들로 구성된 군사법원은 폐지되는 게 맞고요.

 

인권_ 결론적으로 바람직한 병영문화와 군사법체계에 따른 개선책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려요.

 

김인숙_ 우선 군 상관들의 인권에 대한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우선인 문화,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할 수 있는 병영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군의 진짜 안보가 철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군의 사법체계와 관련해서 군사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마땅하고요. 더불어 인권위원회가 개설한 군인권보호관제도를 통해서 더 많은 외부전문가를 소집해 외부감시를 강화해야 해요. 인권은 특별한 게 아니에요. 너와 내가 같은 존재라는 생각, 같은 공감을 형성하는 존재의 의식이 인권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문화가 우리나라 사회전반에 전파돼야 우리의 인권의식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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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후 대만에선 동성혼 금지는 위헌이라는 판결의 뉴스를 접했다. 공교롭게도 동성애자 A대위의 유죄판결이 선고된 날과 같은 날의 일이었다. 극명하게 서로 다른 판결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하지만 김인숙 변호사의 바람이 떠올랐다. 유독 추운 겨울을 보내고 올해 맞이한 따뜻한 봄날의 햇살처럼, 우리 사회의 따뜻한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어주었으면, 그래서 조금은 더디더라도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다고. 글마무리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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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리 님은

전방위 프리랜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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