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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삶 [2017.06] 내 직함은 ‘꿀알바 지망생’

글 최서윤

 

글시작기호 “직함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방송에 출연하거나, 강연이나 기고를 하기로 정해진 뒤 상대편 관계자로부터 듣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꿀알바 지망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내가 2012년 창간한 매체 <월간잉여>는 휴간 중이며, 2015년 기획·제작한 보드게임 수저게임역시 2차 품절 뒤에는 재생산하지 않고 있다. 이에 월간잉여나 수저게임은 내게 직장이라는 감각을 주지 못한다.

 

가능하면 최소한의 시간 동안 작은 고통을 감내하고 난 뒤 나쁘지 않은 일당을 받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것은 꿀알바(‘꿀 빠는 알바의 줄임말)라는 은어로 불린다. 운이 매우 좋거나, 꿀알바를 소개해줄 친지를 두었거나, 자기만의 특별한 기술이나 특성이 있을 때 꿀알바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로서는 평생 꿀알바만 하고 싶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이 직함에 대한 질문을 들을 때 꿀알바 지망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맥락이다.

 

한때 나는 높은 신뢰도와 권위를 지닌 언론사에 입사하기를 욕망했다. 입사한 언론사의 권위가 곧 사원인 나의 것이 될 거라 여겼고, 회사라는 조직에 안정적으로속하며 매달 따박따박 월급을 받고 싶었다. 2010년부터 언론사 입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지만 준비기간 2년을 꽉 채우며 낙방을 거듭했다. 2년이라는 시기는 중요하다. 토익 유효 기간이 2년이기 때문이다. 2011년 말, 그나마 쓸 만했던 내 토익점수는 만료돼버렸고 다시 영어공부를 하는 데 들어갈 시간과 노력, 비용을 생각하니 울컥 화가 치솟았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선택받기 위해계속 노력했지만 그 결과는 외면뿐이라니. 스스로가 잉여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느끼는 이는 나만이 아니었다. 당시에 쓰고 난 나머지라는 포괄적인 뜻을 가진 잉여라는 단어가 잉여 인간의 줄임말로 더 빈번히 쓰였음은 이를 방증한다. 이 맥락에서 잉여란 사회나 조직에서 필요로 하여 쓰고자 선택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즉 선택받지 못한 구직자를 뜻한다. 사회적 기준으로 쓸모없는 짓을 일삼는 사람도 잉여로 취급받았음은 물론이다. 잉여를 위한 잉여에 의한 잡지를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창간한 <월간잉여>는 나와 비슷한, 같은 정서의 사람들이 주요 독자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의외로 투고를 하거나 동질감을 표현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더 의외의 사실은 그중에는 이름난 언론사 소속의 이들도 있었다는 것. 김짱구(필명)는 발에 땀나게 뛰며 취재한 삼성과 김앤장 관련 기사가 데스크를 통과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을 <월간잉여>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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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스포츠 신문에 정규직 전환 인턴으로 입사한 기레기24601(필명)네티즌의 클릭 수는 광고, 즉 회사 수입과 연결된다. 우리는 정규직 기자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하루 종일 검색어의 노예가 됐다. 국장의 압박은 더욱 심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국장은 좋은 기사를 썼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국장에게는 몇 개를 썼는지, 조회 수 1만 넘은 기사는 몇 개인지가 중요했다. 심지어는 제목을 좀 자극적으로 지으라고 웃으면서 말하기도 했다. 세월호 침몰 사건 때는 최악이었다. 이 당시 모든 연예 일정은 취소됐고 그때부터는 세월호 관련 기사도 작성하게 됐는데, 국장은 심지어 스포츠 기자에게 세월호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 기사를 쓰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그들의 글을 <월간잉여>에 실으며, 권위 있는 기성 언론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나의 욕망은 사라졌다. 물론 이들의 경우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어떤 청년들은 조직 내에서 무난히 적응할 수 있고, 또 그 안에서 나름대로 배우는 부분이 있음을 안다. 다만 나는 그럴 수 있는 인간이 아닌 것 같다. 방탈출 카페의 게임 시나리오 알바를 할 때, PC방 알바를 할 때, 그리고 기타 일상생활에서 중년 남성과 협업해야 할 일이 있었을 때, 연장자들로부터 배움을 얻기보다 환멸을 느낄 일이 더 많았다. 실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참견하며 일 늘리기, 대충 일한 뒤 사달이 나면 책임 회피하며 희생양 찾기, 무의미한 회의, 회식에서의 성희롱 등.

 

그때 나는 느꼈던 것 같다.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큰 권력인지. 아쉬울 게 많으면 그 순간 내 감정에 진실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의 상흔은 오래도록 남아 나를 괴롭혔다. 그나마 알바였기에 견뎌야하는 시간은 반년을 넘지 않았는데,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는 비정규직이었다면, 취업준비 기간 및 재취업 기간이 부담됐다면, 당장 한 푼이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면 다른 곳에 대한 상상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면 이 일 아니어도 할 일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좀 더 스스로의 감정과 판단에 솔직할 수 있다.

 

이런 맥락은 내게 꿀알바 넘치는 한국사회를 상상하게 만든다. 한국사회에 꿀알바가 넘치고 기본소득이 보장되고 의식주에 필요한 비용이 0에 수렴하는 체제가 도래한다면 나를 포함한 청년 다수가 아쉬울 게 없고, 비굴해질 일 없을 것이라고.

 

적은 양질의 일자리, 높은 경쟁률과 생활비용, 미비한 사회안전망 등. 어떤 꼰대들은 이런 사회문제를 개선하면 청년들이 건방져질까봐걱정하던데, 이들이야 말로 이미 한껏 건방져서 인생 편히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들에게 이제까지 하던 대로 살면 도태될 것이고, 그렇게 살아도 비위 맞춰줄 청년은 더는 없을 것임을 확실히 느끼게 하는 제도와 문화의 변화를 갈망하게 된다. 글마무리기호

 

 

 

 

글중간기호

 

최서윤 님은

독립잡지인 <월간 잉여>를 펴냈고, 보드게임 기획, 단편영화 연출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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