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 > 사람, 삶을 말하다 > 그들에게서 날 발견했을 때, 진정한 연대가 시작됐어요
영화 <공동정범> 이혁상 감독

사람, 삶을 말하다 [2018.01] 그들에게서 날 발견했을 때, 진정한 연대가 시작됐어요
영화 <공동정범> 이혁상 감독

글 유제이 사진 봉재석

 

공동정범의 이혁상 감독

 

2012년,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이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든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는 6년이 지난 올해 다시 용산참사를 이야기하는 <공동정범>을 세상에 내놨다. 김일란 감독과 함께 <공동정범>을 만든 이혁상 감독은 카메라를 통해 지켜 본 용산참사 그리고 연대를 이야기한다.

 

우연히 들게 된 카메라, 운동이 되다
이혁상 감독이 몸담고 있는,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단체처럼 여겨지는 ‘연분홍치마’는 사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2003년 성적소수자 인권과 여성주의 섹슈얼리티 연구 모임에서 만났던 이들이 사회적 활동을 위해 만든 단체다. 여기서의 성적소수는 기존 남성과 여성으로 나눴던 젠더 이분법에서 소수가 되는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를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현장의 기록을 위해 ‘우연히’ 카메라를 들게 되었고, 그것이 ‘연분홍치마’가 자신들 혹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건네는 방법이 되었다. 이후 기지촌 성매매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마마상>, 성전환자 3인의 이야기 <3xFTM>, 4명의 게이 이야기 <종로의 기적>까지 성소수자 다큐멘터리 3부작을 만들었다.

 “저희가 하는 일은 ‘여성주의 문화 운동’의 일환이에요. 어렵게 말하면 여성주의 미디어 액티비즘이라고 할까요?”

 

연분홍치마를 설명하는 이혁상 감독의 설명이다. 그는 요즘 <공동정범>의 상영 이후 진행되는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독립운동 하듯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고 있다.

“예상보다 관객이 잘 들지 않아서요(웃음). 지난 촛불집회 이후 정권이 교체되었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용산참사 같은 사회적 이슈도 잘 해결될 거라는 믿음이 생긴 것 같아요. <두 개의 문>이 개봉했을 때는 대선을 앞두고 있었고, 이명박 정권이 교체될 거라는 열망이 영화 흥행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두개의 문, 공동정범 포스터 

 

호평과 흥행 사이 어딘가
비록 ‘관객은 많이 들고 있지 않지만’ 영화를 본 이들의 평은 매우 호의적이다.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룩한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은 영화 평론가도 있듯이 평단의 평가는 칭찬 일색이다. 이런 평가를 듣는 감독의 소감은 어떨까?

“<두 개의 문>을 넘는 결과물을 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에 남을 만한’ 결과를 내고 싶었고요. 그래서 예술적인 시도를 많이 했어요. 좋은 평가를 많이 들었지만 사실 활동가들이 함께 이룬 결과죠. 물론 이 모든 건 앞에 <두 개의 문>이 있었기 때문이고요.”


이혁상 감독은 호평의 공을 <두 개의 문>과 동료 활동가에게 돌린다. <두 개의 문>이 독립 다큐멘터리에서는 ‘흥행 성공’이라고 할 만큼인 7만 관객을 모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반응들이 구속된 용산 철거민들의 조기 석방에 영향을 미쳤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인 철거민들과 연분홍치마 사이에 믿음이 생겼고 그로 인한 상호 작용으로 좋은 평이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동정범>의 관객 수를 보면 평단의 평가가 흥행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웃음)”

 

‘용산’을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
사실 연분홍치마는 크고 작은 시위와 연대의 현장에 늘 함께 있었다. 촛불 시위 같은 대규모의 현장은 물론 성소수자단체의 시청 점거 농성이나 충남인권조례 폐지 규탄 대회 같은 작은 현장에도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 <두 개의 문> 이후에도 여러 이슈들이 많았으나 또다시 용산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무엇보다 용산참사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가 가장 크죠. <두 개의 문> 개봉 당시 흥행도 잘 됐지만 관객 반응을 봤을 때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거든요. 하지만 결국 박근혜 정권이 탄생하면서 용산참사 유가족과 활동가들은 열패감에 휩싸였어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어쩌면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영화는 이전 영화와는 다른 내용으로 흘러간다. 흔히 생각하고 있는 용산참사를 극복하는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희도 처음엔 그날 망루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화재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르포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기획했어요. 하지만 피해자들을 담으면서 용산 철거민들과 연대를 하러 왔던 다른 지역의 철거민들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 사이에 갈등을 전면화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참사 이후 국가는 철거민과 연대 철거민을 ‘공동정범’으로 묶어 처벌했다. 이로 인해 공동체는 삐걱거렸고, 이것이 그들이 연대를 와해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연분홍치마는 피해자들이 연대 동지로서 유대를 회복하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생각했다.

“그냥 정면 돌파를 선택했어요. 왜 갈등이 생겼고, 철거민과 연대 철거민들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생각했습니다. 공동체가 파괴된 이들의 갈등 역시 참사의 피해라고 판단했거든요. 사실 피해자들의 연대를 공동정범으로 몰아가는 건 용산참사뿐만이 아니라 권력이 연대를 해체하기 위해 계속 사용했던 방법이고요.”


연대와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 그것이 진상규명을 위한 과제라고 생각했기에 그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것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겪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한 것, 연대의 분열이다.

 

공동정범 이혁상 감독 

 

나의 발견, 연대의 시작이 되다
앞서 얘기했듯 연분홍치마는 수많은 연대의 현장에 함께 했다. 다양한 연대의 형태와 그 안의 희노애락을 관찰한 그다. <공동정범>의 중요한 테마도 연대다. 그가 생각하는 ‘연대’란 무엇일까?

“연대의 필요성 때문에 하는 연대도 있지만 고통받는 사람들, 피해를 받은 이들에게서 날 발견했을 때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성소수자이고, 성소수자로서 받은 차별들이 용산 철거민들에게 투영이 됐거든요. 그때부터 철거민이 피사체가 아닌 마음으로 연대하는 사람들이 된 것 같아요.”


이런 전적 때문일까? 2월 7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서 열린 독립영화인 긴급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정부와 국정원, 영진위 등이 독립영화 지원배제 블랙리스트가 있었음을 밝혔다. <공동정범>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지원 신청을 했는데 서류 심사에서 최하점으로 탈락했어요. <두 개의 문>이 흥행도 잘 됐고 평가도 좋았는데 최하점을 받은 게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당시에도 외압이 있는게 아닐까’는 생각했죠. 막상 알게 되니까 기분이 또 나쁘더라고요.”


그는 민사소송도 생각 중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일들은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책임자가 제대로 처벌받은 적은 없잖아요. 책임진 사람도 없고요. 이것들이 두터운 적폐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책임자가 반드시 처벌되어야 반복되지 않을 거예요.”
이혁상 감독은 이제 극영화를 준비 중이다. 재일조선인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다음 영화의 간략한 소개를 들으며 인권과 연대를 고민하는 그가 만들 극영화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그리고 그 기대보다 더 나은 영화로 그를 다시 만나기를 바라본다.02

 

공사가 진행되지 않아 공터로 남아있는 용산참사 현장

 

추모촛불

 

화면해설,

이 글에는 용산참사 화재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공동정범>의  이혁상 감독 사진과 용산참사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 <공동정범> 포스터, 용산개발을 계획했던 공사가 진행되지 못한 채 공터로 남아있는 용산참사 현장, 그리고 용산참사로 사망한 고인들을 추모하는 촛불집회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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