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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수첩 [2018.01] ② 1987이 우리에게 정의로운 따뜻함으로 기억되기 위해

글 여준민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모두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 형제복지원 사건 진실 규명

 

영화배경

 

“<1987>이라는 영화가 흥행이라는데 아직 보지 못했다. 어떤 내용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1987년이 누군가에겐 독재에 맞선 항쟁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겐 차디찬 교도소 안에서 전향하라는 고문 교도관에 맞서 비전향 장기수로 옥살이를 해야 했던 때로 기억될 수 있으며, 또 어떤 이들에겐 국민으로서 인정받지 못한 채 인간쓰레기로 낙인찍혀 감금의 시절을 보내야 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중략) 세월은 흘러 31년이 지났다. 1987에 돌아가신 열사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잘 가꾸어 발전시키기를 하늘에서 바랄 것이다. 1987년 대한민국의 독재를 종식시켜준 것에 대해 민주화운동에 앞장서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하지만 지금 여기! 1987년에 명분도 없이 인간쓰레기로 낙인찍혀 민주화운동에 가려지고 버려진 자들도 현재 2018년 지금 당신들과 함께 살아 있음을 기억해달라. 그리고 우리들 처절한 외침에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 한종선 형제복지원사건피해생존자모임 대표 페이스북 글 일부 -

 

 

‘부랑인’은 누구인가

영화 <1987>이 회자되고 있다. 1987년 1월 박종철 군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생과 시민들은 군사독재 정권의 폭력에 항거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안고 거리로 나왔다. 그 물결은 전 국민의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헌법 개정을 통해 직선제를 쟁취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속에 잊힌 사건이 있다. 가장 가난했고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람들이 강제 수용되어 온갖 인권유린을 당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형제복지원은 1960년 부산 형제육아원으로부터 출발한다. 박인근 원장의 장모로 알려진 이가 한국전쟁 이후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한 수용소를 운영했다고 전해진다. 박인근은 당시 육군으로 복무하며 경찰서에 파견 근무를 나갔는데 우연히 “거리에 부랑인인 척 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조총련계 등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니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잡아가두라”는 공문을 발견했고, 그 후 ‘부랑인 수용소’로 전환, 국가가 원하는 국가 안보와 사회 안정을 위해 ‘형제복지원’을 운영해 왔다고 회고록 <형제복지원 이렇게 운영되었다>에서 밝히고 있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은 「내무부훈령 410호: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 처리 지침」를 근거로 ‘부랑인’이라는 허구의 개념을 만들었다. 집이 없거나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인간”이란 낙인을 찍고, 거리에서 보이지 않게 ‘수용소’에 잡아 가두도록 국가가 지시하고 실행했다. 껌을 팔거나 구두를 닦거나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친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코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았고, 갈취하거나 도둑질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랑인’으로 분류되었다.

 

또 가정 폭력에 견디지 못해 잠시 방황한 아이들, 친척 집을 방문하러 왔다가 주소지를 찾지 못해 파출소에 문의한 아이들도 옷을 허름하게 입었다는 이유로 ‘부랑아’로 낙인찍혔다. 심지어 장애가 심한 사람이 있는 가족들은 마을 주민들이 “좋은 곳 있다”는 권유에 자발적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보내는 일도 있었다.
이렇듯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사람들은 퍽퍽한 삶의 무게를 있는 최선을 다해 버티고 이겨내려던 우리 이웃이지, 결코 범죄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헌법이 보장한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며 자국민을 상대로 불법 감금, 강제 노역, 임금 착취, 성폭력, 폭력, 그리고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 ‘지옥’을 만들었다. 수용소를 운영한 사람의 부도덕함에서 시작된 일이 절대 아니다. 불법하게 얻은 권력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적’이 필요했고, 그 군사정권의 희생자는 비국민 취급당한 가난하고 장애가 심한 사람들이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배제와 감금의 정책은 필수적인 통치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것이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이다.


뒤이어 무력으로 권력을 획득한 전두환 군부 정권도 이런 정책을 이어갔다. 1981년 전두환은 총리에게 서신을 보내 “거리에 거지가 넘쳐나고 있으니 일제 단속을 철저히 하라”고 명령한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의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민관합동 단속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잡아갔는데, 이를 두고 사회정화, 도시정화라 부르는 일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했던 건 정권의 의지와 정책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이 불법 부당한 모든 걸 목도하면서도 동조한 ‘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한종선 대표의 책 <살아남은 아이>의 부제가 “우리는 어떻게 공모자가 되었나”인 까닭이 거기에 있다.

 

1987년의 형제복지원

대부분의 ‘우리’에게 1987년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이 거리로 뿜어져 나온 혁명의 해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그해 따뜻한 봄날, 거리로 나오지 못하고 또다시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전원 조치’된 사람들, 그래서 ‘우리’가 아닌 ‘그들’로 불린 사람들이 바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동안 피해 생존자들은 “내가 뭔가 잘못했으니 잡혀왔겠지”, “부모님 말 안듣고 공부 안 해서…”라며 끊임없는 자기 비하로 30여 년의 세월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누구도 원망하지 못하고 모든 일의 원인은 그저 ‘못난 나’라고 자책할 수밖에 없었고 일종의 세뇌가 되어 착취당한 삶을 부끄러워하며 ‘부랑인’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고자 차라리 ‘침묵’을 선택했다. 하지만 ‘인권’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터득한 피해 생존자들은 지난 30년의 세월을 ‘그림자 인간’처럼 보내지 않기로 했다. 형제복지원 같은 수용소 정책이 국가 정책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시위

 

진정한 위로의 출발

하지만 지난 19대 국회에서 진선미 의원 등이 발의했다가 자동 폐기된 후, 20대 국회에 새롭게 발의한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통과는 요원한 상태다. 국회는 이를 ‘인권’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접근했다. 이에 국가인권위는 “국회는 조속히 특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권고했고, 형제복지원대책위와 피해생존자모임은 지난 1월 17일, 대검찰청 앞에서 지난 30년 전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다시 재수사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두환 정권의 비호 아래 벌어진 수사 축소와 왜곡은 어떤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당시 검찰 수사에서는 박인근 원장 개인의 횡령 등을 중심으로 수사하다가 피해자 인권 침해로 전환하려는 순간, 그만두라는 수사중단 외압을 받았다. 그로 인해 피해자 입소 과정, 수용 중 폭력과 강제 노역, 성폭력, 약물 과다 투여, 그리고 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할 수 없었다. 수사 기간 중 폭력으로 사망한 수용자의 사망진단서에 ‘자연사’로 기재된 것을 발견하고 그 허위사망진단서를 발급한 촉탁의를 기소하려는 것조차 윗선의 압력으로 진행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수사 과정을 짐작할 만하다. 다행히 최근, 검찰은 12개 재조사 사건에 해당돼 사전 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동안 메아리 없었던 피해 생존자들의 외침에 정부가 할 수 있는 것부터라도 시작하겠다고 하니 참 다행한 일이다. 피해 생존자들에게 진정한 위로는 이런 구체적이고 실천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87년의 봄은 따뜻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외되고 잊힌 우리들의 모습이 그 안에 있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철저히 조작되고 은폐된 한국 사회의 민낯이자 우리 모두의 민낯이다. 검찰의 재조사로 권력에 의해 묻힌 형제복지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조금이라도 밝혀지고 이를 토대로 특별법 혹은 과거사정리기본법이 하루 속히 통과되어야만 한다.02

 

화면해설.

이 글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선감학원과 형제복지원 진상규명하라는 현수막을 펼치들고 시위하고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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